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사람들과 ‘코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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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연실

 

– 선진국은 돈 좀 있다고 되는 것 아냐

– 한국을 졸부국가로 보는 게 안타까워

– 참된 선진국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넘치고,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문화가 잡아야

 

오늘 아침 서울역 환승하는 곳에서 셋이 어리둥절, 난감해하는 외국인들이 보였다. 내가 “무엇을 도와줄까요? 필리핀에서 오셨지요?”라고 물었다. 미국 LA에서 왔단다. 40대 초반쯤 돼 보이는 부부와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딸이었다. 요즘 한국에 오는 외국인들의 특징이 하나 있다. 10대나 20대 자녀 특히 딸이 한국을 좋아해 부모가 같이 여행을 온다. 명동역 근처 호텔을 잡았다고 한다. 일주일쯤 머물 거라니 서울에서 무엇을 느낄까? 필리핀 사람들은 초여름 장마철보다는 가을 단풍철에 오는 게 가성비가 더 좋다.

이 외국인들이 들고 있는 교통카드가 환승을 거부했다. 내가 카드를 찍어보니 승차 처리가 되지 않은 거였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역무원에게 연락해 일 처리를 도와줬다. 예전과 달리 역무원은 영어를 유창하게 했다. 서울역 담당자라 그랬을 수도 있겠으나,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 세대와 달리 영어 잘 하는 이들이 많다. 마음이 뿌듯했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딸의 아빠가 내게 물었다. “우리가 지금 미국 국적이지만 원래는 필리핀계이다. 당신은 우리들이 필리핀 사람인 걸 어떻게 알았나? 혹시 피부색? 아니면 얼굴 이목구비? 신기하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척 보면 안다. 물론 피부톤이나 얼굴 생김새도 있지만 특별한 느낌이 있다. 보는 순간 ‘필리핀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다. 마간당 우마가!!! “(필리핀 타갈로그어로 ‘굿모닝!’이라는 뜻) 그들은 내가 말끝에 자기 민족의 말로 아침 인사를 하자 “매우 놀랍다”고 했다.

 


나에게는 23년 간 여러 필리핀 지인들이 있었다. 한국 사람들 중 은근히 필리핀 사람들을 무시하는 이들이 있다. ‘필리피노’들은 알고보면 참 좋은 사람들이다. 선하고 친절하다. 성실하고 똑똑하며 책임감이 강하다. 내가 국내외에서 겪어본 다양한 필리핀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특히 여성들이 가정을 책임지는 등 모성애도 놀랍다. 오늘 만난 그 가족도 느낌이 선해 보였다.

 

한국인들은 필리핀 사람들을 무시할 자격이 없다. 나는 기회가 되면 ‘코피노’ 이야기를 꼭 쓰고 싶다. 코피노란 ‘코리언’ 남자와 ‘필리피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한국인 남성들이 필리핀에서 씨를 함부로 뿌려 태어난 아이들을 말한다. 나는 필리핀에 파견된 한국인 선교사들이나 사업가들 그리고 현지 사람들을 통해 많은 사연을 들었다.

 

정말 창피하고 미안하며 부끄러운 말 ‘코피노’, 한국인 숱한 남자들이 골프 여행이니 연수니 하며 필리핀에 가서 무슨 짓을 하고 오는지 안다. 지금 여름 방학이다. 방학 때마다 일선 학교 교사들도 필리핀이나 태국, 인도네시아 등으로 가서 무작위로 씨를 뿌린다. 특히 전교조 교사들의 이중성에 경악하곤 했다. 8년간 내 자녀들 학교의 명예교사 부탁을 받고 활동했었다. 그때 일선 학교의 실상을 깊이 알게 되었다. 한국인 남자들이 돈이 많은 것으로 소문나서 그런 일이 쉽게 벌어진단다.

 

우리들은 같이 지하철을 같아타기 위해 이동하며 잠시 대화를 나눴다. 여학생의 어머니는 태권도 2단이라 예전에 국기원 행사 등으로 한국에 몇 차례 왔었다고 한다. 남편과 딸이 한국에 호기심이 커 여행을 왔단다. 한국 장충체육관 지을 때 원래는 일본의 건축 기술이 필요했다. 그러나 한국의 자존심상 일본을 배제했는데, 당시 체육관을 지을 기술이 필리핀에 있었다. 필리핀의 건축 기술 도움을 받았고, 직접 장충체육관을 지은 건 한국 건설사였다.

 

나는 오늘 대략 10분 정도를 외국인 가족들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썼다. 이 필리핀계 미국 사람들이 여러 차례 나에게 “쏘 카인드”, “쏘 카인드”를 연발하기에 잠깐 내 지난 얘기를 들려줬다. “예전에 내가 영어도 잘 모르고 낯선 나라에 처음 갔을 때,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싱가포르 현지인들과 다국적 외국인들이 내게 너무도 친절하게 잘 대해줬다. 내가 지구촌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것이다”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옛시절 경험이 약이 되었다. 누군가 외국인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발견하면 나는 즉시 움직인다.

원어민들 앞이라 “나는 영어가 짧고 불완전하다”며 자수를 하자, 그들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아무 문제 없다. 당신은 영어 잘한다. 우리가 이렇게 10분간 대화를 하고 있지 않은가?”하며 격려도 해줬다. 나의 경우, 잘 아는 영어 문장이나 알고 있는 일상 생활영어만 안다. 나는 가끔 이죽희 교수님이나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처럼 고급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여성이었다면, 분명 내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 텐데 하며 혼자 상상을 해본다. 그래도 이만큼 외국인들과 소통하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특이하게 나는 어딜 가나 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자주 만난다. 내가 지하철을 주로 이용하니 더 그렇다. 어느 날은 하루에 다섯 번이나 도와줘야 할 외국인들을 만난 적도 있다. 신은 왜 내가 큰 인물이 되어 나라를 빛내거나 역사적으로 업적이 남을 만한 일을 주지 않았을까? 여장부다운 일은 허락하지 않는가 보다. 어째서 어머니처럼 모성애를 발휘하며 살도록 할까? 하늘이나 신 또는 운명이 나의 장단점을 너무도 깊이 알기 때문일까?

 

지하철에서 보는 외국인만 해도 국적이 무척 다양하다. 엊그제는 크로아티아 여행객을 만났다. 남태평양의 피지섬이나 동티모르, 아프리카 배넹에서 온 이들도 만난다. 나는 스페인어를 ‘올라’와 ‘그라시아스’만 안다. 그런데 가끔 영어도 모르고 한국어도 모르는 중남미 사람들을 만난다. 서로 소통이 안 될 때는 내가 스페인어를 잘 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중남미 사람이 어디를 가려고 하는지?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스페인어로 직접 통화하게 한 뒤 도와준 적 있다. 지난번에 남미에서 온 이들은 동대문에 가서 옷을 사고 싶다는 젊은이들이었다. 옷 장사를 하는 이들로 3명의 도매상, 처음 한국에 왔다며 자기 나라에 없는 지하철을 보고 몹시 놀라워 했다.

 

1호선 시청역 안에 서울시관광재단에서 파견한 젊은이들이 둘씩 서 있다. 지나가는 이들에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니면 “어디 찾고 계시는데 있습니까?”하며 앵무새처럼 말한다. 지난 1년간 그들에게 길을 묻거나 그들이 누구를 도와줄 일이 생기는 걸 나는 본 적이 없다. 시청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 직장인들이다. 그러니 젊은이들에게 길을 물을 이들이 거의 없다. 하루종일 우두커니 서서 귀한 시간만 낭비하느니 차라리 서울역으로 가게 해야 한다. 온종일 교통량이 많고 전철 4개 노선이 지나며 다양한 외국인들이나 노인들이 헷갈려하는 서울역, 그곳에 배치하는 게 낫다. 내가 서울시관광재단에 직접 찾아가서 말을 해줄까 싶다.

나는 그저 오늘 내게 일어난 일, 비록 스쳐 지나갔어도 나와 인연이 된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큰 일은 아니지만 만 리 밖에서 한국에 처음 온 이들이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통과하지 못할 때, 선뜻 도와준 것 하나로 그들은 한국이나 한국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졌을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외국인들은 대개 자신이 직접 겪은 사람들을 통해 그 나라 이미지를 갖는다. 그 이미지가 평생 가기 때문에 우리 모두 대한민국의 얼굴이자 민간 외교관이다.

 

선진국은 그냥 돈 좀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외국에서 한국을 졸부국가로 보는 게 안타깝다. 참된 선진국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넘치고,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 그러니 어찌 우리를 찾아 온 손님, 지구촌 이웃들에게 함부로 하거나 소홀히 대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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