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 우원재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고, 해외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살다보면 이런 경험들을 종종 한다.
–한국에서 ‘미개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주로 언급되는 게 서구사회에서의 경험이다.
–나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닌데 사사건건 트집 잡으려는 태도가 가장 문제라고 생각한다.
전형적인 미국 백인 여성인 아내가 한국에서 술자리에 갈 때마다 이상한 행동을 하던 때가 있었다. 동석자들의 술잔을 계속해서 감시하는 거다.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한국 문화에서는 타인의 술잔을 비워두는 행위가 무례한 행동이라고 배웠다고. 실제로 이전에 누가 자기 술잔이 비었다며 한 마디 했던 것 같았다. 첨잔도 잘못된 행동이라고 들어서 상대가 잔을 다 비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항상 술을 따랐다고 한다.

누군가의 빈 잔에 자꾸 술을 따르면서 권하는 행위는 타인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행동이자, 술을 취하게 만드려는 상당히 불쾌하고 무례한, 때로는 범죄적 성격을 띤 행동으로 인식된다.
물론 미국에서는 정반대다. 누군가의 빈 잔에 자꾸 술을 따르면서 권하는 행위는 타인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행동이자, 술을 취하게 만드려는 상당히 불쾌하고 무례한, 때로는 범죄적 성격을 띤 행동으로 인식된다. 나는 한국에서 술을 권하고 강제하는 행동이 미개하다고 생각하지만, 문화와 예절이라는 건 원래 논리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공통된 행동양식을 공유함으로서 느끼는 동질감의 일환, 즉 감성적으로 접근할 문제이기에 술자리에서 그 함의를 존중하고자 하는 편이다.
.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고, 해외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살다보면 이런 경험들을 종종 한다. 식사와 음주 ‘예절’이라는 건 생각보다 다양하다. 러시아에서 보드카에 토닉 워터를 섞으려고 했다가 농담 섞인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까시오 에 뻬뻬를 시켰는데 치즈를 더 뿌려달라고 하려고 했다가 멈춘 적이 있다. 친구 말로는 셰프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란다. 프랑스에서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는 빵은 식전빵으로 먹는게 아니라 식사와 함께 먹어야 한다고 들었다. 인도에서는 식사를 할 때 맨손을 쓸 때가 많고, 항상 오른손을 써야 한다. 이집트에서는 식당에서 물을 달라고 하거나 멀리 있는 물에 손을 뻗는 게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
하다 못해 가까운 나라 일본과 중국도 한국과 식사 문화가 다르다. 일본은 한국 기준 숟가락을 써야 할 때 젓가락을 쓰고, 그릇을 입 주변에 가져간다. 한국의 어르신들은 이런 행동을 하면 짐승이나 하는 짓이라며 핀잔을 줄 것이다. 중국에서는 타인의 집에서 식사 대접을 받을 때 음식을 남겨야 한다고 들었다. 그게 충분히 배부르게 대접받았다는 뜻이라고 한다.
.
요 며칠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른바 ‘면치기’에 대한 논란을 접했다. 면을 먹을 때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는 것이 맞다 틀리다에 대한 지루한 논쟁이었다. 인상적인 건 면치기를 비판하는 쪽의 극단성이었다. 미개한 행동이라는 거다. 한국에서 이런 ‘미개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주로 언급되는 게 서구사회에서의 경험이다. 해외여행중 면을 후루룩 소리내며 먹는데 와서 뭐라고 했다는 경험들이 공유된다. 그런데 이는 초점에서 벗어난 지적이다. 인도인이 한국에 와서 오른손으로 반찬을 주워먹으면 이상하게들 생각할 것이다. 마찬가지 아닌가? 문화와 예절이란 이를 공유하는 맥락 안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
서양 사람들이 뭐라고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 사족을 좀 붙이자면, 만일 미국에서 나와 일행들이 면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가 후루룩 소리내서 먹는다는 이유로 타인이 다가와서 그런 식으로 시비를 건다면 아마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거나, “Mind your own fucking business”라고 답할 것 같다. 지금까지 서구 국가는 물론, 해외에서 그런 불쾌한 경험은 한 번도 없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데 매너, 에티켓, 예의 등을 내세워 타인을 교정하려 하는 행위는 적어도 서구 사회에서 상당히 무례한 행동으로 인식된다.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나 호의를 바탕으로 조심스럽게 할 일이다. 만일 가까운 누군가가 아니라, 완벽한 타인이 다가와서 그런 시비를 건다면 그건 아주 높은 확률로 당신 행동에 문제의식을 느껴서 시비를 건 게 아니라, 당신이라는 존재(아마도 인종) 자체에 불만을 가져서 그랬을 것이다.

갑론을박이 이는 것만 봐도, 문화의 일부로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거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 면치기를 하는 한국인들을 보고, 서구의 에티켓을 기준으로 비난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다시 원래 논의로 돌아와, 지금 대한민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면치기 논란. 나는 여기서 왜 이렇게 강한 어조의 비난들이 나오는지 잘 모르겠다. 갑론을박이 이는 것만 봐도, 문화의 일부로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거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 면치기를 하는 한국인들을 보고, 서구의 에티켓을 기준으로 비난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심지어 지금 논의의 대상은 젓가락으로 먹는 국수 아닌가. 면식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취식 방법 역시 각기각색이다. 이번에 알게 된 거지만 일본에서는 후루룩 소리내며 먹는 게 칭찬이라고 한다. 여기에 정답과 오답이 있나?
.
국수 한 그릇 먹는 데에도 정답과 오답을 나누려고 하고, 이를 기준으로 타인을 재단하려 하는 것. 면치기를 비난하는 쪽이건, 면치기를 강요하는 쪽이건. 나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타인이 뭘 하든 사사건건 트집잡으려는 그런 태도가 가장 문제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불쾌하다는 게 타인의 행동을 강제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이를 깨닫는 게 굳이 말하자면 미개함에서 벗어나는 첫 단계라고 생각한다. 후루룩거리며 먹든, 쩝쩝거리며 먹든, 섞어먹든 비벼먹든, 나눠먹는 음식이면 또 몰라, 자기 음식 자기 방식대로 먹겠다는데 좀 내버려둬라. 나도 그런 시답잖은 걸로 호들갑떨며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 보면 밥맛 떨어져서 쌍욕 한 마디 하고 싶은데 참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