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남자 대란과 여가부 폐지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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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민

 

문제는 이 ‘알파남’은 원래도 소수인데 요즘 더 소수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책 설계는 소위 ‘알파’ 혹은 ‘괜찮은 남자’의 수를 늘리는 것에 집중돼야 한다.

남성이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하는 것은 국가적 당위에 해당한다.

 

 

필자가 20대 초반의 나이일 때 흔히 듣던 조언이 있다. 흔히 주변에서 보이는 호감형 외모의 엘리트 스타일의 남자가 어느 순간부터는 잘 보이지도 않게 되고, 그러한 남자와 교제하고 성혼에 도달할 확률은 시간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는 내용이 조언의 주를 이뤘다. 10년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 전반적으로는 맞는 얘기라 느끼지만 사실 중요한 점이 숨겨져 있다. 원래부터 소위 ‘괜찮은 남자’는 소수였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 ‘알파남’은 원래도 소수인데 요즘 더 소수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1) 전반적인 사회적 기회의 상실과 2)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괜찮은 남자’ 혹은 ‘알파남’이라고 불리는 남성의 조건으로는 여러 가지가 언급된다. 많은 여성들은 안정적인 직업과 번듯한 수입,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를 갖췄으면서 매력적인 외모와 화술을 가진 남자를 두고 ‘알파남’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 ‘알파남’은 원래도 소수인데 요즘 더 소수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1) 전반적인 사회적 기회의 상실과 2)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80~90년대만 해도 대학을 졸업한 남성이, 심지어 고졸자이더라도 번듯한 직장을 갖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사회의 고도성장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대다수의 여성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거나, 경제활동을 결혼 혹은 임신·출산 이후에는 중단했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보다 경제력에서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는 것은 굉장히 당연한 일이었다. 여성들이 남성의 조건으로 가장 중요시하는 조건인 경제력 측면에서 여성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남성이 지금보다는 명백히 상대적 소수였던 이유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알다시피 상황이 다르다. 청년 실업이 심각하고 예전에 비해 청년층에게 경제적 지위 상승의 기회가 크게 줄어들었다. 8:2에서 9:1이었던 고등고시 합격자의 비중은 6:4정도로 조정됐고, 소위 ‘안정적이고 번듯한 직업’의 상당수를 여성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조건 측면에서 남성들이 여성보다 크게 우위에 있지 못하고, 여성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남성의 수가 대폭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 최근 젊은 여성들이 많이 보는 외적 매력 변수를 추가하면 소위 ‘괜찮은 남자’의 수는 더욱더 급감한다.

 

재밌는 점은 ‘연애 시장’에서는 이 괜찮은 남자의 수가 실제로는 굉장히 적다는 사실을 여성들이 쉬이 알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이성에 대한 선택권을 보유한 남성들이 공통적으로 거의 예외 없이 보이는 특질은 바로 여러 여성과의 교제를 즐긴다는 데 있다. 잘난 알파남 한 명이 아주 여러 명의 여자를 만나면서 그들 모두에게 알파남과 교제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소위 ‘알파 고스트’ 현상이다.

 

과거의 연인만한 남성을 찾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사실을 여성들은 자신의 성적 매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결혼 적령기에 들어서면 느낀다. 본인의 매력이 떨어져서도 있지만, 사실 원래 알파남은 적기 때문에 1:1 매칭이 이뤄지는 결혼 시장에서 일부의 현명한 여자들은 과거의 남자친구가 자기보다 실제로는 몇 단계 이상 높은 남자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전 교제 경험으로 인해 높아진 여성의 눈은 웬만해서는 낮아지지 않는다. 알파 고스트 현상의 무서움이다.

 

이것이 바로 ‘괜찮은 남자 대란’의 본질이다. 잘난 알파남은 선택권이 많으니 결혼을 미루고, 알파남과의 교제 경험이 있는 상당수의 여자들은 다른 남성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알파가 아닌 남성들은 아예 시장에서 배제되버리는 이러한 현상은 당연히 낮은 성혼률과 세계 최악의 저출산 추세와도 연관이 깊다.

 

무서운 점은 과거 미국의 흑인 사회를 연구하며 결혼 시장에 대한 적확한 분석을 했던 학자 모이니핸의 진단이다. 모이니핸은 “어떤 인구 집단에서든 남성이 안정적인 직업과 버젓한 수입,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를 얻을 수 있는 폭넓은 기회를 갖지 못하면 한부모 가정이 늘어나고 여성과 아이들에게 부작용을 끼친다”고 분석했는데 이러한 진단은 한국 사회에게도 적실성이 있다.

 

괜찮은 남자의 수가 줄어들면, 소수의 알파남은 인조이 라이프를 즐기는 데 경쟁이 필요 없으니 결혼을 하지 않고, 여성들은 괜찮은 남편감을 얻을 기회가 줄어든다. 남성의 경제력을 이전받는 기회인 결혼의 성사확률이 줄어들면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약해지게 되고 고용이 상대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남편의 경제력에 의존해서 생존을 담보하기 힘든 상황에 내몰리는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의 정책 설계는 소위 ‘알파’ 혹은 ‘괜찮은 남자’의 수를 늘리는 것에 집중돼야 한다. 연애과 결혼 시장의 법칙이 사회정책 설계에도 반영돼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남성의 실업’은 가족 구조를 비롯한 사회구조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그 기저에서부터 미치는 변수로 연구돼 있다. 경제력이 없는 남성이 늘어나면, 가족이 해체되고 남성들은 더욱더 좋은 남편 및 아버지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미혼모, 편부모 가정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이들은 만성적인 빈곤과 범죄에 시달리게 된다. 사회적 계층 이동성이 닫힌다. 반면 경제력이 뛰어난 남성들의 수가 늘어나면 남성들끼리 경쟁이 붙기 때문에 더욱더 긍정적인 사회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 즉 남성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하는 것은 국가적 당위에 해당한다.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정책결정권자들이 많지 않다는 데 있다. 국회 출입하던 기자 시절 아마 이런 거까지 대강 다 이해하면서 젠더 이슈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은 국민의힘 전체에서 하태경, 김용태 정도였던 걸로 안다. 페미 묻은 민주당에는 기대도 안 한다. 학계나 언론계에도 통섭적인 이해를 가진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얼마 전 저명한 언론계 인사로부터 내가 페북에 실었던 글 내용이 감명 깊었다며 연락이 와서 한번 뵈었는데 취지에 크게 공감한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자기 같은 사람이 다수라는 얘기는 하지 않으셨다. 기성세대들에게 완전한 해결책을 기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여성가족부가 폐지돼야 하지만, 인구가족부 등의 이름을 가진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성 선택과 그것이 사회적 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높은 이해도를 가진 젊고 유능한 관료들이 인구, 가족학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살려서 일해야 하는 부처가 생겨야 하는 이유다.

 

[출처] 괜찮은 남자 대란과 여가부 폐지 담론 | 작성자 이경민

**작성자의 허락을 얻어 모셔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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