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 이병태
–사회적 강자들로 악당을 선정하는 순간 사회의 계급 간 투쟁의 구도, 막시스트적 구도를 갖게 된다.
–영웅에게 박수 치는 순간 피해자 편에 서서 문명을 저주하는 좌편향의 플롯에 동조하고 빠져든다.
–대부분의 좌편향성은 혁명의 숨은 의도가 아니라 돈벌기 위해 “공감능력”을 교묘히 활용하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와 언론 미디어가 좌편향인 이유?
드라마가 드라마틱(극적)이려면 스토리가 구성에서 선명한 대립 구도가 그어져야 한다.
그것은 아주 억울하고 순진한 우리가 같은 처지에 빠질 수 있다는 감정이입이 되는 피해자(Victims)를 상정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감정이입이 되어야 하기에 “보통 시람”이어야 유리하다. 피해자는 약자이기에 죄가 없고 억울해야 한다.

가해자(빌런)는 힘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총을 잘 쏘거나 (서부극), 하늘을 나르고 장풍을 쓰거나 (무협지) 돈과 권력을 갖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지만 도덕적으로 인격적으로 파탄난 사람들일 수 밖에 없다.
그 피해자의 반대편에 가해자, 악당(Villain)이 존재한다. 가해자(빌런)는 힘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총을 잘 쏘거나 (서부극), 하늘을 나르고 장풍을 쓰거나 (무협지) 돈과 권력을 갖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지만 도덕적으로 인격적으로 파탄난 사람들일 수 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좌편향이 아닌 빌런은 괴수들이거나 외계인 또는 유령이어야 한다. 이런 류의 악당물들은 남자, 청년층의 좁은 관객층을 갖는 한계를 갖는다. 결국 서부극이나 무협지를 빼고 사회적 강자들로 악당을 선정하는 순간 드라마는 사회의 계급 간 투쟁(Class war)의 구도, 막시스트적 구도를 갖게 된다. 뉴스도 주목을 끌려면 이런 극적 요소를 벗어나지 않는다.
최근에 유행하는 악당은 대형 자연 재난이다. 그런데 지구가 멸망할 정도의 재난 또는 지구를 떠날 수 밖에 없는 환경재난을 설명하는 길은 기후변화와 인간의 탐욕스런 기술 문명의 남용이다. 결국 재난을 악당으로 설정하자면 환경론자들의 반문명적 주장을 수용해야 한다. 그래서 이 또한 위장된 좌파성을 띄게 된다.
마지막은 영웅(Hero)이다. 악당을 물리치고 피해자들을 구한다. 여기에 상당한 극적 (다른 말로 비현실적인) 요소가 그려진다. 우리가 박수 치게 만드는 그런 영웅을 어떻게 그리느냐가 성공의 비결이다. 하지만 영웅에게 박수 치는 순간 우리는 사회적 약자로 그려진 편에 서고 사회적 강자 편을 배척하면서 우리 또한 계급 간 대결에 또는 환경이라는 피해자 편에 서서 문명을 저주하는 좌편향의 플롯에 동조하고 빠져드는 것이다.
문학, 예술, 드라마, 영화, 그리고 뉴스 미디어의 이 구도는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언제고 불변이어 왔다. 그래도 세상은 좌익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자유시장경제가 지배하고, 극단적 환경론이 아니라 문명이 지속발전하는 쪽으로 흘러왔다. 왜일까?
사람들은 엔터테인먼트에서 눈물 흘리고 감정이입을 하다가도 자신의 삶에 관련된 의사결정은 자신의 이해를 중심으로 하는 이기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경제적 동인은 잠시의 환상 속에서 우리를 정신 차리고 빠져나오게 하는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영우가 박원순을 부활시킬까 너무 걱정하지 말자. 저들은 늘 그래왔어도 세상은 미치지 않았다.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의 대부분의 좌편향성은 혁명의 숨은 의도가 아니라 결국 돈벌기 위해 우리의 “공감능력”을 교묘히 활용하는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도 효과적인 비지니스 (사업계획) 발표를 위해서도 이 구도를 활용하라고 가르친다. 먼저 악당 (문제)을 설명하고 그 다음 Victim. 그 문제가 조직과 고객에게 얼마나 큰 피해와 부작용을 만들어 내는지. 그 다음은 영웅(Hero). 내 아이디어와 제안이 문제(악당)를 어떻게 청소하는지. 우리는 이 선명한 대결 구도의 스토리텔링에 훅 빠져드는 뇌구조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