어느 고첩 이야기#22 그 해 8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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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아재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서로를 향해 폭력을 휘둘러야만 하는 사수대와 전경들이 측은

-대치선 한가운데 걸어. 이 청춘들 중에 오늘의 증오로 목숨을 잃는 자가 없도록 기도하며

-경찰 1명 사망. 사회적 분위기 급랭. 운동권 독재는 몰락했지만 그 와중에 혜택본 친구도

 

 

 

일반 인민 대중에게는 ‘연대 사태’에서 김종희 일경의 사망과 900명 정도의 부상이 크게 다가왔다.

 

 

그 곳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 전쟁터의 한가운데 선 나는 잠시 망설였다. 갑자기 무슨 마음이었을까. 양쪽의 전위에 서 있는 아이들이 내 또래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었을까. 그 아수라장 가운데서 불타지 않고 내 발 앞에 날아온 전도지 한 장 때문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어디선가 읽은 동양 고전이나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평화의 군대를 흉내 내고픈 스무 살 청년이 가질 법한 소아병적 소영웅심리였을까?

 

나는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서로를 향해 폭력을 휘둘러야만 하는 사수대와 전경들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평화를 노래하고 싶었다. 그들이 무고한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기도하고 싶었다. 나 하나의 몸짓이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렇게 나는 대치선을 가르며 전장의 한가운데를 걸어갔다. 이 젊은 청춘 중에 오늘의 증오로 목숨을 잃는 자가 없도록 신께 빌면서.

 

물론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는 행동이었다. 확실히 나는 중2병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던 것 같다. 나의 행동이 가져올 수 있는 변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변화를 원했다면 양측과 대등한 전력이 필요했다. 중재는 힘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아니 더 가혹하게 말하자면 혹 나를 보고 마음이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한들, 한 개인이 평화의 열망을 품었다 한들 그 자리의 청춘들은 조직적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내 또래 친구에게 심리적 고통만 가중시킨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도 의미 부여를 해서 그렇고, 아마 대부분은 “저 미친놈 뭐야?” 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반쯤 자아도취에 빠진 상태였던 당시의 나도 스스로 온몸으로 느꼈었다.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소용없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는지, 어디선가 다시 격돌이 예상되는 소음이 시작하면서부터 공포를 느껴서였는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결국 나는 지하철역 입구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나의 외로운 행진은 신촌 로터리의 반도 못 지난 상태로 끝나고 말았다.

 

그 때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었는지, 다른 경로로 빠져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며칠 동안 끔찍한 소식들을 들을 수 있었다. 나의 기도가 무색하게 희생자들이 나왔다. 아마도 나의 기도에 갖가지 망상이 섞였던 탓이리라.

 

이후, 그 해 8월의 사건은 ‘연대 사태’로 불리며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는 근거가 되었고, 내가 그동안 그토록 말하고 싶어했던 학생 인민대중의 삶과 괴리된 운동권의 자의적이고 교조적인 정치투쟁에 대한 비판을 사회 전체가 공유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일반 사회 대중 인민들에게는 김종희 일경의 사망과 900명 정도의 부상이 크게 다가왔다. 사회에서는 운동권의 ‘시대착오’와 ‘폭력성’이 가장 큰 화두가 되었다. 결국, 사회적 비판에 못 이겨 한총련 지도부 일부가 조의와 사과를 표했을 정도의 상황이었다.

 

당시, 운동권은 추미애 국회의원을 내세워 시위 진압 과정의 성추행 등 인권침해를 내세우며 반격을 꾀했지만, 국민 여론은 냉랭했다. 국민회의 의원들은 290건의 인권침해 사례가 접수되었다고 주장했지만, 다음 달 단 7명이 피해 당사자라며 고소를 진행하자 국민들은 그들의 주장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듬해 경찰청장과 현장 책임자 모두 무혐의가 나왔어도 한총련과 그들과 연계한 정치인들 외에는 아무도 이에 반발하지 않았다.

 

운동권의 독재는 이후 급격하게 몰락했다. 학생 인민대중의 심리 기저에 깔려 있던 거부감은 사회적 심리로 분출되어 안 그래도 시작되던 민심의 급격한 이탈을 불러왔고, 총학생회의 강대한 영향력은 그만큼이나 빠르게 무너졌다. 신촌을 시작으로 비운동권 총학생회장 후보들이 나오면서 이를 지칭하는 ‘비권’ 운동이 확산되었다. 이도 나중에 결국 또 다른 운동권의 형태로 귀결되기는 했지만, 당시의 사회적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물론, 이제는 ‘우리’가 아닌 ‘그들’이 된 운동권 집단의 내부에서 이 사건은 혁명적 항거로 윤색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열사와 영웅이 탄생하기도 했다. 전쟁 영웅까지는 아니지만 훈장 정도는 받은 작은 영웅 중 하나는 내 동기였다.

 

사태 전날 학교에서 마주친 그는 사수대로 뛰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간부도 아니었기 때문에 무엇도 모르고 선배들이 시켜서 그랬다고 했으면 훈방될 수 있었지만, 그는 신념을 갖고 정부를 비판하며 자신이 사수대였음을 ‘당당하게’ 밝혔다. 학생회 주류 좌파 집단 중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앵무새가 아니었던 내 친구는 그렇게 확신범이 되어 징역을 선고받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군대도 현역으로 가지 않고, 지금 선배 동지들의 은덕으로 모 공립대학교에서 강의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 이 운동권 정권 하에서라면 곧 신분이 강사가 아닌 교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것도 철밥통인 국·공립대. 미리 축하한다, 친구야.

 

<이어서 읽기>

어느 고첩 이야기#1 주체적 의식화
어느 고첩 이야기#2 순수의 시대(1)

어느 고첩 이야기#3 순수의 시대(2)

어느 고첩 이야기#4 의심의 씨앗
어느 고첩 이야기#5 실패한 혁명

어느 고첩 이야기#6 새로운 희망

어느 고첩 이야기#7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1)

어느 고첩 이야기#8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2)
어느 고첩 이야기#9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어느 고첩 이야기#10 Mein kleiner Kampf

어느 고첩 이야기#11 그들만의 리그

어느 고첩 이야기#12 ‘겉치레 민주주의’ 대학교수들

어느 고첩 이야기#13 인생은 실전

어느 고첩 이야기#14 어른의 세계

어느 고첩 이야기#15 아이의 세계

어느 고첩 이야기#16 진실은 침몰한다(1)

어느 고첩 이야기#17 진실은 침몰한다(2)

어느 고첩 이야기#18 진실은 침몰한다(3)

어느 고첩 이야기#19 진실은 침몰한다(4)

어느 고첩 이야기#20 그 해 8월(1)

어느 고첩 이야기#21 그 해 8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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