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면제와 양심적 병역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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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nh Lee

 

단순히 18개월의 차이 아냐 전시에 전방 돌격이냐 후방 대피냐 차이

대체복무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뿐만 아니라 양심 없는 이들에게도 매력적인 선택지여서는 안 돼

 

1.양심적 병역거부에서 양심은 누가 어떻게 판단하고 측정할 것인가.

측정할 수 없으면 평가할 수 없고, 평가할 수 없으면 판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전시에 징병되면 전방으로 끌려나가 죽을 것이 거의 분명한 상황에서는, 단순히 죽기 싫다는 마음으로 징병을 거부하는 것과 무기를 들 수 없다는 집총거부가 구분되지 않는다. 무기를 들 수 없다는 신념이 죽기 싫다는 본능보다 더 존중받아야 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굳이 구분해야 한다면 그런 문제를 맞닥뜨린다.

 

한편 평시에는, 단순히 2년간 시간을 버리기 싫다는 억울함과, 무기를 들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처벌도 받기 싫다는 집총 거부가 구분되지 않는다. 진심을 구분하려면 한쪽 선택지에 집중된 혜택을 제거해 봐야 한다. 

평시의 균형추는 익숙하다. 2년에 상응하는 대체 복무가 될 수 있을 것인데, 문제는 집총을 제외하더라도 2년이라는 군복무는 군복무 이외에 무엇으로도 대체할수 없는 고립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행군조차 총을 들지 않으면 훨씬 편하고, 총 대신 같은 무게의 쇳덩이를 들더라도 총만큼 들기 거추장스러운 형상은 아니다. 징역형의 사회적 낙인을 제외한다면, 2년간의 교도소 생활은 신체적으로는 군복무보다도 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복무 기간을 3년이나 그 이상으로 올리는 방안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최소 2배는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문제는 전시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리 60년동안 일어나지 않은 전쟁에다가, 북한은 포문을 개방하고 남한은 포문을 개방하지 않아 어차피 개전 즉시 일방적인 학살을 당해 전쟁이란 개념 자체가 없어진다 하더라도 어쨌든 군대는 전시를 가정한 집단이다.

 

전시에 징병에 순순히 응한 사람들의 ‘전사’에 대응하는 어떠한 균형추도 달 수 없다. 사형을 제외하고는. 사형조차도 처형장에서 편하게 머리에 총을 한방 맞고 즉사하는 편이, 최전방에서 허벅지 관통상을 당하고 서서히 죽는 것보다는 훨씬 매력적인 선택지다. 전시에는 사형 이외에 고귀한 집총거부의 양심과 죽기 싫다는 겁쟁이들의 하찮은 울부짖음을 구분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군대의 의의에 따라 평시와 전시를 모두 고려한 무게추는, 평시 현역의 2배 대체복무시 무죄이되 전쟁 발발시에는 즉각 총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진정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설령 평시조차 사형당하더라도 집총만은 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집총과 수혈 이외에 다른 모든 분야에서는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국민을 아무 실익 없이 전과자로 만드는 제도도 찝찝하다. 하지만 그런 페널티 없이는 가짜 양심수들을 걸러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읍참마속은 마속을 직접 죽이지 않고는 진정한 교훈을 주기 어려운 방식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시장경제를 우회하려는 방법이 그랬다. 돈이 없는 자가 그 상품을 가장 필요로 할 수 있으니,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물자를 정책적으로 분배하자고. 그것이 군대식 무상 보급이다. 물론 이상적으로는 돈이라는 더러운 매개수단 말고 진정한 필요성을 보는 것이 좋고, 더러운 징역보다는 진정한 양심을 물어 무죄를 선고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결국 물건은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 변동에 따라 적절히 분배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나 대가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2. 진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설령 사형을 당하더라도 총을 들지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

군대와 수혈 문제를 제외한다면 이들은 사회의 나머지 부분에서 여전히 0.9사람의 몫 정도는 해낼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무조건 감옥에 집어넣기보다는 모두가 만족할만한 대안을 생각해보길 바랐다.

남자로 살아야 하는데 태어날 나라는 고를 수 있다면, 군복무 단 하나만으로도 한국을 거를 이유가 충분해진다. 거의 모두가 하고 있어서 그렇지 자기 인생계획에 상관없이 가장 귀중한 청춘 2년을 날리는 것은 개인과 사회 모두에 비극이다. 사회 전체를 날리지 않기 위해 할 수 없이 묵묵히 희생할 뿐이다.

대체복무는 단순히 양심적 병역거부자뿐만이 아니라 양심이 없는 이들에게도 매력적인 선택지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진짜 양심의 의미조차 빛을 바래게 만든다. 군대는 예방접종과 같다. 한 두명이 거부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진 않지만, 모두가 거부한다면 당장 큰일이 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다른 군인들 덕분에 진짜로 총을 들 상황을 피하고, 백신접종 거부자는 다른 이들이 부작용을 감수하고 접종한 덕에 집단면역 속에 숨어서 혜택만 본다. 가장 중요한 가치관을 모두가 피해를 감수하며 배려해 줬다면, 복무 환경이나 기간은 충분히 양보할 만하지 않은가.

 

충분할 정도의 대체 복무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존 일반 복무의 희생 강도가 워낙 센 탓에 어지간해서는 균형을 맞추기 어려울 것이다. 자유와 사생활을 빼앗기고 고된 훈련과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힘든 일이 사회에 얼마나 있겠는가. 그러니 그 균형은 복무 기간으로 맞추어야 하는데, 3년은 지나치게 짧다. 오지에서 일하는 의무복무 장교도 3년이 넘어가는 실정이다. 3년으로 해도 양심없는 일반인들까지 거짓 양심선언을 할 정도로 매력이 있는 선택지다. 최소 4년은 해야 하지 않을까.

가장 약한 부분을 무기로 호소하면서, 나머지 멀쩡한 부분까지 무임승차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무거운 물건을 들지 못할 순 있지만, 그 시간에 다른 할 일을 찾아야 한다. 나는 이들 대신 총을 들었지만, 이들이 다른 분야에서 5년정도를 일해준다면 불만이 없을 것 같다. 내가 가지 않은 기나긴 대체복무의 길이 아쉽지도 않을 것 같다. 그들이 처벌받기보다는 나와 공평하게 일을 나누는 정의만을 원할 뿐이다. 이에 덧붙여, 여자로 태어났다면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을 고민에 인생이 통째로 흔들리는 그들에게 남자로서 약간의 연민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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