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의 경제관 그리고 무지의 정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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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여옥

 

– 이효리 팬 또는 그 남편의 팬들이 그 곳에 몰리면 이웃 상점들에게도 사업 기회가 온다

– 전여옥과 같은 단순논리가 대형 유통점 강제휴무제를 만들어 냈다

– 경쟁없는 고통없는 시장을 얄팍한 감성팔이로 선전하는 을의 논리가 판을 친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데 이효리 부부가 카페한다고 지적한다.

 

재벌 집 며느리들과 딸들이 빵집해서 욕먹었던 역사를 끄집어 내며.

시장에서 경쟁을 우리나라의 ‘따뜻한 자본주의’를 꿈꾸는 보수 세력들은 이렇게 본다.

 

강자들에게서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그런데 그 것이 한걸음만 나아가면 사회주의다. 사회에 생산적 기여와 무관하게 일자리를 주고 필수 재화를 보장해 주라는 주장과 동일한 세계관이다.

 

강자들에게서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그런데 그 것이 한걸음만 나아가면 사회주의다. 사회에 생산적 기여와 무관하게 일자리를 주고 필수 재화를 보장해 주라는 주장과 동일한 세계관이다.

 

경제적 자유가 약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자유인가?

소비자가 몰린다면 이효리 부부 카페가 주는 차별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이 커피를 안 판다고 인생샷을 찍을 기회가 없는 다른 카페에 수요가 분산되나?

이효리 카페가 그리 불공정하면 전여옥은 스타벅스 외국 대기업 앞에서 연일 일인 시위라도 해야하는 것 아닌가?

 

카페가 커피 파는 곳이다.

사업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단순 논리에 빠진다.

커피를 소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집에서 본인이 타먹어도 되고, 벤딩 머신에서 빼먹어도 된다.

그런데 왜 카페에 가나? 그것도 특정 카페를 선호하나?

여기에는 커피를 넘는 가치들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널려있던 다방과 스타벅스가 다른 것이다.

이걸 한 카페가 없어지면 자동으로 다른 카페에 수요가 분산된다는 오해들을 하는 것이다.

이효리 팬 또는 그 남편의 팬들이 그 곳에 몰리면 이웃 상점들에게도 사업 기회가 온다. 제주도 전체의 관광이 늘 수도 있다. 왜 이효리 가게 옆의 카페는 불쌍하고 그보다 가난한 옆집 라면 가게는 안 불쌍한가? 경제는 이렇게 늘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단순 논리로 함부로 칼을 들이댈 수가 없는 것이다.

 

전여옥과 같은 단순논리가 대형 유통점 강제휴무제를 만들어 냈다. 대형 유통점 휴무날은 인근 골목의 매출도 같이 준다.

전여옥의 따뜻한 정의의 논리를 적용하면 이렇다.

전여옥처럼 국회의원도 해서 지명도가 높은 사람들이 방송 토론자나 해설자 기회를 과점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지명도 없이 그런 돈벌고 방송에 나가고 싶은 무명의 청년들에게 양보해야 정의롭지 않는가?

 

경쟁은 경쟁자들에게는 괴로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참가자들을 단련하고 차별화하고 혁신하게 만들고 구조조정을 하게 만든다. 이효리 부부의 스타성이 손님을 끈다면 다른 커피숍은 더 친절하고 더 멋진 인터리어 더 색다른 조합의 상품과 엔터테인먼트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커피샵이 공급과잉으로 어렵다면 이런 혁신 능력이 안되는 업자들은 퇴출하게 된다. 그래야 더 크게 망하게 되기 전에 현명하게 접는 사업자도 살아남은 사업자도 서로에게 좋다. 그 사이 소비자들은 더 좋은 소비 경험을 한다.

 

경쟁없는 고통없는 시장을 얄팍한 감성팔이로 선전하는 을의 논리가 판을 친다.

 

전여옥 귀하부터 방송 출연기회 무명의 인사들에게 양보하라. 방송사가 그들 안써준다고? 이효리 옆가게 카페도 마찬 가지다. 소비자가 안가는데?

 

전여옥 귀하부터 방송 출연기회 무명의 인사들에게 양보하라.

방송사가 그들 안써준다고?

이효리 옆가게 카페도 마찬 가지다.

소비자가 안가는데?

 

이런 분들이 보수당 국회의원을 하니 그리 엉터리 규제가 양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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