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헌법의 이념성 #3.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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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성

 

제헌헌법을 사회주의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사회민주주의적이라고 진단될 수는 있다

제헌헌법에 사회민주주의적인 요소가 존재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제헌헌법에 현대 사민주의적인 요소가 존재한다고 평가한다면 제헌헌법의 이념을 사회적 자유주의로 평가하는 셈이다

 

제헌헌법 18조, 85조 및 87조에서 표현된 “국유화 및 이익균점권”이 제헌헌법의 경제이념을 표방한다고 볼 수 없다면, 제헌헌법을 사회주의적이라거나 사회민주주의적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그렇지만 제84조에서 표현된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국가개입주의’가 제헌헌법의 경제이념을 표방하는 것이라면, 제헌헌법을 사회주의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사회민주주의적이라고 진단될 수는 있다.

 

이렇게 혼선이 빚어지는 까닭은 우리 지성계에서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개념 인식이 혼란스러운 탓도 있지만, 서구 지성계에서 개념 내용이 시대에 따라 바뀌어 온 탓도 있다. ‘사회주의’는 우리 사회에서와 달리 서구 사회에서는 일관된 개념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민주주의’는 시대에 따라 개념 내용을 달리해왔다.

 

사회민주주의는 19세기에 ‘조직된 마르크시즘’을 가리켰고 최근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서 운용되는 ‘정책권력’을 의미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19세기에 ‘조직된 마르크시즘(organized Marxim)’을 가리키다가, 20세기에는 ‘조직된 수정주의(organized reformism)’를 가리켰고 최근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서 운용되는 ‘정책권력(policy regime)’을 의미하고 있다. 정책권력을 의미하는 사회민주주의는 최근에 한국지성계에서 ‘사민주의’로 일컬어지고 있기도 하다.

 

‘조직된 마르크시즘’이었던 사회민주주의는 당시에 사회주의와 다름이 없었다. 사회주의는 생시몽이 조어한 것으로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추구하는 정치, 경제 및 사회이념을 의미하고 있다. 19세기에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전제한 자유방임적 시장경제가 주도하고 있었다.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체제가 17세기부터 자본주의로 불렸다.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경기불안정과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것을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주장하였다. 실현 방법은 혁명이었다. 사회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는 모두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혁명을 추구했다.

 

20세기에 들어와 사회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는 갈라섰다. 사회주의자는 여전히 혁명을 주장하고 사회민주주의자는 혁명을 반대하고 의회민주주의를 수용하였다. 대표적인 수정사회주의의 이론가였던 베른스타인은 독일사회가 이미 혁명을 통해서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추구할 수 없게 되었다고 진단하고 의회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 독일의 사회민주주의는 이제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회주의와 결별하고 ‘조직된 수정주의’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사민당의 주도로 제정된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정질서가 의회민주주의로 귀결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이제 민주사회주의자가 되었다. 러시아의 볼셰비즘과 달리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를 배격하고 민주적으로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추구하려는 이념이 바로 민주사회주의다. 서유럽의 사회주의는 민주사회주의로 전환되었고, 이제 사회민주주의자와 민주사회주의자는 서로 구별할 수 없는 일란성 쌍생아가 되었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와 민주사회주의의 밀월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회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서 운용되는 ‘정책권력’으로 탈바꿈하자, 민주사회주의자는 사회민주주의자와 결별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사회민주주의는 노사정 대타협으로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노르딕 사민주의와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포기하고 사회적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독일식 사민주의로 분화되었다. 노르딕 사민주의는 1938의 살토셰바덴의 협약으로 출발했지만, 독일식 사민주의는 1959년의 고데스베르크 강령으로 출발했다.

 

스웨덴의 경우 샬트세바덴 협약으로 노측은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노사협의 사안을 노동장의 권리와 노동환경으로 한정했다. 사측은 고용안정과 노동환경개선을 약속하고, 회사경영의 자율권과 경영권 방어를 위한 황금주의 발행권한을 약속받았다. 노사가 계급갈등보다는 함께 상생의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독일의 경우 고데스베르크 강령으로 사민당은 정책노선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자본주의를 대치하려는 목표를 포기하고 그것을 수정한 혼합경제를 추구하고, 사민당을 계급의식이 아니라 윤리의식에 기초한 국민정당을 만들기로 하였다. 이로써 자본주의 클럽에 정식회원으로 가입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르딕 사민주의와 독일식 사민주의는 여전히 생산수단의 사회화에 대해서 미묘한 입장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노르딕 사민주의는 스웨덴의 경우 1983년에 회사수익의 20%를 노동자기금으로 조성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기업의 사회화가 단행되자 다국적 대기업인 이케아, 테트라파 및 H&M이 해외로 본사를 옮겼다. 이에 놀란 스웨덴의 국민은 1991년에 노동자기금을 폐기 처분한다. 스웨덴의 사민당은 ‘사회화’의 개념을 ‘경제에 대한 민주적 영향의 증대’로 재정의 하고, ‘노동자기금’의 설립을 다시는 주장하지 않았다. 노르딕 사민주의는 독일보다 21년이나 앞서 마르크스와 결별하지만, 32년이나 늦게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포기한 셈이다. 이로써 현대 사민주의는 민주사회주의와 최종적으로 결별하였다.

 

서구의 이념지평을 염두에 두고, 제헌헌법이 사회주의적인 요소와 사민주의적인 요소를 혼합하고 있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사회주의적인 요소와 혼합되었다는 주장은 국유화 및 국영화나 이익균점권의 헌법조항들이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목적으로 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사민주의적인 요소와 혼합되었다는 주장은 국유화 및 국영화의 헌법조항을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의미한다고 해석하지는 않더라도, 이익균점권 조항이 바이마르 헌법처럼 경제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익균점을 하려면 일상적인 경영참여는 하지 않더라도 이익분배라는 가장 첨예한 재정이슈의 경영판단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경영참여는 바이마르 헌법에서처럼 경제민주주의의 핵심요소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국유화 및 국영화 조항이나 이익균점권의 조항들을 문자대로만 읽고 확대해석 한 것이다. 그 조항들이 건국 초기의 국력확보에 대한 긴급성이나 적산불하의 특수상황을 겨냥해서 입안되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유화 및 국영화의 조항이나 이익균점권의 조항을 확대해석하지 않고도 제헌헌법에 사회민주주의적인 요소가 존재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제헌헌법을 노르딕 사민주의나 독일 사민주의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민주의의 시각에서는 노사협조를 위한 이익균점권 조항이나, 사회정의나 균형발전을 위한 국가개입주의도 사민주의 정책과 부합한다.

 

물론 난점이 있다. 그것은 제헌 당시의 노르딕 사민주의나 독일 사민주의는 아직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제헌헌법의 노사협조 정신이나 국가개입주의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전제하지 않았다. 제헌 당시의 사민주의 시각으로는 제헌헌법에 사회민주주의적인 요소가 존재했다고 볼 수 없다. 제헌헌법의 노사협조 정신이나 국가개입주의를 사민주의적 요소로 평가하려면 반드시 독일의 경우 1959년 이후, 스웨덴이 경우 1991년 이후의 사민주의 시각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포기하고 노사협조와 사회정의 및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국가개입주의는현대 사민주의가 정책의 본령으로 삼고 있지만, 본래 사회주의나 사민주의와 상관이 없었다. 그것은 사회주의나 사민주의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권적 자유의 사회적 조건에 주목한 자유주의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사회적 자유주의로 개념화되었다. 영국에서는 뉴리버럴리즘(new liberalism), 미국에서는 모던리버럴리즘(modern liberalism), 그리고 독일에서는 레프트리버럴리즘(left liberalism)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현대의 사민주의는 그들의 운동사적인 연원에 상관없이 이념지평에서 보면 본질적으로 사회적 자유주의다. 따라서 제헌헌법에 현대 사민주의적인 요소가 존재한다고 평가한다면, 그것은 제헌헌법의 이념을 사회적 자유주의로 평가하는 셈이다.

 

[출처] 제헌헌법의 이념성 | 작성자 김주성 교수, 전 한국교원대학교 총장

**작성자의 허락을 얻어 모셔 왔습니다.

 

#1.이념평가
# 2. 국유화와 이익균점권
# 3.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 4. 자유적 사회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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