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무속 논란… 타격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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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도형

 

-유력 정치인치고 역술 안 보는 이 없고, 사업 전망과 관련 유명 점집 찾기 마련

-조왕신에 빌던 것이나 하나님에 기도는 대상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 없을 터

-종교의 교리적 도그마로 치자면 유교로 포장된 주자학만한 게 또 있겠나 싶어

 

 

우리 사회 대중은, 시민 의식은 생각 이상으로 지극히 정상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유력 정치인치고 역술과 사주, 점을 보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며, 재벌 회장부터 영세 사업자까지도 사업 전망과 관련해서 유명 점집을 찾는다. 심지어 내 경험 속 멀쩡한 개척교회 목사가 교회를 열며 고사를 지내고 고사떡을 돌리는 것도 봤다. 그 목사의 고사의 변이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이 땅에 불교가 들어와 민간 신앙과 갈등, 대립하다가 조화를 찾고자 절간 후방에 미륵전을 두고 그 뒤 더 한적한 곳에 삼신각(삼성각)을 두어 불교와 토속 또는 민간 신앙이 결합되는 형태를 취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산신에게도 불심이 자리잡게 됐고, 대자대비 부처의 마음이 여기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성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예수를 이곳에 모시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성이 민간 신앙 하나 아우르지 못한 데서야 그것이 무슨 신앙의 중심이 되어 줄 수 있겠는가”

 

하는 게 그 목사의 변이었다.

 

유력 정치인치고 역술과 사주, 점을 보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며, 재벌 회장부터 영세 사업자까지도 사업 전망과 관련해서 유명 점집을 찾는다.

 

어린 시절 먼 친척 할머니께서 조왕신을 섬기며 아침마다 밥을 짓기 전에 쌀이며 좁쌀, 보리쌀을 한 줌씩 덜어 떠놓고 기도하던 마음이, 어느 날, 30리 밖 수기사 기갑여단사령부가 있는 동네에 교회가 들어오고 거기 목사로부터 포교의 은혜를 입고는 일요일이면 할아버지의 타박과 꾸중을 견디며 아침 일찍 교회로 가셨다.

 

그분이 들고 가셨던 쌀 한 됫박, 좁쌀 한 됫박은 현금이 귀했던 그 시절, 그분이 조왕신에게 아침마다 바치던 그것을 하나로 모아 자루에 담고 좀 더 담아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던 십일조였던 것이다. 그분이 조왕신에게 의지하고 빌던 것이나,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도하던 것에는 그 대상만 바뀌었을 뿐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기독교의 교리를 통해서 나름의 세계관이 설계되고, 인류가 어떤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사유하게 됐더라도 본질은 먼 친척 할머니의 신앙생활이 바탕임을 나는 확신한다. 그것이 기복이고 주술이라고 해도 나는 그것을 매도할 생각이 없다. 그 종교적 포용과 관용의 힘을 위에 예로 든 개척교회 목사가 몸소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이라고 믿는다.

 

종교의 교리적 도그마로 치자면 유교로 포장된 주자학만한 게 또 있겠나. 이조 500년, 무당은 백정, 광대와 함께 천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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