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헌법의 이념성 #4. 자유적 사회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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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성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를 가르는 분기점은 ‘생산수단을 공유로 할 것인가, 사유로 할 것인가’이다

사회적 자유주의는 19세기 말에 고전적인 자유주의가 극심한 경제변동과 조직된 노동운동으로 위협받고 있을 때 태어났다

제헌헌법의 이념을 사민주의적으로 보다는 사회적 자유주의로 보아야 더 적실하다

 

자유적 사회주의(liberal socialism)와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의 개념을 분석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혼선이 생긴다.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이런 큰 차원의 개념들을 정치수사적으로 사용하면서 종종 왜곡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분석적으로 개념 내용의 줄기를 잡자면, 자유적 사회주의는 자유주의 정치원칙을 도입한 ‘사회주의’이고, 사회적 자유주의는 빈곤이나 의료서비스 및 교육과 같은 사회문제에 주목하는 ‘자유주의’이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를 가르는 분기점은 ‘생산수단을 공유로 할 것인가, 사유로 할 것인가’이다. 어떤 형태로든지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추구하면 사회주의자이고, 생산수단의 사유를 전제로 자유시장경제를 주축으로 삼으면 자유주의자이다.

 

독일의 사민당은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이념노선을 자유사회주의로 일컬었다.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포기했다면 이념의 좌표가 자유주의로 기울었는데도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뒤에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전면적으로 포기하면서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하고, 계급정당이 아니라 국민정당으로 거듭났다. 이때 용어의 혼란이 야기되었다. 예를 들어, 독일의 사민당은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이념노선을 자유사회주의(freiheitlicher Sozialismus)로 일컬었다.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포기했다면 이념의 좌표가 자유주의로 기울었는데도 말이다.

 

고데스베르크 강령의 요점은 ‘사회정의를 가로막지 않는 한 생산수단의 사유화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자유시장이 소수지배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면 국가의 시장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케인즈주의를 받아들였다.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채택함으로써 독일의 사민당은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목적으로 하는 전통적인 사회주의를 포기한 셈인데, 아이로니컬하게도 여전히 자신들을 ’자유적‘이긴 하지만 여하튼 ’사회주의자‘로 선언하고 있다.

 

사회주의를 포기하고서도 사회주의자로 자부하는 것은 모순이다. 아마도 이념적으로 사회주의와 결별하면서도 운동사적인 전통을 잇고자 그리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개념사용의 엄밀성을 추구하려면 이런 정치적인 수사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궁극적으로 포기한 사민주의자를 사회주의자로 볼 수는 없다.

 

자유적 사회주의의 원조는 놀랍게도 존 스튜어트 밀이다. 그는 자유주의의 3대 거장 중 한 사람이다. 인류를 진보적인 존재로 보았던 밀은 후기에 들어서자 인간의 도덕성이 성숙하면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완전하게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현재는 아직 인간의 도덕성이 미성숙되어 있으므로 자본주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단계에서도 노동자의 자율경영이 성장할 수 있고, 점차 경제민주주의가 풍만해지면 종국에는 사회주의가 도래하리라고 믿었다.

 

자유시장에서 시나브로 사회주의가 발전하는 까닭을 밀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같은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으로 보았다. 그는 시장의 중앙통제를 거부하였으며, 민주주의는 정치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분야에서도 시행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렇듯 사회주의가 자유시장에서 발전될 수 있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먼 미래에 실현될 것이언정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후기의 밀은 자유주의자라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사회주의자’였던 셈이다.

 

자유적 사회주의를 이념노선으로 삼고 있는 정치세력은 누군가? 고데스베르크 강령에서 보듯이, 케인즈류의 혼합경제를 받아들인 전후의 사민주의 정당들이 스스로 ‘자유적’ 사회주의자로 치부하기도 했다. 앞서 지적했듯이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제3의 길을 걸었던 토니 블레어나 고든 브라운의 ‘새로운 노동(New Labour)’운동을 자유적 사회주의로 간주하는 학자도 있다. 그렇지만 경제성장을 목적으로 공공영역과 사사영역이 서로 경쟁하도록 부추기는 한편 노조의 국유화 주장을 일축했던 것을 보면, 영국 노동당의 노선을 자유적 ‘사회주의’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제2차 대전 뒤에 사회정의를 앞세우고 복지정책을 추진해온 자유민주국가들의 정치흐름은 본질적으로는 사회적 자유주의의 이념노선을 따랐다고 보인다. 자유 가치의 사회적 차원에 주목하고 자유시장을 적절하게 규제하여 시민의 권리를 증대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유주의는 19세기 말에 고전적인 자유주의가 극심한 경제변동과 조직된 노동운동으로 위협받고 있을 때 태어났다. 개인의 자율성과 시민권을 강조하면서도 정부가 나서서 빈곤과 의료서비스 및 교육문제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움텄다. 이처럼 자유방임적 자유주의의 대안으로 태어난 사회적 자유주의는 케인즈류의 국가개입주의를 실천하고 혼합경제를 운영하면서 복지국가를 추구해왔다.

 

현대정치의 주류로 자리 잡은 복지국가의 청사진은 영국 자유주의의 대표적인 두 거두인 케인즈과 베버리지가 그려 놓은 것이다. 케인즈는 케인즈혁명으로 불리는 국가개입주의의 혼합경제를 창안했고 베버리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체계를 설계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사회적 자유주의의 정권은 중도 또는 중도좌파로 치부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렇지만 사회적 자유주의의 세례를 받지 않은 정권은 거의 없을 정도로 사회적 자유주의의 혼합경제와 복지주의는 현대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다.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좌우의 정치세력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사회적 자유주의 영향권에 있다. 앞서 살폈듯, 노르딕 사민주의나 서유럽의 사민주의도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포기하고 모두 사회적 자유주의의 품 안으로 기어 들었다.

 

현대의 사회적 자유주의가 자유방임의 고전적 자유주의와 국가독점의 고전적 사회주의의 대안으로 자리 잡아온 정치현실을 고려한다면, 제헌헌법의 이념을 사민주의적으로 보다는 사회적 자유주의로 보아야 더 적실하다. 사민주의를 사회주의의 일종으로 치부하는 한국인의 의식혼란상을 감안할 때, 제헌헌법의 이념 뿌리를 사회적 자유주의로 규명해 놓는 것이 절실한 과제이다. 비록 서구의 정치현장에서 사민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가 동어반복적인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 우리에게는 ”정책정권“일뿐인 사민주의를 ’정치이념‘인 사회적 자유주의와 구별해야할 절대적인 필요가 있다.

 

[출처] 제헌헌법의 이념성 | 작성자 김주성 교수, 전 한국교원대학교 총장

**작성자의 허락을 얻어 모셔 왔습니다.

 

#1.이념평가
# 2. 국유화와 이익균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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