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문제도 정책플랫폼으로 해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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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호

 

과잉경쟁은 관문만 통과하면 양반귀족적 삶을 보장하는 제도의 문제지 문화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분들치고 역대 정부가 펼친 제도, 정책을 찬찬히 길게 살펴본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습니다.

정책플랫폼 개념이 없기에 곁가지 잡고 용쓰다가 포기하다가 엉뚱한 진단과 처방을 합니다.

 

 

북한(경제) 문제 전문가께서 저출산 문제에 대한 칼럼을 썼길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북핵 만큼 저출산도 국가 존망을 가르는 문제라고 했네요(물론 제 지론이기도 합니다. 아니 수많은 사람의 지론일겁니다).

 

소제목에 핵심 주장을 잘 요약했습니다. “찔끔 정책이 아니라 빅 푸시 필요/노동, 교육, 복지제도 함께 풀면서/과잉 경쟁 제어하는 문화 세워야“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긴데, 조금 새로운 것은 ‘문화’를 언급한 것입니다. 문화의 핵심은 종교입니다. 출산과 육아는 개인주의, 자유주의, 이기주의를 내면화한 젊은이들에게는 도대체 답이 안 나오는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손해막심한 일입니다. 애완동물 키우는 게 백번 낫습니다. 종교는 이해타산을 초월한 가치의 원천입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만 종교 아닙니다. 시민종교도 있습니다.

 

여성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얼마든지 피임도 할 수 있고, 다양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유 문명 시대에는 종교적 심성 없이 출산 육아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여성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얼마든지 피임도 할 수 있고, 다양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유 문명 시대에는 종교적 심성 없이 출산 육아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아니 종교적 심성에 빅푸시와 합리적인 노동-교육-복지제도가 결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김교수가 언급한 과잉경쟁은 고시, 공시, 면허, 입사 등 관문만 통과하면, 양반귀족적 삶을 보장하는 제도의 문제지 문화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 망국적 제도를 결사옹위하는 세력들이 너무 강대합니다. 노조, 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자, 좋은 직장을 가진 정규직(전임이상 교수 포함)은 물론이고 (낸 것 보다 훨씬 많이 받는 저도 속한) 현세대(40~50대) 입니다. 1987년 이후 최약체 정부로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꿀 개혁입니다.

 

자주 하는 얘기지만, 90도로 솟아 있는 높은 암벽도 자세히 보면 손잡을 곳과 발 디딜 곳이 있습니다. 이런 포인트를 잘 보고, 손발가락과 팔다리 힘이 좋으면 높은 수직 암벽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에도 급소가 있고 맥이 있습니다. 현상과 구조에 대한 면밀한 관찰, 분석, 비교, 그리고 도대체 ‘왜 이럴까’ 하는 집요한 의문과 아울러 실패와 좌절에 대한 성찰 등이 급소와 맥을 찾는 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지난 5월 6일 발표한 윤정부 110대 과제에서는 저출산과 저출생이 딱 한 번씩 언급되었습니다. “안전하고 질 높은 양육환경 조성 (복지부)”이라는 소제목 아래 “부모의 양육부담 완화, 아동의 건강한 성장 지원 및 저출산 위기(해소)” “양성평등 일자리 환경 조성을 통한 저출생 대응 및 성장잠재력 제고”가 전부였습니다. 경악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에 낸 인수위 백서를 보니, 내용이 제법 풍부해 졌습니다. 저출산이 5번, 저출생이 9번 나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영 실망스럽습니다. 한마디로 (할만큼 했는데도 불구하고 해결이 안되니) 저출산 문제와 전쟁 포기(항복) 내지 저출산 후폭풍을 관리/적응 정책입니다.

 

“11. 인구정책

 

2006년부터……. 저출생 현상을 완화하고 고령화에 대응하는 데 초점을 맞춰 온 우리나라의 인구 정책은 안타깝게도 그다지 효과를 내지 못하였다. 출생아 수는 2005년 44만 명에서 2021년 26만 명으로 18만 명 감소하였고……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나라 인구 정책의 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새 정부가 출범하는 시점에서, 지난 16년 간 효과가 크지 않았음에도 관행처럼 지속되어 온 인구 정책의 방향과 내용을 점검하여 보다 미래 지향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중략)

 

지난 정부까지 진행해 온 저출산 대응 중심의 인구정책은 이제 효력이 약화되는 시점에 접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선택일 수도 있는 영역에 국가가 개입한다는 청년들의 반감과 미래에 대한 국민적인 불안감도 조성되었다. 미래를 기획하는 윤석열 정부의 인구전략은….. 첫째, 인구변동으로 촉발된 각종 격차를 완화하고 해소해야 한다. 둘째, 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노동 시장에서 세대 간 공존이 가능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이미 기정사실인 빠른 고령화는 미래 한국 사회에 위기가 아닌 기회이고, 부담이 아니라 지속 성장의 발판이 되어야 한다. 넷째, 인구절벽이 심화되는 수축사회로의 전환에도 국민이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중략)“

 

저출산과 전쟁은 그만하고, 저출산 후폭풍 완충으로 방향을 틀자는 사람 많이 봤습니다. 북핵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스스로 현실적이고 현명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일겁니다.

 

그런데 이분들치고 역대 정부가 저출산 문제 해결하겠다면서 펼친 제도, 정책을 찬찬히 길게 살펴본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습니다. 문제의 원인과 구조 혹은 한국적 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의 관점에서 살피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이는 청년일자리 문제도,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도, 지역균형발전 문제도, 교육 문제도 대동소이합니다.

 

정책플랫폼 개념이 없기에 곁가지 잡고 용쓰다가 포기하거나 장님코끼리 만지기 하다가 엉뚱한 진단과 처방을 합니다.

 

제가 정책플랫폼을 강조하는 것은, 정책플랫폼을 고민하면 문제를 근본에서 고민하고, 종합적으로 고민하게 됩니다. 세계적 보편성과 한국적 특수성, 역대 정부의 성과, 한계, 오류, 그리고 주객관적인 역량 타산 등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책플랫폼 개념이 없기에 곁가지 잡고 용쓰다가 포기하거나 장님코끼리 만지기 하다가 엉뚱한 진단과 처방을 합니다.

 

저출산 문제든, 청년일자리 문제든, 지역균형발전문제든, 교육문제든 포기할 문제가 아닙니다. 거대한 융복합 문제를 아주 좁은 시야를 가진 전문가, 공무원, 땅개 의원들이 달려들어, 장님코끼리 만지기식 진단과 처방을 일삼다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절체절명의 사회적 문제를 빌미로 예산, 인력, 조직을 맛있게 얌냠하다가, 먹고 튀고, 후임자들은 도대체 해결이 안 되니, 이젠 항복하고 그 후폭풍만 완충하자는 주장을 하는 정책 생산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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