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감정노동자-환자들을 상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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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환규

 

겨우 설득해서 진료비를 받았는데,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는 고성을 지른다는 것이었다.

환자는 고성으로 앞뒤가 안맞는, 그러나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실컷 떠든 후에 진료실을 나갔다.

의사라는 직업은 감정노동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일희일비하는 직업이다. 알면서도 아직도 당한다.

 

 

다리/발의 정맥부전(정맥피가 중력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막아주는 판막의 고장)은 발 열감의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런데 다리정맥은 판막고장 시 초음파에 정확히 나타나는 것에 반해 발정맥은 역류가 생겨도 역류혈류의 속도가 낮아 초음파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발정맥의 치료는 까다롭고, 따라서 정맥부전에 의한 발증상의 치료는 위부터 아래의 순서대로, 즉 다리 –> 발목/발등 –> 발바닥의 순서로 치료한다.

 

발정맥의 판막이 손상되지 않은 경우, 발증상은 다리의 정맥부전의 치료만으로도 금새 좋아질 수 있다. 그러나 발정맥의 판막손상 여부가 초음파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발정맥의 판막이 손상되지 않은 경우, 발증상은 다리의 정맥부전의 치료만으로도 금새 좋아질 수 있다. 그러나 발정맥의 판막손상 여부가 초음파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발증상은 빨리 좋아질 수도,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는데 그것을 치료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틀 전 금요일, 발의 열감을 호소하는 65세 남성이 진료실을 찾았다. 발 증상을 호소하는 분들은 발의 작은 정맥까지 모두 검사해야 해서 여느 때처럼 양쪽 다리와 발의 정맥을 꼼꼼하게 검사했다. 다리에 정맥부전이 심하고 발에서 초음파에 역류가 잡히는 정맥이 보이면 오히려 치료가 수월하지만, 다리의 정맥부전이 심하지 않은 경우 발목과 발에서 원인을 찾아야 하기에 발목/발의 검사를 더욱 꼼꼼하게 검사해야 한다. 이 환자의 경우가 거기에 해당되어 검사 시간이 더욱 오래 걸렸다.

 

검사가 끝난 후 환자에게 다리와 발정맥 아틀라스를 펼쳐놓고 위 사항을 상세히 설명했다. 시술은 필요가 없고 주사치료만 필요하지만, 발정맥은 고장 여부가 원래 초음파에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다리부터 치료를 시작해서 발로 내려와야 하며 시간은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설명을 했다.

 

환자는 알겠다고 하고 진료실을 나갔는데, 잠시 후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가 들어와 아까 그 환자가 “왜 못고치는 병이라면서 돈을 받느냐”며 소리를 지른다고 했다. 한참 불평을 하면서 진료비를 못 내겠다고 하길래 겨우 설득해서 진료비를 받았는데,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는 고성을 지른다는 것이었다.

 

환자를 진료실로 불렀다.

 

“못 고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요?“

 

“치료가 어렵다는 게 그게 그 말 아닙니까!“

 

“많은 분들이 저희 병원에서 발열감 치료 받으셨어요. 발치료가 다리에 비해 까다롭다고 말씀 드렸지 치료가 안된다는 말씀은 드리지 않았는데 왜 치료가 안된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이보세요 의사 양반, 발 치료가 까다로우면 처음부터 말을 해야 내가 검사를 받을지 안받을지 결정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왜 나한테 선택권을 주지 않고 맘대로 검사를 하는 거요! 내 말이 맞지 않습니까!“

 

그는 계속 언성을 높였다.

 

나도 따라 언성이 높아졌다.

 

“아니, 검사를 해봐야 쉽게 치료가 될지 치료가 어려운지를 알 수 있는 거죠!“

 

“어쨌든 검사를 할지 말지 내게 선택권을 줘야 맞는 거잖아요! 왜 치료도 안된다면서 당신 맘대로 검사를 하는 겁니까!“

 

그 때 깨달았다.

 

“지금 발열감이 심하지 않으시죠?“

 

그가 답했다.

 

“사는데 큰 불편은 없소이다.“

 

그것이었다.

많이 불편했다면 저러지 않았을 것이다.

 

검사 후 치료기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하고 한 번 시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사치료를 여러 번 받아야 한다는데 본인의 불편감에 비해 치료비도 많이 들 것 같고 지방에서 여러 번 올라와야 할 것 같으니 번거롭고 그래서 치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그러고 보니 검사를 한 것이 억울하고, 더 정확히는 검사비를 낸 것이 억울했던 것이다.

 

환자는 고성으로 앞뒤가 안맞는, 그러나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실컷 떠든 후에 진료실을 나갔다.

 

그가 나간 후 진료를 하기 싫어졌다.

 

검사를 왜 했냐는 환자는 7년만에 처음 만났다.

(검사 전에 간호사가 모든 환자에게 검사의 필요성과 비용을 설명한다)

 

간호사에게 잠시 쉬자고 말했다.

그는 분명 이재명 지지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환자의 바로 직전 환자를 떠올렸다.

90세 할머니…

시술 후에 잠도 잘자고, 걸음도 편해지고 너무 많이 좋아졌다면서 고맙다며 몇 번이나 내 손을 잡으시던 할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다시 진료를 시작했다.

 

의사라는 직업은 감정노동직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일희일비하는 직업이다.

알면서도 아직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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