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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환규
–5일간 집에 가지 않고 곁을 지켰지만 환자는 떠나갔다. VVIP였건만, 허망하게 환자를 잃었다.
–환자가 위험한 상태에 놓였을 때, 의사는 늘 환자를 살리기 위해 애쓰지만 항상 성공 못한다.
–환자의 생명을 책임지는 의료진들은 저마다 그런 경험들이 가슴 저편에 켜켜이 쌓여있다.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이 일어난 후, 20 여년 전 일이 떠올랐었다. 오래 전, 포스팅을 한 번 했었던 일인데…
60대 남자였던 환자의 따님은 당시 초등학생이던 내 아들의 담임선생님이자 내가 다니던 교회의 선교팀원으로 내가 팀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환자는 내게 VVIP였다. 많이 부담스러웠지만, 전형적인 관상동맥협착질환을 가졌던 분으로 수술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4개의 혈관을 이어주는 수술이 무난히 진행되었고 술후경과가 무난해서 수술 일주일 후 퇴원하는 월요일이 되었다. 그런데 환자는 “오늘 아침에 검은 변을 봤어요”라고 얘기하셨다.

주말을 넘기고 경과를 지켜본 후 퇴원을 결정하자고 했는데… 다시 이틀 후인 일요일 휴일에 위장 출혈이 다시 발생했다.
퇴원 절차를 중지하고 위장출혈 검사를 진행했다. 위내시경에서 위궤양이 발견되었고, 약처방을 했다. 그런데 이틀 후인 수요일, 다시 위출혈이 생겼다. 이번에는 위에서 active bleeding이 관찰되어 소화기내과에서 위 내시경을 통해 클립으로 출혈을 일으키는 노출혈관을 잡았다. 그리고 퇴원예정이었던 금요일 다시 위장출혈이 생겼다. 이번에도 위내시경을 통해 클립으로 재차 출혈혈관을 잡았다. 두 번째 클리핑이었다. 주말을 넘기고 경과를 지켜본 후 퇴원을 결정하자고 했는데… 다시 이틀 후인 일요일 휴일에 위장 출혈이 다시 발생했다.
연락을 받은 후 소화기내과에 긴급히 연락하라고 하고 병원으로 뛰어나갔다.
휴일당직 소화기내과 전임의(fellow)가 이전처럼 위내시경을 통한 클리핑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예전과 달리 고전하고 있었다.
궤양 부위에 노출된 동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는 반대편 위벽을 때리고 있었다. 젊은 소화기내과 교수는 환자가 숨을 참지 못한다고 계속 환자에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이 분은 “숨을 참지 못하면 위장에 구멍이 날 수 있어요!”라며 환자를 다그쳤는데, 출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환자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어 숨을 참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땀을 뻘뻘 흘리던 소화기내과 전임의는 “안 되겠습니다. 아무래도 열어야 할 것(개복술) 같습니다. 이대로 계속하다가는 위장에 구멍이 나겠어요.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최선을 다하는 것을 봤기에 아쉬웠지만 수술을 하기로 했다. 나는 즉시 개복술을 담당하는 외과에 응급수술이 필요하다고 연락했다. 그리고 환자를 긴급히 수술실로 옮겼다. 모든 의료진들이 최선을 다해 환자를 재빨리 수술실로 이송했다.
응급상황에서 환자는 신속하게 수술실로 옮겨졌지만, 그리고 외과 전공의도 곧바로 수술실에 들어왔고 복부를 소독하고 수술포까지 모두 덮고 수술할 준비를 모두 마쳤지만 수술을 시작할 수 없었다. 외과 당직(on call)교수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늦느냐는 질문에 외과 전공의는 일요일 당직을 맡고 있는 외과 당직교수가 개인적 용무가 있어 이동 중에 있었는데 교통체증이 있어 늦는다고 했다. (당시는 교수들의 당직은 병원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응급상황에서 부르면 달려오는 on call 당직 시스템이었다)
대학병원에서는 일반적으로 교수가 부재한 상황에서 전공의가 수술을 주도해서 집도하지 않는다. 교수가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장을 열어 봉합하는 것은 일반외과 영역으로, 개복술의 경험이 많은 흉부외과 의사라도 타과 영역의 수술을 진행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 원칙이었다. (흉부외과는 주로 가슴을 열지만, 복부 대동맥 수술을 위해서 개복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직접 배를 열기 때문에 개복술에 익숙한 경우가 많음에도…)
on call 당직 외과 교수가 도착하기까지 1시간 동안, 나는 타들어 가는 심정으로 환자의 배를 누르며 기다렸다. 직접 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멍청하게 외과 교수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정말로 1분이 1시간 같았다. 환자의 위장 출혈은 계속되었고, 떨어지는 혈압은 수혈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약 1시간 후 도착한 외과 교수는 신속히 배와 위장을 열고 위장을 가득 채운 검은 피떡을 손으로 제거한 후 딱 한 바늘을 꿰맸다. 그렇게 교수가 도착한 지 불과 10분도 안 되어 출혈이 멎었다. 그러나 환자는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린 뒤였다.
혈압은 곧 상승했지만, 그래서 괜찮으리라 생각했지만 불행히도 많은 양의 수혈을 환자의 폐가 견디지 못했다. 환자는 ARDS(급성호흡곤란증후군 – 다량수혈의 부작용으로 발생할 수 있음)에 빠졌고, ECMO(에크모 : 폐기능을 대신하는 장치)까지 돌렸지만 불과 5일 후 심장마비가 발생하여 사망했다. 나는 5일간 집에도 가지 않고 그의 곁을 지켰지만 환자는 그렇게 떠나갔다. VVIP였건만, 그렇게 허망하게 환자를 잃었다.
환자를 잃은 후 나는 심하게 나를 자책했다. 가장 후회스러웠던 순간은 왜 당직 외과 교수를 기다렸던가에 대한 자책이었다. 관례를 지킨다고, 원칙을 지킨다고, 예의를 지킨다고 하다가 환자를 잃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소화기내과 의사가 땀을 뻘뻘 흘리며 클리핑을 하려다가 실패했을 때, 그때 환자를 수술실로 재빨리 옮겼을 때 곧바로 위를 열어 출혈 혈관을 꿰맸더라면, 그랬더라면 수혈량이 줄었을 것이고 ARDS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자책을 많이 했다.
당시 늦게 불려나온 on call 당직 교수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그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on call staff가 10분 대기조는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 내 경우는 1년 365일 on call 당직이었다. 대동맥 때문에…)
– 출혈이 일어난 날이 일요일이 아니었다면 환자가 생명을 잃을 가능성은 매우 적었을 것이다. 당직 전임의가 아닌 경험 많은 소화기내과 교수가 클리핑에 성공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또는 실패했더라도 외과 교수가 빠른 시간 안에 개복술을 통해 출혈을 멈췄을 것이다.
– on call 당직 외과 교수가 마침 10분 거리 안에 있었더라면, 그래서 빠른 시간 안에 수술이 가능했더라면 환자가 살았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 내가 외과 교수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개복을 했더라면 나중에 욕은 먹었을지 몰라도 출혈량이 줄어 환자가 살았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후약방문이다. 환자를 잃고 나서야 뼈아픈 복기를 하게 된다. 환자가 위험한 상태에 놓였을 때, 의사는 늘 환자를 살리기 위해 애를 쓰지만 항상 성공하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의료진은 그런 존재다. 그런 실패, 그런 자책, 그런 고통을 경험하면서 더 나은 의사가 되기 위해 이겨내는 노력을 한다.
지금 환자의 생명을 책임지는 의료행위를 하는 의료진들은 저마다 그런 경험들이 가슴 저편에 켜켜이 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