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첩 이야기#20 그 해 8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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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아재

 

-지금은 ‘깨시민’들도 기억해주지 않는 이름들. 진철원, 권희정, 황혜인, 오영권, 박동학

-겨우 갓 스무살의 대학 2학년생이 분신을 해야할 내재적 동기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총련은 광복절 기념 8·15 민족대회와 범청학련 통일대축전 ‘남측’ 행사 연대에서 개최

 

 

 

한총련은 광복절 기념 제7차 8·15 민족대회와 범청학련 통일대축전 ‘남측’ 행사를 연세대학교에서 개최했다.

 

 

상투적이고 진부한 클리셰처럼 그 해 8월은 뜨거웠다. 봄부터 시작된 안타까운 젊은 죽음들과 그 슬픈 비극을 투쟁의 동력으로 삼은 선동의 냄새는 코끝을 찔렀다. 그리고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민주화 이후에 한계를 맞은 운동권의 몸부림치는 그림자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노수석 외에는 ‘깨시민’들도 기억해주지 않는 이름들. 진철원, 권희정, 황혜인, 오영권, 박동학.

 

4월 6일. 진철원 동무는 나와 같은 학번이다. 그가 분신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날 그는 ‘민족사연구회’라고 쓰고 ‘현대사를 매개로 한 의식화 교육 단체’라고 읽는 동아리 회원들과 분신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분신을 감행했다. 스무 살의 2학년생이 분신을 할 만한 내재적 동기가 무엇이 있었을까.

 

4월 7일. 권희정 동무는 단식을 하다 후유증으로 죽었다. 그는 왜 목숨까지 버려가며 단식을 했을까? 누구처럼 담배도 피워가며 몰래 빵집에서 후배들이 공수해주는 빵을 먹어가며 해도 됐을 텐데. 그렇게 타협도 없이 그를 단식하도록 몬 것은 누구였을까? 거대한 정부였을까 아니면. 그는 총학생회장도 아닌 고작 정책국장이었다.

 

4월 16일. 황혜인 동무도 나와 같은 학번이다. 유독 그 해뿐만 그랬던 것은 아니겠지만. 당시 유독 스무 살의 2학년생들이 많았던 것을 나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무려 성균관대학교 학생이었고, 자신의 미래와는 전혀 상관없을 노동해방과 정권 타도를 염원하며 분신을 했다. 그 역시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동연(동아리 연합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던 문예 창작 동아리였다. 그리고 그 해 그들이 열중했던 문학적 소재는 앞서 스러져간 젊음들이었다.

 

4월 19일. 오영권 동무 역시 스무 살의 2학년생이었다. 그 역시 분신을 했다. 죽은 이유도 김영삼 타도, 미제 축출, 조국 통일이었다. 스무 살이 혈기 넘치는 나이라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스무 살 2학년생들의 죽음이 유독 많았던 것을 우연이라 생각지 않는다. 이제 죽음의 동기는 관성이 생겼다. 앞서간 젊음들이 뒤따르는 젊음들의 죽음을 부추겼다.

 

5월 8일. 박동학 동무는 92학번이었지만 군 복무를 하고 돌아왔으니 한 학기 빠른 2학년인 셈이었다. 그의 분신 이유는 학생자치권 인정이라는 학교재단과의 갈등으로 조금 달랐지만, 그 역시 분신을 했다. 이제는 죽음의 방법마저 복제되고 있었다. 그의 몸에 불이 붙은 후 주변에 다수의 학생과 직원이 있었지만 아무도 불을 끄려고 하지 않았다. 경찰조차도 현장 검증을 하지 않았다. 이제 젊은이의 몸에 불이 붙으면 그냥 당연히 자신의 의지로 분신을 선택한 것이 되었다. 유족은 살인과 살인 방조 혐의로 고발했으나, 분신자살로 수사는 종결됐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종강 직전에 정인택 학형이 사망했다. 그는 사실 68년생의 86학번이었다. 386의 86말이다. 그는 두부 손상으로 투병 중이었다. 그는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를 위해 열심히 투쟁했었던 앞세대였지만, 어느 날 친구와 술을 마신 후 두부 손상을 당해 쓰러졌고. 9년간 투병을 했다. 경찰은 만취에 의한 안전사고로 추정했지만, 가족을 비롯한 운동권 일각에서는 구타에 의한 사고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던 그가 사망했다. 그 해 그는 그렇게 열사들의 대미를 장식하는 87 독재 타도 시대의 상징성을 가진 열사가 됐다.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 때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 때까지 운영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한 결과 그가 공안기관의 감시를 받을만한 위치가 아니었고, 경찰이나 안기부의 개입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학생회 차원에서 대응하지 않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렇게 핏빛으로 여름은 달아올랐고. 한총련은 광복절을 기념하여 제7차 8·15 민족대회와 제6차 범청학련 통일대축전 ‘남측’ 행사를 연세대학교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물론 한총련뿐만 아니라 또 다른 이적단체인 범민련과 범청학련 남측본부도 함께 행사를 주최했다.

 

정부는 이 행사의 이적성을 이유로 원천 봉쇄 방침을 밝혔고, 한총련은 갈수록 가속화되는 일반 학우 대중의 민심이반 가운데서 수많은 또래 젊은이의 죽음에 격앙돼 있는 학생들의 열기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전경 병력이 연세대 앞을 메우기 시작한 것은 8월 13일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2만여 명의 학생들이 몰려들었고(요즘에는 이런 숫자를 믿기 어렵다는 생각이 자꾸 들지만), 미처 연세대 학내에 진입하지 못한 학생들은 다른 대학에라도 자리를 잡기 위해 들어갔으나, 서울의 주요 대학 출입구에서는 이미 전경들의 검문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현장에 내가 있었다.

 

<이어서 읽기>

어느 고첩 이야기#1 주체적 의식화
어느 고첩 이야기#2 순수의 시대(1)

어느 고첩 이야기#3 순수의 시대(2)

어느 고첩 이야기#4 의심의 씨앗
어느 고첩 이야기#5 실패한 혁명

어느 고첩 이야기#6 새로운 희망

어느 고첩 이야기#7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1)

어느 고첩 이야기#8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2)
어느 고첩 이야기#9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어느 고첩 이야기#10 Mein kleiner Kampf

어느 고첩 이야기#11 그들만의 리그

어느 고첩 이야기#12 ‘겉치레 민주주의’ 대학교수들

어느 고첩 이야기#13 인생은 실전

어느 고첩 이야기#14 어른의 세계

어느 고첩 이야기#15 아이의 세계

어느 고첩 이야기#16 진실은 침몰한다(1)

어느 고첩 이야기#17 진실은 침몰한다(2)

어느 고첩 이야기#18 진실은 침몰한다(3)

어느 고첩 이야기#19 진실은 침몰한다(4)

어느 고첩 이야기#21 그 해 8월(2)

어느 고첩 이야기#22 그 해 8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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