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한계-비키니 오토바이 주행과 관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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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태

 

일반적으로 자유의 한계는 다른 사람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이 경계선이다.

가치(자유)의 다양성, 모호성을 인정하지 못하니 피해를 자처하는 것이다.

타인의 행동에 불쾌해 한다면 타인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만든 자해적 피해일 가능성이 크다.

 

 

비키니 오토바이 주행을 옹호했더니 위험한 사고라고 한다.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위는 어린이들이나 사회에 방종을 불러오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자유의 한계는 다른 사람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이 경계선이다.

 

어떤 사람이 비키니를 입고 웃통을 벗고 바이크를 탄다고 다른 사람의 선택, 즉 자유를 제약하거나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귀하는 정장을 입고 타시면 된다.

 

어떤 사람이 비키니를 입고 웃통을 벗고 바이크를 탄다고 다른 사람의 선택, 즉 자유를 제약하거나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귀하는 정장을 입고 타시면 된다. 즉 직접적 피해자가 없는 행위는 불법화하지도 규제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일반적 자유의 한계로 이해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적 도덕적 규범을 이탈해서 나를 불쾌하게 만들거나, 어린이들에게 비교육적 영향을 끼치는 “간접 피해”는 어떻게 해야하나? 이 간접 피해를 인정하는 순간 자유는 송두리째 사라진다. 누군가가 불쾌해 한다면 다 금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집단주의, 교조주의, 전체주의를 부르는 요구가 된다. 이 행위가 어린이들에게 해가 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미래 세대가 새로운 시도 없이 사회의 전통적 규범대로 살라는 것과 자유로운 영혼으로 신나게 거침없이 살아도 된다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절대선이라고 말할 수 있나? 가치(자유)의 다양성, 모호성을 인정하지 못하니 피해를 자처하는 것이다.

 

당신이 타인의 자유로운 행동에 불쾌해 한다면 그것은 타인이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 만든 자해적 피해일 가능성이 크다. 즉 타인의 자유와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없이 자신의 가치관만이 옳다는 편협성이 만든 자해다. 비키니 바이크를 자유와 개성의 입장에서 보고 유쾌발랄이라고 보는 나는 피해가 없고, 그걸 비도덕적 비교육적 행위로 보는 사람은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만약 그 행위가 사회의 해가 되는 원인이라면 어떤 사람이든 그 광경을 보는 사람은 상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의 한계는 타인의 선택의 자유와 재산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지 않는다면 존중되어야지 주관적 가치의 충돌로 제약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사형의 이유도 신성모독과 청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게 죄목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그게 틀렸다는 것을 책으로 남겼는데 수천 년 후의 우리가 아직도 이렇게 미혹한 세상에 살아야 하는가? 속좁은 고지식한 자신을 되돌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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