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그리고 영웅담이 보여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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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주동식

 

-절대자에게 도전하는 자는 탁월한 지적·정신적 자질 가져야. 그리고 숙명적으로 좌절한다

-조선에 진정한 영웅이 없는 이유? ‘개떼들’이 질서에 도전하고 승리하고 영웅이 되기 때문 

-젊어서 잠깐 데모했다며 평생 ‘시대와 불화’한다는 시늉하면서 사는것들이 권력을 잡았다

 

 

 

<죄와 벌>은 절대자가 강요한 질서를 거부하고 대결하다가 좌절하는 영웅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죄와 벌>의 주인공은 초인 사상의 영향을 받은 라스콜리니코프라는 젊은 청년이다.

 

도스토에프스키 작품의 주인공들이 대개 그렇듯이 라스콜리니코프도 지적 정신적 심지어 육체적으로도 탁월한 품성을 가진 캐릭터이다.

 

탁윌한 품성을 가진 자가 신이 부여한 율법의 굴레를 벗어나려다 비극적 운명의 복수를 넘어서지 못하고 좌절한다는 스토리. <죄와 벌>은 그 구도를 보면 사실상 운명 즉 절대자가 강요한 질서를 거부하고 대결하다가 좌절하는 영웅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도스토엡스키가 이 작품에서 강조하려 한 도덕적 교훈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사실 도스토엡스키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유럽 문명에서 이런 영웅 캐릭터는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지적 유산의 하나이다. 시지프스의 신화나 이카로스의 설화 등이 사실은 모두 비슷한 구도이다. 헤라클레스나 아킬레스, 이아손 등 그리스 로마 신화의 숱한 캐릭터들도 본질적으로는 이런 비극성을 지니고 있다. 그 발현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그런 점에서 모든 비극은 영웅담이며, 비극 아닌 영웅담은 일종의 형용 모순이라고 본다. 영웅은 신이 부여한 질서에 도전하지만 반드시 패배한다. 인간의 숙명이자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막연하게 신보다 못한 자로 설정된 인간은, 유대교 전승에서는 신에 의해 창조된 자로서 확고하게 성격이 결정된다. 그리고 ‘창조된 자가 결코 창조한 자보다 뛰어나지 못하다’는 규정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창조주나 신에게 도전하는 자는 탁월한 지적 정신적 자질을 가진 자들이어야 힌다. 그리고 좌절해야 한다. 그래야 그 도전은 미화되고 정당화될 수 있다. 무엇보다 그 도전이 남은 인간들에게 소중한 자산이 된다. 그래서 영웅은 영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조선에서는 개떼들이 인간이 만든 질서에 도전하고 이 지상에서 승리한다. 그리고 영웅이 된다. 조선의 지적 전통에 진정한 영웅이 없는 이유이다. 실은 절대자가 없기 때문에 영웅이 없는 것이다.

 

도전의 성격 자체가 유치한데, 어떻게 영웅이 나올 수 있겠나.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는 나름 철학적인 고뇌나 문제의식을 갖고 범죄를 저질렀다. 비록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만한 지적 정신적 바탕이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쓰레기같은 인간들이

 

“우리는 사소한 도덕 같은 거 그런 거에는 구애받지 않는당께.”

“법치 그거 형식적인 것이고 가진 자들을 위한 도구일 뿐이재라.”

 

이러면서 지들의 개망나니 짓을 합리화한다. 조선에서는 정작 심각한 금기의 파괴와 도전을 해야 할 지식인들은 어려서부터 얌전하게 고분고분 기존 권위가 시키는대로 하면서 밥벌이하는 데 최적화되고, 정작 사회적 금기에 대한 파괴는 그럴 깜냥이 안되는 허접쓰레기 새퀴들의 몫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거지 양아치 새퀴들 몇십 몇백만 명이 심각한 표정 지으면서 라스콜리니코프 행세를 한다고 생각해보자는 얘기다. 이 나라에서는 거창한 시대적 도전 도발 그런 거 생각하는 것조차 사치다. 그냥 법 잘 지키는 얌전한 샌님으로라도 살아들봐라. 

 

그런 점에서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의 스승이다. 질서 잘지키고 끔찍한 상황에서도 자기 감정 표현조차 삼가하며 조심조심 얌전하게 사는 사람들이, 무슨 정신적 고뇌 때문에 지랄발광한다는 포즈 잡고 예술한다고 날뛰는 것들보다 훨씬 인류를 위한 업적을 많이들 남기더라. 노벨상도 많이 받고.

 

젊어서 잠깐 데모하고 반체제 생각했다는 걸 빌미로, 평생 시대와 불화한다는 시늉하면서 사는 것들이 이 나라 권력을 꽉 틀어쥐고 있는 게 하도 같잖아서 해보는 소리다.

 

위대한 예술작품, 위대한 과학적 업적, 위대한 사회적 변혁 모두가 위대한 자세와 위대한 정신이 치열하게 고뇌하고 현실과 투쟁한 결과물이다. 개폼 잡을 시간과 정력이 있다는 건 정작 중요한 과제와는 대립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이다.

 

구한말 일본을 거쳐 조선에 왔던 서양 지식인이 한일 양국민을 비교 평가한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조선인은 체격 조건 등에서 일본인들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일본인들을 훌륭한 군인으로 만드는 정신이 없다.”

 

그 정신이 뭘까. 규율과 질서일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프랑스 외인부대에 근무했던 한국인의 경험담도 떠오른다.

 

평상시 부대에서 껄렁대며 동료들에게 상남자인 척, 터프한 척하던 친구들이 정작 전투가 벌어지면 참호 밖으로 고개도 못 내밀고 오들오들 떠는 경우가 많고 평상시 회사원 같던 친구들이 마치 사무처리하듯 기계적으로 전투를 잘하더라는 얘기였다.

 

공자도 얘기했다.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을 할 수 없다.”

 

규율이나 기강이 무너진 인간들이나 사회로는 아무것도 가치있는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얘기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총체적으로 썩었고, 규율이 무너졌다. 이대로 가면 오래 못 버틴다. 망하기 전에 정신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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