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당 창당 30주년 기념회에 다녀와서

<<광고>>



¶ 홍기표

 

-광화문 중국집에서 열린 한국노동당 창당 30주년 기념식에 모인 6명 

사라져 유골도 찾기 힘든 정당 기념식에서 ‘반공교육’ 받는 아이러니

명확한 개념 규정없이 ‘모호성’만 유지하다 진보정당 운동 조기 몰락

 

 

최근 한국노동당 창당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1992년 1월 19일이 그날 이라는데… 이번 30주년 기념식에는 광화문의 모 중국집에서 6명이 모였다. 재밌는 것은 전체 참석자의 2/3가 30년 전 한국노동당 창당과는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나도 92년 초반에는 주사파였던 시절이라, 한국노동당은 그저 <말>지에서 기사로 보던 ‘남의 동네’ 얘기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노동당 창당 30주년 기념식의 하이라이트는 H 모 선생의 ‘반공 강연’이었다. 짜장면 토크 형식을 빌려 자유롭게 진행된 이 강연에서 강사는 자신이 80년대 말 소련에서 살면서 직접 겪었던 ‘배급표를 받는 생활’의 생생한 경험을 구수한 구술로 적나라하게 묘사해 주었다.

우리 세대 중에는 돈 대신 ‘전표’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한 번쯤 ‘이상’이라고 생각해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사실 화폐를 온전히 포기하려면 배급표조차 있으면 안 된다. 전표건 배급표건 어차피 ‘증권화’의 일환이기 때문이다(화폐의 시작도 어차피 금 교환권이니까).

화폐 대신 배급표를 쓴다는 것은 결국 방법론 차원에서 ‘고급 증권화’를 포기하고 ‘저질 증권화’를 유지한다는 말밖에는 되지 않는다. 따라서 결국 사회의 복잡화에 따른 화폐의 다른 기능들은 타국 화폐(자국 화폐가 아닌 달러)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

한국노동당 창당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1992년 1월 19일이 그날 이라는데… 30주년 기념식에는 광화문의 중국집에서 6명이 모였다.

그래서 당시에도 “소련의 부유층 아무 집이나 털면 장롱에서 미화 2천 달러 정도는 무조건 나온다”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자본 축적 기능을 달러가 대신 수행). “도대체 이게 무슨 달나라 얘기인가?”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 주제는 거의 평생을 따라다니는 관심 아이템이라 배급제 사회를 실제 경험하고 오신 분으로부터 실감나게 전해 들은 생동감있는 간증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지금은 다 사라져 그 유골도 찾기 힘든 정당, 한국노동당 창당 30주년 기념으로 중국집 ‘반공 교육’을 받으며 나는 ‘우리의 생각이 언제 어디까지 계속 변하게 될까?’를 생각해 보았다.

답은 ‘알 수 없다’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평생 똑같은 생각으로 감옥에서 장기수로 지내는 것보다는 과감한 탈옥수가 되어 세계를 유람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 그리고 뭔가 변화가 생기면 꼭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혁명이 끝난 것인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인지? 명확한 개념 규정없이 ‘모호성’을 유지하는 바람에 얻어진 결과는 한국 진보정당 운동의 조기 몰락이라고 본다. 피티 독재 포기, 전위 정당 포기, 폭력 혁명 포기를 공식화한 이 문서가 상당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보는 이유다.

<뱀발> ‘기념식’이니 ‘강연회’니 하는 용어는 실제 그런 행사치레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그냥 갖다붙인 말입니다.

<<광고>>



No comments
LIST

    댓글은 닫혔습니다.

위로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