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는 모계 페미니즘이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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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세현

 

-“서울대 출신으로 처신 잘하라” 한마디했다가 ‘성 차별주의자’라는 말 들어

-부자 권세 있는 집 딸들은 공주, 가난한 집 딸들은 소모품·무수리 취급 절감

-중산층 이상 가정은 여성 우위, 하층사회은 가정 붕괴되며 모계사회로 전락

 

 

내가 페미니즘의 실체를 처음 몸으로 느낀 것은 직장에서였다.

 

한국통신정책연구원을 1985년부터 1988년까지 다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원장이 육사 출신 홍병유 박사에서 서울대 무역학과 김세원 교수로 바뀌었다. 원장이 바뀌면서 서울대 사회대 석사 출신 여자 연구원들이 대거 들어왔다.

 

그 당시 국책 연구소는 연구 위원들에게는 해외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대학교 교수로 가기 전의 임시 직장이었고, 연구원 들의 경우 밥 벌어먹는 직장으로서 개념과 해외 유학 가기 전의 경력을 쌓은 의미가 공존했다.

 

그리고 최하층에 여상 출신의 연구 조원이 있었다. 그 당시는 워드프로세서가 도입 초기였던 관계로 정보 통신 사회를 연구하는 연구소에서도 연구 조원인 여성들이 타이핑했다. 이런 조직에서 연구원들은 연구 결과를 박사들에게 갈취당하는 것이 비일비재했고, 여상 출신의 연구 조원은 화이트 칼라 여성 노동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서울대 출신 여성 연구원들에게 이 직장은 대체로 유학을 가거나 결혼하기 전의 잠시 직장이었다. 그래서 당시 새로운 분야였던 정보화 사회 관련 연구소에서 전공이 아니라고 노는 사태가 벌어졌고, 그 여자들이 하지 않는 일은 지잡대 출신 남자 연구원들의 몫이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윤석열 후보는 돈도 못 벌어오고, 배는 나오고, 방귀는 달고 다니는 중년 가장의 모습이었다. 구박받으나 마나님에게 버림받지는 않는 윤석열 후보를 보면서 많은 중년 남성들이 공감하고 있다.

 

신입 여자 연구원이 한두 명이면 대충 넘어 갈 일이었지만, 다섯 명 정도 되었고 이 여자들이 모여서 유학 계획이나 학교 이야기 등 잡담하면서 연구원 사이의 위화감이 크게 증폭되었다.

 

그 때 후배년들에게 서울대 출신으로 처신을 잘하라는 이야기를 한마디 했다가 sexist라는 말을 들었다. 성 차별주의자라는 요즘 같으면 무서운 말을 들은 것이다.

 

그때 나는 이 사회는 부자이거나 권세 있는 집의 딸들은 직장이 단순히 놀이터인 공주이고 가난한 집의 딸들은 낭비되는 소모품, 무수리라는 것을 절감했다. 그리고 학벌 좋은 페미니스트들은 권력에 빌붙은 무당 같은 여자들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김건희 씨 녹취록을 보면서 집안 내의 권력 구조는 완전히 마누라 위주의 중년 가정임을 알 수 있었다.

 

윤석열 후보는 돈도 못 벌어오고, 배는 나오고, 방귀는 달고 다니는 중년 가장의 모습이었다. 구박받으나 마나님에게 버림받지는 않는 윤석열 후보를 보면서 많은 중년 남성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집안 권력 구조의 중심인 마나님 입에서 안희정을 비롯한 미투 문제가 거론된 것이다.

 

이 사회에서 여성 차별 문제는 빈부 격차의 하부 문제이지 주도적 문제가 아니게 된 지 오래다. 대부분의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는 여성 우위의 사회이고 하층 사회에서는 가정이 붕괴되면서 자연히 모계사회가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페미주의자들의 처신은 잘못된 이론과 욕망으로 사회를 해체하고 선동하는 마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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