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첩 이야기#15 아이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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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아재

 

-1996년 패닉의 2집 ‘밑’의 발매, 문화규제와 탄압의 상징으로 학교 계급론의 현실 드러내

-패닉 일범, 학교 계급론 위한 투쟁의 사건이기도 했지만, 학교 계급론에 균열을 만든 사건

-학교와 사회, 사실의 편린들이 하나의 형태 갖추며 유아적 계급론 압박. 아이의 세계 졸업

 

 

 

사실의 편린들이 하나의 형태를 갖추며 아이의 세계를 졸업하라고 내게 강요했다.

 

방구석 혁명이 적폐스러운 투쟁으로만 점철된 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비뚤어진 주류 세력과 궤를 달리할 뿐, 당시의 나는 엄연히 좌파였다. 신진 좌파로 인정받기도 했던 당시의 삶을 단편적으로 담은 사건이 있다.

 

1996년은 내 인생에 여러 가지 영향을 주었던 해였다. 그리고 그 해는 패닉의 2집 ‘밑’의 발매로 시작됐다. 그전까지 내게 패닉은 겉멋만 든 패션 좌파 가수쯤이었고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수록곡 중 ‘벌레’와 ‘마마’가 방송 불가 판정이 나오고 ‘혀’의 일부 가사가 수정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역시나 지금 생각하면 조선다운 일이었는데, 가사의 도덕성과 현실성에 대한 논쟁이 촉발됐고 나도 선봉대에 합류했다. 내게 이것은 더는 패션 좌파의 그렇고 그런 앨범이 아니라 문화규제와 탄압의 상징이 될 수 있는 앨범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벌레의 가사는 명시적으로 교사를 지칭해 비난하는 가사였고, 내가 당시에도 갖고 있던 학교 계급론의 현실을 불완전하게나마 드러내고 있는 가사라 생각했다. 특히 마지막 가사는 혁명을 재촉하는 가사 같은 느낌도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6년 어디 가나 나타나는 미친것들 이젠 일어나야 해. 무릎을 꿇고 맑은 눈을 곱게 뜨고 존경의 눈빛으로 끄덕끄덕하지 마. 대들어야 해 맞아도 눈을 똑바로 들어 수없이 이유 없이 당해왔어. 우린 하지만 지금 바꿔야겠어.”

 

결국 논쟁에서는 패닉의 ‘밑’을 지키자는 세력이 우위를 점했고, 일종의 문화 저항운동과 패닉 팬클럽의 패닉 지키기 운동의 기묘한 혼종이 탄생했다. 앨범과 관련된 소모임이 생겼고, 그곳에서는 ‘혀’가 개사된 점에서 착안해, 금지곡 가사를 패러디 가사로 개사해 기득권의 심의에 걸리지 않으면서 풍자적으로 계속 비난하는 가사를 너나 할 것 없이 올리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내가 틀딱 라임이나 쓰는 아재만 당시에는 어차피 틀딱스쿨 시대였기 때문에, ‘밑’의 개사 놀이는 나를 물 만난 물고기로 만들어줬다. 그 덕에 나는 당시 A군의 눈에 띄었고 우리는 의기투합했다.

 

A군은 선구적 문화운동가이자 좌파 문화계에 꽤 영향력 있는 모 교수의 아들이었는데, 교수 본인도 아닌 자제쯤이면 그따위가 뭐냐 하겠지만. 원래 그쪽 사람들은 북한 왕조의 대물림을 잘 보고 배워서인지, 아니면 이 분이 워낙 포스트 386세대 운동가 육성에 관심이 많았던 탓이었는지, 그냥 내로남불이고 유산을 물려주기 바빴는지. 아무튼, 결과적으로 대물림도 잘해서 스무 살도 안 된 이 친구는 자퇴를 언론에 이슈화시키며 저항 운동계에서 이미 이름이 알려졌었고, 유명한 가수들과 형 동생 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소모임의 활동은 결국 패닉의 팬 콘서트를 하고 개사된 가사를 패닉이 직접 부르는 이벤트까지 기획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 중 나의 벌레 개사가 꼽혔는데 A군의 강력한 추천과 패닉 고전 팬들의 반대 사이에 약간의 논란 끝에 절충안이 선택됐던 것 같다. 사실 지금은 이십여 년이 지난 일이고 나는 당시 기동력에 한계가 있었던지라 참가를 어차피 못하는 입장이어서 관심도 덜했기 때문에 실제로 콘서트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후 A군과는 교류를 계속했고, 모 교수와의 만남과 유명 남자 그룹의 작사를 부탁받는 일까지 이 관계는 이어지게 됐다. 물론 부탁만 받았고 실제로 작사를 한 적은 없다. 그 이야기는 그 해 있었던 더 큰 사건들 이후의 일이라 일단 다음으로 미룬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패닉 2집 앨범 사건은 학교 계급론을 위한 투쟁의 사건이기도 했지만, 학교 계급론에 균열을 만든 사건이기도 했다. 당시 내가 친누나처럼 따르는 초임 고교 교사가 있었는데. 어느 날 이 선생님과 함께 집에 가는 길에 내가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분과는 교육과 관련된 대화를 종종 했었는데, 내가 진정으로 아이들을 존중하는 교사라면 패닉의 ‘벌레’를 틀어주고 토론을 시키는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냐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름 정말 좋은 교육을 하려는 열정에 넘치는 초임 교사에게 찬물을 끼얹는 철이 없는 씹선비질이었지만 당시 내게 그런 걸 알만한 공감능력은 없었다.

 

그 이야기와 곡의 가사를 들은 그분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았고, 그 표정을 보고서야 나는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을 후회하게 됐다. 모든 교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가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행동하는 그런 구조도 있지 않냐는 계급론 쪽으로 대충 말을 돌려봤지만 갈수록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게 하는 꼴이었다.

 

나는 그 분이 어떤 자세로 학생들을 대하고, 어떤 자세로 수업을 준비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계속된 후회로 남았고, 급기야 계급론에 혼란을 주기까지 했다.

 

나의 논리대로라면 그녀 역시 나쁜 교사였지만 그녀는 정말 나쁜 교사가 아니었다. 내가 아는 가장 좋은 교사였다. 물론 ‘착한 자본가가 있다고 해서 자본가가 지배하는 사회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논리, ‘착한 지주가 있다고 해서 지주가 농노를 지배하는 사회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논리, 그리고 ‘착한 백인 고용주가 있다고 해서, 흑인 식모를 당연한 듯 부리는 사회는 안 된다’는 논리가 체화돼 있던 내게는 ‘착한 교사가 있다고 해서 교사가 학생을 지배하는 사회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논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 어떻게든 학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교사를 나쁘다고 규정한 나는 후회를 하면서 자신이 한 번도 교사의 입장에서 학교를 바라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면적인 상황을 오직 한 집단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구성한 나의 계급론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이었다.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도 단순히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자본가와 노동자, 교사와 학생의 단순한 지배구조가 아닌 훨씬 다층적 구조에 얽혀 있다는, 그동안 이미 충분히 알고 있던 사실의 편린들이 그제야 하나의 형태를 갖추며 나의 유아적 계급론을 압박하고, 아이의 세계를 졸업하라고 내게 강요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읽기>

어느 고첩 이야기#1 주체적 의식화
어느 고첩 이야기#2 순수의 시대(1)

어느 고첩 이야기#3 순수의 시대(2)

어느 고첩 이야기#4 의심의 씨앗
어느 고첩 이야기#5 실패한 혁명

어느 고첩 이야기#6 새로운 희망

어느 고첩 이야기#7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1)

어느 고첩 이야기#8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2)
어느 고첩 이야기#9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어느 고첩 이야기#10 Mein kleiner Kampf

어느 고첩 이야기#11 그들만의 리그

어느 고첩 이야기#12 ‘겉치레 민주주의’ 대학교수들

어느 고첩 이야기#13 인생은 실전

어느 고첩 이야기#14 어른의 세계

어느 고첩 이야기#16 진실은 침몰한다(1)

어느 고첩 이야기#17 진실은 침몰한다(2)
어느 고첩 이야기#18 진실은 침몰한다(3)

어느 고첩 이야기#19 진실은 침몰한다(4)
어느 고첩 이야기#20 그 해 8월(1)
어느 고첩 이야기#21 그 해 8월(2)

어느 고첩 이야기#22 그 해 8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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