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흠뻑쇼’ 논쟁에 부쳐: 집단적 도덕감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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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

 

싸이 흠뻑쇼에 대한 논란은 집단주의적 도덕감정에서 비롯된 것

자유를 근거로 한 흠뻑쇼 옹호를 넘어, 흠뻑쇼 비판에 대한 새 비판점 찾아야

흠뻑쇼 비판론의 문제점은 특별히 물을 더 낭비하지 않은 사람을 특별히 더 비판한 ‘불공정한 비판’

 

싸이의 흠뻑쇼가 사람들의 도덕 감정을 자극했습니다. 세계 어디에서나, 나라에 비극이 일어나면 자중하는 것이 미덕입니다. 사람마다 언제 자중해야 하는지를 다르게 여길 뿐, 거의 모든 사람이 비극 앞에서 자중할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정서에 더 예민한 편입니다. 흠뻑쇼가 열릴 때에는 전국적으로 가뭄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몇몇 농민은 물이 부족해서 생계를 위협받았습니다. 그럴 때 물을 흩뿌리는 행사를 열었으니, 도덕 감정을 자극할 만했습니다.

 

이런 집단주의적인 도덕 감정 그 자체를 문제삼아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사회는 어느정도 집단으로 도덕 감정을 공유할 때 유지됩니다. 집단으로 공유하는 도덕 감정이 하나도 없다면, 최소한의 사회적 소통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공용어 없이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처럼 말입니다.

 

 

누군가를 비판할 때에는 동일한 기준에 따라 비판해야 합니다.특별히 더 낭비하지 않은 사람을 특별히 더 비판한다면, 이는 불공정합니다.

 

자유를 근거로 흠뻑쇼를 옹호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누군가의 자유는 모두의 자유 또는 모두의 이익보다 우선시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나라가 어떤 이유에서든 자유를 제한할 조건을 설정해 두고 있습니다. 자유 외에도 소중한 가치가 있고, 모든 자유는 누군가의 자유를 제한할 때 성립합니다. 물 낭비가 농민의 생존권이나 나라의 안전을 위협한다면, 물을 낭비할 자유는 통제될 수 있습니다.

 

흠뻑쇼를 향한 비판의 문제점은 불공정하다는 것입니다. 흠뻑쇼가 일상 속 물 소비나 다른 행사보다 특별히 더 많은 물을 소비했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전국적인 가뭄일 때에도, 누군가는 목욕을 하거나 수영장에 방문해서 만만치 않게 물을 소비했을 것입니다. 흠뻑쇼를 열지 않았더라면 농민의 생존권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는 심각하게 물이 부족한 곳이 아닙니다.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가 있는 만큼, 누군가를 비판할 때에는 동일한 기준에 따라서 동일한 강도로 비판해야 합니다. 특별히 더 낭비하지 않은 사람을 특별히 더 비판한다면, 이는 불공정합니다. 이런 고민 없이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비판한다면, 유치하다는 역공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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