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달의 미국 이민 이야기 #14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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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봉달

 

-미국 성당 결혼식에 비해 한국 성당 결혼식은 무척 비싸다고. 역시 교회는 박해받아야 제맛 

-옷부터 식장 장식, 식사, 피로연, 파티 진행 등 처음부터 끝까지 신랑 신부가 준비하고 계획

-큰애가 태어나고도 한참 뒤 2년 넘게 지나 ‘영구’ 영주권을 받아. ‘진실된 결혼’ 입증됐다며

 

 

 

결혼식을 미국 가톨릭 성당에서 시골동네 마을잔치마냥 시끌벅적하게 치렀다.

 

결혼식은 교회식으로 했다. 개별 성당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비용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관료(?)부터 사례비까지 정해진 것은 없으나 대충 얼마 정도 하면 된다는 게 있다. 우리는 돈도 별로 없고 해서 성당에 300달러, 신부님 수녀님 각 100달러였나 200달러였나 그렇게 드렸다. 결혼식을 꾸미는 꽃값이 500달러로 제일 컸다.

 

미사를 집전해주신 차호찬 신부님은 그때 막 정하상성당에 부임하셨는데 우리를 1호로 임기 내내 결혼식을 거의 매주 진행하셨다.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연예인급 사제다. 암튼 나중에 교회 활동에 열심인 장모님이 돈 좀 더 내지 그게 뭐냐고 타박을 하셨지만 예산이 빠듯한 걸 어쩌란 말인가.

 

얼마 전 동생이 한국에서 나처럼 교회식으로 결혼을 했는데 성당이 요구하는 비용이 굉장히 쎄서 놀란 적이 있다. 장소를 빌리는 비용만 500만 원이었던가 하고 케이터링도 지정 업소만 이용해야 했는데 1인당 10만원인가 해서 부담이 됐다고 한다.

 

한국의 천주교가 날이 갈수록 고오급화하는 것 같아 때때로 서글플 때가 있다. 교회는 역시 세력이 약하고 박해를 받아야 제맛이다.

 

결혼 당시 나는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외노자 신분이라 부를 손님이 많이 없었다. 직장 동료 말고는 청년회원들인데 그들은 내 손님인 동시에 아내의 손님들이기도 했다. 하여 조촐하게 치르려고 했지만 처가 부모님의 손님들만 줄이고 줄여도 100여 명이라고 한다. 이민 사회 좁은 동네에서 그것도 같은 성당에 나가는 교인들은 웬만해선 서로 다 알고 가깝게 지내기 때문이다.

 

어차피 많이 부를 거 그럼 나도 균형을 맞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일이 이런 데는 좋은 게, 안면만 있는 사이라도 아무쪼록 와주십사 하면 대부분 거절을 못한다. 한인 커뮤니티의 웬만한 협회장 단체장 기관장 아재 아줌마들을 다 초대했다. 체면도 있으시고 향후 언론과의 우호적 관계를 위해 기꺼이 자발적(?)으로 참석해주셔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렇게 내 손님도 한 백여명 모으고 나니 양가 가족친지 다 합해서 300명 정도나 됐다. 시골동네 마을잔치마냥 시끌벅적하게 치렀다. 그때 사회를 봐주시거나 결혼 준비를 도와주신 선후배동료지인분들께 지금도 많이 고맙고 감사하다.

 

미국의 결혼은 한국처럼 공장식으로 찍어내듯 하지 않는다. 입을 옷부터 식장 장식, 식사, 피로연, 파티 진행 등 처음부터 끝까지 신랑 신부가 직접 준비하고 계획을 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결혼식은 성당에서 했지만 식사와 피로연은 인근 뱅큇에서 진행했다. 나중에 한국에 들어가 간단하게 신고식 같이 결혼식을 한번 더 했는데 호텔 빌리는 가격이 좀 쎄서 그렇지 남들이 다 준비해주고 시키는대로 하면 되니까 참 편하긴 했다.

 

신혼 여행은 한국에 들르는 김에 남들 다 가는 태국 방콕과 푸켓으로 갔다. 비행기를 스탑오버로 잡으니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아 좋았다. 방콕에서 뭐더라 게이쇼던가 하는 걸 봤는데 재밌고 웃기고 또 레이디보이들의 미모가 상당해서 놀라웠다.

 

쇼가 끝난 뒤 걔들이 나와서 손 흔들고 인사할 때 자세히 보고 있던 중 마누라가 골을 내고 성질을 부려 손도 한번 못잡아본 채 그냥 나왔다. 아쉬웠다. 아니 걔들이 여자도 아니구만 신기해서 좀 쳐다본들 그게 화를 낼 일인가?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된다.

 

암튼 결혼 후 한동안 언론사를 더 다니며 이것저것 해야 할 게 많았다. 취업영주권이 들어간 상태로 일하는 데 문제는 없었지만 막상 영주권이 나오려면 몇 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신분이 묶여 있다는 이유로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어 괴로웠고 또 마음에 맞지 않는 상사와 같이 하는 것도 서로에게 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변호사 비용과 수수료 등 이미 들어간 돈이 아깝긴 했지만 이민국에 기 접수된 건 철회하고 결혼영주권을 새로 신청했다. 취업영주권보다 훨씬 간단해 나 혼자 준비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나중에 한 가지 해프닝이 발생하긴 했는데 결과적으로 잘 해결이 돼서 다행이었다.

 

신행 중 임신한 첫째가 6개월쯤 됐을 때였나, 이민국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이건 거의 막바지 단계로 별문제 없이 통과하면 영주권이 금방 나오게 된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잘 차려입고 서류 꼼꼼하게 챙긴 뒤 마누라와 같이 다운타운 소재 연방이민국에 갔다. 근데 심사관이 이것저것 확인하더니 자료가 잘못됐다는 게 아닌가.

 

결혼영주권은 혼인을 증명할 자료를 첨부해야 한다. 하여 결혼증명서와 성명변경확인서 등 서류를 다 가져갔는데 심사관은 그런 것 말고 결혼식 사진은 왜 안 가져왔냐는 거다. 급당황해서 아니 니네 양식을 보면 자료를 가져오랬지 언제 사진이라고 그랬냐 나 그럼 영주권 안 되는 거냐 집사람 배랑 태아 사진 좀 봐라 이게 결혼 증명이 아니면 뭐냐고 물었다.

 

우리를 상대했던 심사관은 꽤 사람이 좋아보였는데 내가 징징대니까 맞다맞다 배를 보니 더 질문할 것도 없겠다고 막 웃었다. 그래도 자기들 규정이 있는만큼 사진 찍어놓은 거 몇 개만 가져오라고 그런다. 아이고 분부만 하십쇼 당장 집으로 가서 2시간 안으로 가져오겠다고 하니 따로 약속 잡을 것 없고 그냥 어텐션 누구누구만 해서 두고 가면 된다고 한다.

 

다행히 잘 해결이 됐나 싶었는데 복병이 더 하나 있었다. 원칙은 인터뷰 시 모든 자료가 다 있어야 하는 것인만큼 몇 시간 차이로 보충을 했다고 해서 자료를 한번에 다 낸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한다. 자기 선에서 없던 일로 해줄 순 없고 매니저에 상황 설명할 테니 윗선에서 다시 리뷰하고 잘 처리해줄 거라고 그런다.

 

그 말만 철석 같이 믿고 집에 돌아와 기다리는데 몇 달이 지나도 영주권 카드가 안 오는 거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큰애가 태어나고도 한참 뒤 2년 넘게 지나 ‘영구’ 영주권을 받았다. 원래 결혼으로 받는 영주권은 기한이 있는 임시적 승인으로서 3년 후 배우자가 진실된 결혼이 맞다며 서류에 서명 후 다시 접수를 해야 한다. 나는 몇 년 동안 영주권이 나오지 않아 뭐 잘못된 게 있나 걱정이 많았다.

 

어느날 갑자기 집에 우편으로 이민국에서 편지가 왔다. 내 결혼이 진짜고 잘 살고 있음을 지들이 verified 했단다. 뭘 갖고 검증했다는 건진 잘 모르겠으나 암튼 좋은 소식이라 신나하고 있던 중 일주일만에 영주권이 와서 보니 임시가 아닌 permanent라고 돼 있었다. 아 이런 일도 있구나 신기했다.

 

<이어서 읽기>

봉달의 미국 이민 이야기 #1
봉달의 미국 이민 이야기 #2

봉달의 미국 이민 이야기 #3

봉달의 미국 이민 이야기 #4

봉달의 미국 이민 이야기 #5

봉달의 미국 이민 이야기 #6

봉달의 미국 이민 이야기 #7

봉달의 미국 이민 이야기 #8

봉달의 미국 이민 이야기 #9

봉달의 미국 이민 이야기 #10

봉달의 미국 이민 이야기 #11

봉달의 미국 이민 이야기 #12

봉달의 미국 이민 이야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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