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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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준

 

 

– 미국은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이다보니 미국인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의사를 관철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 일본은 와(和)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이와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 인구구조나 개인주의, 공동체 의식, 정치 의식이나 성 문제 등에서 한국을 두 나라와 비교하는 것은 앞으로도 의미가 클 것이다.

 

3개국 사람들과 나름대로 이야기해보고 정치판이 굴러가는 것을 보면서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미국은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이다보니 미국인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의사를 관철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렇게 일상적으로나 소셜미디어 상에서 스스럼없이 정치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나라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는 외국인들 앞에서도 정치적인 이야기를 꺼리는 법이 거의 없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미국 뉴스나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토론을 하면서 언성을 높이가나 야유를 퍼붓는 일도 드물지 않다. 정치와 관련된 폭력이나 범죄 역시 심심치 않게 발생하곤 한다.

 물론 미국에도 중도라는 것이 있으니 온건한 민주당원들(moderate Democrats)과 온건한 공화당원들(moderate Republicans)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미국인들은 후자를 RINO(Republican In Name Only, 이름 뿐인 공화당원)라고 멸시하며, 특히 오바마 때부터 티파티 운동으로 이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2016년 대선에서는 조롱과 음해를 퍼붓는 주류 리버럴 매체를 비난하면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아 딥스테이트(Deep stare, 국가 안의 국가)의 기득권과 PC주의에 맞서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굳이 주스에 비유하자면, 미국 보수는 코스트코 같은 곳에서 파는 진한 수입산 주스 같은데 반해 국민의힘 같은 한국 보수는 기껏해야 농도가 묽은 국산 주스 정도밖에 안 되거나 그에도 못 미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생명 문제로도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 나라는 1973년 Roe v.Wade 판결로 50개 주 전역에서 낙태가 합법화되었지만 실제 낙태 건수가 크게 떨어지기도 했다. 특히 마가렛 생어라는 우생학 페미니스트가 ‘산아 제한’(Birth control)이란 말을 만들고, 악명높은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을 세워서 인구 과잉 억제와 여성의 선택이란 논리로 피임과 낙태를 전세계에 밀어붙였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낙태 반대의 움직임도 거세졌고, 생명대행진(March for life), 심장박동법(Heartbeat bill, 태아의 심장 박동이 감지된 시점부터 낙태를 금지하는 법, 보통 임신 6주부터 해당됨)과 같은 법적 보호 장치, 임산부에 대한 육아와 경제적 지원 및 입양 알선 등으로 수십년간 실제 낙태 건수가 급감하기도 했다. 레이건과 부시, 클린턴 정권을 차례로 거치며 미국 정치는 어느새 낙태에 찬성하는 민주당과 반대하는 공화당의 구도로 굳어졌다.

 

 

Church Militant 등의 가톨릭 매체를 보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의사를 관철시키려는 미국인들의 성향이 신앙의 영역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종교적으로도 청교도들의 기반 위에 세워진 이 나라의 개신교는 어느새 루터와 칼빈의 신학 대신 감정과 오락이 섞인 복음주의자들(evangelicals)의 온상이 되었다. 666 베리칩이나 세대주의 같은 극단적인 음모론 역시 미국산이다. 그런가하면 대니얼 대닛, 샘 해리스 등과 같은 전투적인 무신론자들 역시 미국인들이다. 이런 와중에도 아일랜드, 이태리 이민자들이 가톨릭 신앙을 뿌리내리고, 유럽에서도 상당히 타격을 입은 가톨릭의 전통이 그나마 잘 보존되고 있는 나라 역시 미국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 이전의 전례와 신학을 간직한 전통 가톨릭 단체가 활발한 나라 역시 미국이다. Church Militant 등의 가톨릭 매체를 보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의사를 관철시키려는 미국인들의 성향이 신앙의 영역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페미니즘이나 젠더 이데올로기 따위에서도 미국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런 주장을 한 것도 미국인들이고, 효과적으로 반박하고 대처하는 것도 미국인들이기 때문이다. X, Y 성염색체로 결정되는 남녀의 과학적인 차이를 무시한 채, 자기가 수행(perform)하는 N개의 젠더를 주장하는 주디스 버틀러의 영향으로 자신이 논바이너리(Non-binary)나 젠더 플루이드(Gender-fluid) 따위라고 주장하는 미치광이들도 많이 늘어났다. 젠더마저 자기가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미국인들의 특성이 낳은 결과인지 모른다. 물론 젠더 이데올로기를 밀어붙이는 부류들은 기본적으로 극좌이기 때문에 영국 식민지 시대와 독립 혁명, 서부 개척을 거치면서 생겨난 개인주의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버니 샌더스나 알렉산드라 오카시오 코르테즈(AOC)같이 남의 비용에 기대어 살겠다는 사회주의와 엮이다보니, 당연히 국가와 가족에게 기대지 않고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는 자기 의존(self-reliance)과는 정반대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사회주의자들이 개인주의의 일부분만 체리 피킹한 것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온갖 다양한 ‘젠더’가 생겨나는 미국에서 남성성이 극도로 강조되는 점도 아주 아이러니하다. 특히 한국의 아이돌은 게이냐고 묻는 노골적인 질문에,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한국 남성들의 옷차림을 보고 동성애자가 많은 줄로 착각했다는 이야기까지 심심찮게 들리곤 했다. WWE나 UFC에 큰 관심을 가진 동갑내기 미국인 친구를 보면서, 그러고 보니 한국인 친구들은 어느 누구도 여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놀란 적도 있다. 이 모두 마초이즘이 강하게 녹아든 미국 문화가 동양과 어떻게 다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심지어 단순한 감정이나 문화적 코드를 넘어서 신앙과 학문의 차원으로까지 남성성을 정당화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남성성을 유난히 강조하는 미국 보수주의자들에게 익숙해지면 조던 피터슨은 오히려 평범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한성연의 이명준 대표를 보면서 놀라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미국 보수주의자들과 비슷한 느낌으로 남성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확실하게 자기 어젠다를 밀어붙이는 미국인들의 특성이 극단적인 젠더 이데올로기와 마초이즘의 대립을 낳은 것만큼은 분명하다.

 

 

 일본은 와(和)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이와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일본식의,’ ‘일본 전통의,’ “Japanese”라고 할 수 있는 수식어 자체가 바로 和다. 와쇼쿠(和食, 일본 요리), 와가시(和菓子, 일본 전통 화과자), 와시츠(和室, 일본식 방) 등. 이쯤되면 ‘와’가 민족 정체성 자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2018년에 NHK에서 자민당 간부와 야당 당수들이 평화 헌법 개정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마치 학자들이 원론적인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로 차분해서 굉장히 놀라웠다. 정파를 떠나서 일본인들은 일본인들이구나 싶을 지경이었다. 물론 중세에는 사무라이들이 전쟁을 치르면서 이권을 챙겼던 시절도 있었고, 1960-70년대에 좌익 운동권이 온갖 폭력과 범죄를 휘두른 적도 있다. 그러나 운동권들이 사회 전반의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한 한국과는 달리, 이들은 군소 좌파 정당에서조차 받아들여진 적이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실패하고 외면당했다. 이러한 ‘와’의 나라인만큼 국민 단합이 잘 되고 사회적인 갈등도 원만히 해결되지만, 내부 고발이 그만큼 어렵다는 측면도 있다. 심지어는 전세계적으로 미투 열풍이 불었을 때도 일본은 이토 시오리(伊藤詩織)라는 젊은 여기자를 제외하고는 사회적인 지지를 받은 성폭력 피해자가 거의 없었을 정도.

 

 보통 일본인들의 국민성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가 다테마에(建前)와 혼네(本音)인데, 이때문에 일본인들은 겉과 속이 다르고 음흉하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정말로 겉과 속이 다르고 음흉하기 때문에 사기를 치고 남을 등쳐먹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역시 ‘와’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일수록, 또 곤란하고 민감한 문제일수록 완곡하게 이야기해서 ‘와’를 깨지 않고 원만하게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더욱이 곤란한 부탁을 받았을 때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완곡하게 거절하는 것이 일본인들 특유의 배려(気配り)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자면, 1950~60년대에 태어난 어른들 중에서 한국에 호의적인 분들은 일본인이라서 알 수 있는 일본인들의 혼네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곤란한 부탁을 받았을 때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완곡하게 거절하는 것이 일본인들 특유의 배려(気配り)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바로 성(性)에 대해서는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솔직하다는 점이다. 겉과 속이 다르다거나 완곡하게 이야기하는 줄로만 알았던 일본인들이 유독 섹스에 대해서는 한국인들보다 훨씬 노골적이고 직설적이어서 당황스럽기도 하다. 조선통신사들부터 오늘날의 2030 MZ세대에 이르기까지, 수백년 동안 한국인들이 일관되게 일본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성진국’ 그 자체이기도 하다. 조선통신사들의 기록에도 일본의 성 풍속이 빠지는 법이 없고, 98년 일본대중문화 개방을 전후로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때도 한국인들은 어김없이 일본의 성 문화를 꼭 다루었다. 고려 말부터 수백년간 주자성리학의 에토스에 지배당한 한국인들에게 일본의 성문화는 그만큼 컬쳐 쇼크를 유발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확실히 일본의 성 풍속은 에도 시대의 다채로운 춘화만큼이나 개방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에도 말기와 메이지 유신 들어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들과 같은 서양인들의 에토스를 의식하며 오히려 전근대보다는 엄격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에도에도 넘쳐났던 남녀 혼탕은 어느새 시골에서 노인들이 조용하게 목욕하는 곳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고, 농촌의 요바이(夜這い) 풍습도 메이지 이후 수십년 지나 사라졌다. 서양인들을 의식해 풍기를 단속했지만, 68혁명 이후로는 오히려 서양인들이 일본도 보수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지경이 되었다.

 그럼에도 한국보다는 훨씬 개방적이어서 유독 한국인들에게는 ‘성진국’이란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미아리 텍사스나 청량리 588 같은 집창촌을 재개발로 없애버리는 한국과는 달리 수십년 수백년씩 이어져오는 유곽이 제법 많다. 과거에는 젊은 여성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11PM이나 길가메시 나이트같은 심야 방송에 출연하는가 하면, 소니와 파나소닉이 아날로그 가전으로 전세계를 휘어잡을 때는 당시 첨단기술이던 VHS로 AV 시장을 키우기도 했다. 이러니 군사정권이 ‘저질 왜색 문화를 막아낸다’는 명분으로 일본문화의 유입을 막아내기가 수월했을 것이다. 세일러문과 같은 아니메도 수위가 높은 노출신과 동성애 장면을 수없이 가위질했는데, 이 작업을 하면서 ‘이런 걸 아이들에게 보여줘도 되나’라는 의문이 든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마저도 인터넷의 발달과 코로나 이전까지 활발해진 해외여행으로 더 이상 막아낼 수 없는 지경이 됐는데, 식품 이외에는 일본에서 코끼리밥솥과 같은 전자 제품을 주로 사오던 한국인들은 어느새 포르노물과 성인용품 등을 많이 사오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 직전에 일본이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국가 이미지 재고를 위해 편의점에서 성인 잡지를 치우더라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꺼내자, “일본이 성진국인게 아니라 한국이 성 후진국”이라는 불만이 제대로 섞인 답이 돌아와서 흥미로웠다. 그런가하면 비슷한 나이대의 일본인이 부산에서 외국인 카지노를 즐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자갈치에서 성매매를 싼 값에 즐겼다는 이야기를 가볍게 꺼내서 상당히 당혹스럽기도 했다.

 

수십년 동안 두 나라의 도움을 받고 두 나라를 참고하며 성장해온 한국은 어떤 변화를 겪었고, 또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한국은 과연 어떤 나라일까? 한국인들의 민족성이나 국민성 따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수십년동안 갑자기 체질 자체가 달라져버린 탓에 세대 차와 세대 간의 갈등이 심각해진 이 나라는 과연 미국과 일본 중에 어느 나라에 더 가까울까? 수십년 동안 두 나라의 도움을 받고 두 나라를 참고하며 성장해온 한국은 어떤 변화를 겪었고, 또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각국의 특수성 때문에 한 나라의 사정을 다른 나라에 억지로 끼워맞추는데는 무리가 있지만, 흔히들 이야기하는 것처럼 인구구조와 같이 한국이 20-30년 간격을 두고 일본과 닮아가는 면도 있고, 각종 제도나 정치 참여 등과 같이 일본과 비슷했다가 미국과 더 비슷해지는 면도 있는 듯하다. 인구구조나 개인주의, 공동체 의식, 정치 의식이나 성 문제 등에서 한국을 두 나라와 비교하는 것은 앞으로도 의미가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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