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과 윤 정부의 규제 개혁의 목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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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태

 

모든 변화는 변화의 와중에는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변화란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이별이고, 그것도 강요된 이별인 경우가 많다.

혁신 국가의 최종 목표는 혁신에 정부의 허가가 불필요한 나라다.

 

#디지털혁명 #변화의수용 #PermissionlessInnovation

이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행어가 잦아들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의 진보는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가능성이 크다.

 

모든 변화는 변화의 와중에는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변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하고 당황스러운 상황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산업혁명도 초기에는 긍정적 평가는 드물었다.

 

기계 파괴 운동은 물론, 목가적 전원생활을 등지고 공장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은 누구에게도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기계 파괴 운동은 물론, 목가적 전원생활을 등지고 공장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은 누구에게도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레미제라블 (장발장)은 산업혁명 초기의 민중의 고달픔과 산업혁명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굶고 있는 조카에게 주려고 빵 한쪽 훔쳤다고 장기 징역형에 처해지는 사회가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는 프랑스의 모습이다.

 

박정희 대통령에 의한 우리나라의 산업혁명 초기에도 이 나라의 식자들이 본 모습은 레미제라블과 다르지 않았다. 전태일 신화가 그랬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산동네가 그렇게 묘사되었다. 고향은 잊혀지고, 가족은 생이별하고, 사장에게 근로자들은 짓밟히는 모습이 그 때 우리가 배운 대한민국의 모습이었다.

 

칼 막스는 산업혁명 초기의 자본주의의 모습을 보고, 자본주의의 필연적 종언을 예측했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가 정리했듯이 산업혁명은 인류의 기원부터 인류를 괴롭혀온 3가지 해결 불가능으로 보였던 문제, 기아, 질병, 전쟁의 공포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극적인 전환점이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전의 인류와 이후의 인류로 뚜렷하게 나뉜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대로, 그 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업혁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변화란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이별이고, 그것도 강요된 이별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변화는 “피해자와 패자”를 양산하고 그것이 거대한 인류 역사의 진보마저 문제로, 부당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여러 가지 정의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두뇌의 작업을 돕는 기술의 진보가 중심이다. 국가 경제가 발전할수록 경제 성장이 둔화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지식산업으로의 변화다. 그런데 제조업은 생산성 향상이 되는 반면, 서비스업은 생산성의 향상이 거의 없다는 특징이 있다. 100년 전 교수나 지금 교수나 경제학, 수학을 가르치는데 더 생산적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생산성 향상이 없는 분야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게 되는 것이 선진국의 생산성 저하의 큰 원인이다. 이는 노벨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일찍 작고해서 불발에 그친 William Baumol과 공동 연구가 William G. Bowel에 의해 제시된 가설로 Baumol 효과 또는 원가 병 (The Cost Disease)이라고 부른다. 서비스업이 생산성 향상 없이 인건비가 올라가니 이 원가를 가격에 전가해서 소비자 후생이 나빠진다는 뜻이다. 컴퓨터는 점점 싸지는데 왜 의료비는 계속 오르기만 하느냐는 푸념을 경제학적으로 풀어서 설명한 것이다.

 

인공지능 (빅 데이터)은 바로 두뇌의 작업을 돕는 기술이다. 이것이 지금과 같이 진화하면 바로 지금까지 경제 성장의 둔화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서비스업에 획기적 생산성 향상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인류의 경제는 또 한 번의 퀀텀 점프가 가능해진다. 서비스업은 대체적으로 노동집약적이고 이름이 말하듯 고객을 서비스해야 하는 직업이다. 이것이 인공지능의 기술이 담당하는 영역이 커져가면 우리는 인간을 서비스해야 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 늘어만 가는 정신 질환의 전염병에서 인류가 해방될지도 모른다.

 

​또 하나 선진국의 저학력, 저숙련 노동자들이 글로벌화에 반발하고 정치적으로 분노하고 있는 이유는 개도국의 저임금 노동자들과 경쟁하기 때문이다. 로봇과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자동화 기술이다. 즉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진화하면 저임금을 찾아서 기업이 해외로 나갈 필요성이 낮아진다. 거꾸로 개인화된 서비스가 발달하게 되는데 그러려면 사업장은 고객 가까이 가야 한다. 내 몸에 꼭 맞는 신발과 옷을 내가 원하는 개인화된 디자인으로 주문해서 로봇과 인공지능이 바로 대응할 수 있다면 그 공장은 고객 가까이 있게 된다.

 

​이러한 변화가 우리의 시대에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서구 선진국과는 달리 나의 세대는 농경사회에서 1-2차 산업혁명을 거쳐, 지식 서비스 산업혁명을 한 생애 안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보면 격랑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억울하고 황당한 변화 속에 정신적 스트레스도 많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이처럼 인류가 근본적 변화, 풍요로운 변화, 평화로운 변화를 짧은 나의 인생에서 보고 경험하고, 참여하고, 누리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타다 금지법을 만들고, 우버와 구글 지도를 배척하고, 다국적 플랫폼 회사를 매판 자본처럼 취급하는 국수주의 나라로는 이 혁명의 낙오자가 된다.

 

​산업혁명이 늦어서 식민지가 되어 지금도 그 역사의 트라우마를 극복 못하고 갈등하는 대한민국, 지식 산업혁명은 뒤지면 안 된다. 타다 금지법을 만들고, 우버와 구글 지도를 배척하고, 다국적 플랫폼 회사를 매판 자본처럼 취급하는 국수주의 나라로는 이 혁명의 낙오자가 된다.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다. 이 혁명을 적극 수용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이다. 거대한 혁명의 거부는 결국 역사적 낙오자다.

 

혁신 국가의 최종 목표는 혁신에 정부의 허가가 불필요한 나라다.

 

Permissionless Innovation이라고 한다. 규제 개혁의 목표는 몇 건이라는 무의미한 양적인 것이 아니라 얼마나 Permissionless Innovation에 접근하느냐이다. 사업가가 공무원의 자비에 의존하는 나라는 혁신 국가에 들지 못한다.

 

​자유시장경제는 바로 Permissionless Innovation의 경제다. 윤 정부가 정말 자유시장경제를 믿고, 규제개혁을 한다면 그 목표는 이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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