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의 일생을 다룬 영화 ‘킹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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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기표

 
-실용주의 자처하며 수단 방법 한계를 무시하는 행태는 그 자체가 이미 전략적 패착

-‘선악 구도’ 탈피하려 애쓰지만, 목표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것은 여전히 ‘악’

-자기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의 한계를 무시하는 ‘최악’의 2022 대선 후보가 존재

 

 

1.
나는 ‘기대보다 조금 낮은 평점’을 주고 싶다. 어쨌든 간에 ‘참모의 일생’을 다룬 영화로 치자면, 굉장히 희소 가치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뭔가 전략적 발상과 실제 이를 수행하는 과정의 치밀함은 별로 밀도 있게 그려지지 못한 것 같다. 물론 16부작 미니 시리즈도 아니고, 1시간 반짜리 극장판으로 이런 내용을 표현하기란 애당초 어려울 수밖에 없겠지만.

 

2.
영화는 선거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거 참모와, 수단과 방법 이전에 ‘정치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지도자 사이의 갈등을 주요 모순으로 풀어간다.

 
그런데 “목표를 위해 어떤 수단이건 상관없는가?”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난 논쟁이다. 당연히 수단과 방법엔 한계가 있다. 실용주의를 자처하며 수단과 방법의 한계를 아예 무시하는 행태는 그 자체가 이미 전략적 패착이다.

 

성공한 전략은 일단 ‘방법상의 한계’를 설계 단계부터 매우 중요한 요소로 설정한다. 어디까지를 ‘방법상의 한계로 삼을 것인가?’ 그리고 ‘핵심적인 방법상의 한계’를 어떻게 돌려 놓을 것인가? 라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지, “우리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은 다 써야 한다”는 식의 명제를 굳이 입 아프게 설파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말 그대로 ‘하나 마나 한 생각’이다.

 

방법상의 한계 때문에 목표를 수정하는 평범한 인생을 거부하고, 자기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의 한계를 무시하는 최악의 2022 대선 후보가 있다.

 
3.
꼭 김대중의 참모가 아니더라도 모든 선거 캠프에는 영화의 주인공(이선균 역) 같은 캐릭터가 꼭 한 명씩 있다. 그리고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신기하게 약속이라도 한 듯 늘 똑같은 얘기를 한다. “이번 선거의 목표는 무조건 당선입니다!” 어차피 뻔한 얘기를 굳이 강조하는 이유는 좋게 말하면 선거에 대한 열정이 너무 강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후보에게 잘 보이려는 말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또 무슨 초딩 같은 소리하고 있네!”하는 생각만 들 뿐이다. 정치의 기본 관점은 ‘장기전’이어야 한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자산 게임과 거의 유사한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가만 생각해 보자. 역사상 선거에 당선되려고 나오는 후보와 그외 다른 이유로 나오는 후보, 둘 중 어느 경우가 많을까? 허경영은 당선될 것 같아서 맨날 출마하는 것일까?

 

선거 효과는 낙선 효과와 당선 효과로 구분된다. 즉 낙선 효과도 엄연한 선거 효과다. 히틀러는 어떻게 15년만에 단독 집권에 성공했나? 15년 동안 후보 단일화를 거부하고 낙선 효과와 당선 효과를 병행 운용했기 때문이다.

 

4.
무조건 ‘장기전’ 관점이 정치 행동의 기본 관점이다. 내일 지구가 망해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이런 태도야말로 다른 영역이 아니라 정치에 가장 필요한 관점이다. 실제 지구가 내일 망하면 욕할 놈이나 욕 먹을 놈이나 같이 죽는 것이니까 어차피 정치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만에 하나 정보가 잘못되어 지구가 망하지 않으면 대박 터지기 때문이다.

 

목표가 아니라 방법상의 한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정치에서의 장기전 원칙’ 때문이다.

 

5.
목표 설정은 쉽다. 정작 어려운 것은 ‘방법론’이다. 유명한 권투 선수가 했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그럴 듯한 계획을 갖고 있다. 뒤지게 얻어 터지기 전에는.” 이 말에서 ‘계획’이란 ‘목표’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말에서 함의하는 얻어 터지는 이유는 방법론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6.
이론상으로 인간은 목표를 정해 놓고 방법을 설계하는 걸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살다 보면 방법에 맞춰 목표를 옮겨다니는 것이 현실이다. 즉 대다수 인생에서, 인간은 방법론의 한계 때문에 목표 자체를 수정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선악 구도’에서 되도록 탈피해서 뭔가를 바라보려 애쓰지만, 자기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불편이나 피해를 무시하는 것을 여전히 ‘악’으로 보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방법상의 한계 때문에 목표를 수정하는 평범한 인생을 거부하고, 자기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의 한계를 무시하는, 그것이 현대 분업 사회에서 철학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최악이다. 2022 대선 후보 중에 바로 그런 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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