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혁명과 이승만] 이승만 재판했던 홍종우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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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도형 & 윤상용

 

 

책을 편집 출간하며 작가의 의도와 입장을 그대로 전달해야 하는 것과는 별개일 때가 왕왕 있다. [세 번의 혁명과 이승만]을 내면서도 같은 경험을 했다.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가 평리원 재판장으로서 사형을 면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승만에게 ‘태 100대와 종신징역’형을 선고한 데 이어 형을 집행함에 있어 곤장을 치기 전 나가 버린 것에 대한 과정과 상황의 이해도 그것 중 하나다. 바로 이 사형에서 종신형으로의 감경과 곤장 100대 또한 때리는 시늉만 내는 것으로 그침으로써 이승만을 살린 것을 두고 그 주인공에 관한 논란을 작가는 고종의 신임을 받던 선교사들과 고종 자신의 지시에 의한 것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그러나 나는 사실 공유한 포스팅의 페친 윤상용 선생 의견과 같은 입장이다. 홍종우가 프랑스 유학 3년 동안 파리의 사교계에 처음 등장해서 한 연설문을 보면 조선이 처한 상황과 주변 열강의 영향에서 벗어난 자주독립국으로서의 개화와 개혁을 역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김옥균 암살 후 왕당파들이 환대를 하고 자신들을 대표하는 위치에 세우고자 했음에도 홍종우는 그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물론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대한제국 수립에도 일정 역할을 했지만, 일러전쟁 이후 친일파가 득세하며 홍종우는 급격히 몰락의 길을 걷는다. 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나는 홍종우를 강경 왕당파로 보지 않는다. 세계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그에 따른 개화의 필요성을 마찬가지로 절감하고 있던 젊은 개혁가였다. 다만, 해외 문물과 제도 등을 수용함으로써 조선을 개혁으로 이끌고자 한 입장에서 외세를 앞세우거나 힘을 빌어 전제왕정의 전복을 꾀한 김옥균과는 대척점에 설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 그 연장선상에서 개화개혁파 홍종우 개인의 결단으로 사형수나 다름없던 이승만을 살린 게 아닌가 싶다. 홍종우가 보기에 이승만은 적어도 외세, 그 중에서도 일본을 배후에 두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또한 자기 필요와 자기를 부정한 자들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절대 군주, 폭군의 위상을 포기하지 않았던 고종의 잔인한 성정을 보더라도.

 

편집자의 책 읽기, 아니 원고 읽기는 지식인 전문가, 일반 교양인들의 독서와 조금은 색다른 맛이 있을 때가 있다. 책을 편집하는 동안은 저자나 작가의 입장 그대로를 거의 수용하게 되는 것과는 별개로.

 

 

윤상용(5월 30일 오후 10:18)의 원글 
요새 시간이 많아진 관계로 밀린 책들을 좀 보는데, 우선 읽던 것들부터 보는 중. 아까 그러다가 <세 번의 혁명과 이승만>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미국 망명 전 이승만이 국사범으로 체포됐다가 재판을 받게 된 부분인데, 여기서 재판장이 ‘강경 왕당파’인 홍종우(김옥균을 상해에서 암살한 그 사람이다)로 배정되자 그날 황성신문은 “이승만은 사형을 면하기 어렵다”고 기사를 실었다고 한다.

 

하지만:…석 달여의 재판이 끝나고 드디어 판결이 내려졌다.
“태 100대와 종신징역!”
사형을 각오하고 있던 이승만에게는 의외로 낮은 형량이었다. 함께 탈옥하며 간수에게 총을 쏘았던 최정식에게는 사형이 선고됐다. 이승만이 사형을 면한 것은 알렌 미국공사와 선교사들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에 고종이 특별지시를 내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중략)…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입회했던 재판장 홍종우가 곤장을 치기 직전 밖으로 나가 버리고, 김태윤은 때리는 흉내만 냈다. 이는 부친 이경선이 뇌물을 줬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가난한 이경선에게 아들의 목숨을 건질 만큼 재물이 있었을까 의심스럽다. 그리고 홍종우는 비록 왕당파이기는 하나 혼자 힘으로 프랑스 유학을 다녀올 정도로 의지가 굳고 투철한 이념가였다. 그가 정적의 우두머리에게 그것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국사범에게 뇌물을 받고 형 집행을 면해주었다는 것은 개연성이 부족하다. 아마도 고종 등 유력자의 지시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p.89~91)

자, 이 부분이 왜 흥미진진하냐 하면, 이 홍종우라는 사람이 꽤 복잡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책은 고종이 홍종우를 시켜 이승만을 풀어준게 아닐까 한 듯 하나, 사실 정황을 보자면 그랬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사실 김옥균의 암살범으로 등장했던 양반이 나중에 가서는 이승만을 살렸다는 사실이 흥미로운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꽤 많은 이가 주목했다. 당장 홍종우에 대한 책이 몇 권 있는데… 몇 해 전에 연구서적 비슷하게 나온 책 중에는 <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정명섭/추수밭)>가 있고, 살짜쿵 엉뚱하지만 홍종우를 주인공으로 삼아 일본 여류 소설가인 아오야기 미도리(靑柳綠)가 쓴 <고종의 자객>이라는 책이 있다. <고종의 자객>은 사실 쪼끔 비추인데… 1914년생 일본인 작가가 1970년대에 홍종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소설을 썼다는 것은 대단하나, 흐름 자체가 좀 단조로운데다 홍종우 인생의 가장 흥미진진한 하일라이트(그렇다. 김옥균 암살이다)는 너무 간략하게 축약해서 지나가버린다.

아무튼 홍종우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자면, 그가 고종과 한 편이었을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
우선 그는 양반가문 출신으로 과거만 줄창 준비했으나, 고종이 매관매직을 하면서 그렇게 벼슬 길 오르긴 힘들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해외 체류 경험을 고종에게 말해주고 특채가 되는 루트가 있다고 들어 몇 년간 프랑스로 가 신문사에서 일하다 귀국했다. 그리고 고종에게 썰을 풀었지만 결과는 Fail.
근데 얼마 후 갑자기 고종이 소환을 해 뭔가 하고 뛰어갔는데, 그게 바로 김옥균에게 접근해 암살하고 돌아오면 원하는 관직에 올려주겠다는 제의였다. 사실 그는 그런 일 해본 적이 없던 사람이니 주저했지만, 거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안한다고 하면 자기 목숨도 부지하기 힘들므로(…) 받아들였다. 고종은 그가 양반집 출신인데다 외국 물 좀 먹었다는 측면에서 김옥균에게 접근하기 쉬울 것으로 보고 섭외했다고 한다.
그는 김옥균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했고, 주변인 증언을 보자면 김옥균은 살짜쿵 홍종우를 경계하긴 했으나 끝에 가서 방심한 듯 하다. 고종이 가짜로 보낸 위조 편지(리홍장이 만나 줄 테니 상해로 오라고 함)를 받고 상해까지 간 김옥균은 도착 후 리홍장과 연락이 안되자 숙소에 처박혔고, 김옥균을 경호하던 와다 엔지로를 비롯한 나머지 인원에게는 나가 놀던지 알아서 하라고 함. 그러자 김옥균이 홀로 된 것을 본 홍종우가 김옥균의 방으로 들이닥쳐 총으로 사살했다. (차라리 이 장면은 만화 <왕도의 개>가 더 잘 묘사한 것 같다)
그리고 대담하게 방에서 나온 그는 고종이 손 써 놨을 것을 알고 인근 경찰서에 자수했고, 청나라 관리들은 그를 보호하다가 김옥균의 시신을 갖고 귀국시켰다. 이후 당연히 약속된 자리를 받고 승승장구……하는 듯 했으나, 문제는 사실 홍종우 자신이 스스로 ‘개화파’라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물론 실제로는 철저한 왕정주의자에 국수주의자 성향을 보이는데, 여튼 전반적으론 왕정 폐지론자까진 아니지만 뭔가 조선이 “바뀌긴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분명했던 것 같다.

여튼, 홍종우는 계속 고종에게 충성했지만 이런저런 혼란스러운 사상을 보이니 고종이 그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결국 약간 애매하게 거리가 멀어진 관계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제의 이승만 일행이 체포된 건데, 이 사건은 고종이 직접 이를 갈고 달려든 사건이었던 것. 다른 이유도 아니고 왕정 폐지를 주장하다 왔으니, 그걸 살려둘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 시점에서 이승만이 그렇게 대단한 거물은 아니었다만, 이게 박영효의 반란(!)과 연루가 된 사건이라 나름으로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 때 여기서 홍종우가 등장한다. 원래 중추원 재판장을 지내고 있던 사람이긴 하지만, 특별히 이 사건 직전에 법무사리국장으로 임명된 뒤 이 사건에 배정된 것은 고종의 의중이 담겨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즉, “이 건방진 놈들을 확실하게 처단하고 충성을 다시 증명하라”는 것. 고종의 뜻을 받들어 김옥균을 암살했던 사람이니, 또 다시 고종의 칼이 되라는 의미인 것이다.

헌데 여기서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던 것인지 모르나, 위에 설명했듯 홍종우는 이승만과 함께 체포된 이들은 모두 가혹하게 판결한 반면, 이승만 당사자에 대해서는 형식적으로 태형만 판결한 후 풀어줘 버렸다. 그리고 이것이 고종의 뜻이 아니라는 가장 분명한 증거는, 이 재판 후 홍종우가 칙임관 2등에서 4등으로 직급을 깎여 좌천 당했고, 이후 한일합방 때까지 애매한 지방 관직만 돌다가 끝났다는 사실이다.
: 요약하면 이승만을 살려준 것은 홍종우 개인이지, 고종의 의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아닌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여기서 그를 못 죽여 아쉬워했을 터. 물론 두 사람 모두 이날 구사일생으로 풀려난 젊은이가 훗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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