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사 여행 11. 플라톤의 이데아(idea. ἰδέ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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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제

 

-개별 사물은 소멸한다 할지라도, 그의 불멸의 원형이라고 할 이념만은 끊임없이 존속

-현실적 이념은 순수사유에 의해서만 포착. 물질적 존재의 연구는 부차적 의의 가질뿐

-정신적 영역의 실존인 이념, 어떻게 감관계(感官界)의 대상 통해 현상화(現象化)하나

 

 

오늘은 조금 철학냄새가 나는 내용입니다. 오늘 글 놓치시면 앞으로 연재되는 글은 거의 읽기 불가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데아의 존재

“이제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광선이라고는 단지 머리 위쪽에 위치한 통로를 통해서만 비쳐 들어오는 지하동굴에 살고 있다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그런데 이들은 어려서부터 이 동굴 속의 어떤 한 지점에 결박당하여 살아온 까닭에, 바로 자기자신을 묶어놓은 이 밧줄에서 풀려 나지 않고서는 머리의 방향조차 돌릴 수도 없는 입장에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들 머리의 위쪽과 어떤 멀리 떨어진 등 뒤쪽으로부터 불빛이 타오르는 것을 본다.

 

그런데 바로 이 불빛과 밧줄에 묶여 있는 그 사람들과의 사이에는 위쪽으로 길이 하나 통해 있는데, 다시 이 길 옆에 담장이 쌓여져 있다고 생각해 보자.

 

바로 이 담장을 따라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제각기 그 담장보다 높이 뻗쳐 올라온 여러가지 토기(土器)를 머리에 이고 다니기도 하며 또는 어디에서나처럼 지껄여대기도 하는가 하면 혹은 아무 말도 없이 걸어다니는 사람 등등 모두가 각양각색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광경이겠는가라고 말하면서 그는 그들 포로들의 처지를 상상이나마 해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다름아닌 우리를 닮은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하고 나는 대답하였다.

 

왜냐하면 첫째로 그대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 결국 자기들 자신이나 또는 자기를 서로의 상태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들로서는 불빛을 받아서 동굴 속의 건너편 벽에 비쳐오는 그림자 이외에는 일체 아무 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또한 그들의 머리 위쪽으로 뻗어 있는 담 곁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이고 다니는 물건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역시 이 경우에도 그들은 다만 그림자를 보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그 포로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만 있다면, 필경 그들은 스스로 바라보며 또한 이름을 붙여주기도 하는 바로 그것을 머리로 운반되고 있는 물건들과 동일한 것으로 보리라고는 생각지 않는가?

 

그 밖에도 또 만약에 지하에 있는 감옥이 위쪽으로부터의 산울림을 받는다고 한다면, 누군가 그 담 곁을 지나쳐 다니는 사람이 말만 하면 반드시 그들 포로들은 바로 지금 스쳐 지나간 그림자가 아닌 또 다른 어떤 사람이 말을 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겠는가?

 

동굴의 비유는 우리의 일상이란 감옥과 같은 것으로서, 감각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지는 주변세계란 실로 그림자와도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자. 즉, 포로 중의 어느 한 사람이 석방되면서, 만약에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고개를 돌리고는 이리 지리 걸어다니며 그 밝은 빛을 바라보도록 강요 받는다고 한다면 그는 심한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또한 너무나 눈이 부신 나머지 이전에 동굴 속에서 언제나 그 그림자만을 보아왔을 뿐인 사물조차도 바라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그에게 말하기를, 이전에 그가 보아온 것은 모두가 무(無)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지만, 이제는 실재(實在)하는 것에 좀더 가까와졌을 뿐 아니라, 또한 좀더 진실한 의미에서의 존재의 본래의미를 나타내 주는 사물을 대하게 되었으므로, 이제야 그로서도 모든 것을 좀더 올바르게 관찰할 수 있게끔 되지 않았느냐고 한다면, 그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하리라고 생각하는가?

 

게다가 우리가 만약 그에게 광선을 직시하도록 강요한다면 필경 심한 눈의 통증을 느낄 것이 틀림없는 그는 그 자리를 피하여 바라보기가 좀더 수월한 물체로 눈길을 돌릴 것이 틀림없으며 결국 더 나아가서는 자기가 일상적으로 보아오던 그러한 사물이 오히려 자기에게는 지금 바로 나타났던 눈부신 것보다도 훨씬 더 구체적인 성질을 지닌 것으로 확신할 것임에 틀림없지 않겠는가?”

 

이상 인용된 글이 바로 플라톤이 인간의 생활과 인식에 관하여 그의 <국가론>에서 서술하고 있는 유명한 ‘동굴의 비유’ 를 요약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일상적 존재란 한날 감옥과 같은 것으로서, 감각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지는 주변세계란 실로 그림자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이 이념의 세계로 비약하는 것이야말로 그 동굴의 밑바닥을 박차고 일어서서 더 높은 곳에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로 상승한다거나 또는 적어도 눈길을 그 위쪽으로 돌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과연 이념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일련의 개별적 사물에게 동일한 호칭을 부여하는 가운데 여기서 어떤 이념을 가정하곤 한다.”

 

따라서 이념 – 그리스語로는 에이도스(eidors) 혹은 이데아(idea) 이며 본래는 ‘像’이란 뜻임 – 이란 존재의 형식, 또는 일반성을 뜻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것은 결코 우리의 사유가 특수자를 도외시한 채 사물의 공통된 특징만을 종합하는 데서 형성되는, 그와 같이 단순한 일반적 개념일 수는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것이 완벽한 실재성(實在性)을 지닐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동굴의 비유에서도 밝혀진 바와 같은 참다운 유일한 (형이상학적) 실재성을 지니게 되는 까닭에 비록 개별적인 사물은 소멸한다 할지라도, 그의 불멸의 원형이라고 할 이념만은 끊임없이 존속하는 것이다.

 

이제 여기서 제기될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란 과연 우리는 개별자에 대해서보다도 일반자에게 한층더 고차적인 실대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오직 개별적 사물만이 현실적일 뿐, 이른바 일반적 이념이란 단지 우리의 두뇌 속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야만 하느냐는 데 있다.

 

중세철학 부분에서 우리는 다시 이 문제 를 상술하게 되겠지만, 플라톤에게 있어서는 오직 이념만이 본래적인 현실성을 지니는 것이다.

 

그의 말기에 가서 플라톤은 피타고라스의 사상경향을 받아들임으로써 이념을 수(數)와의 연관 속에서 고찰하였다.

 

이데아와 현상(現象)

자기 스승인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플라톤이 가시적인 자연도 이를 자기의 철학체계 속에 포함시킨 것은 사실이나, 역시 그에게 있어서도 유일한, 현실적 이념이란 오직 순수사유에 의해서 포착될 수 있을 뿐이므로, 물질적 존재에 대한 연구는 결국 부차적 의의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바로 이와같은 연구를 하는 자연과학으로서는 확실성과는 다른 단순한 개연성(蓋然性)을 지니는 데 불과하다고 보았던 그는 바로 이와같은 보유조건을 앞세운 상태에서 자연과학에 관한 이론을 ‘티마이오스’ 속에서 전개하였다.

 

이상과 같은 이념을 매듭짓는 자리에서 곧 다시 우리에게 제기되는 중심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과연 어떻게 하여 가시적 자연이라고 할 환영의 세계가 조성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미적 직관으로서도 역시 이념을 추구하거나 또는 이를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므로 자연계의 물체도 또한 이념의 모상(模像)이거나 혹은 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서 다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하여 더욱 고차적인 <피안(彼岸)에 자리 잡은> 즉 정신적 영역에 실존(實存)하는 이념이 – 비록 불완전하고 보잘것없는 상태라 할지라도 – 감관계(感官界)의 대상을 통하여 현상화(現象化)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이념 이외의 그 어떤 제2의 존재, 즉 바로 이 이념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모조할 수 있도록 하는 어떤 물질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바로 이 제2의 존재를 – 분명히 데모크리트를 염에 두고서 – 텅빈 ‘공간’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이를 좀더 적확하게 표현한다면 이것은 외면성의 형식을 뜻할 뿐이므로 여기에는 병렬현상만이 아닌 계기(繼起) 현상도 포함된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서 또한 상정해 볼 수 있는 것은, 뒤에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러했던 바와 같이 플라톤도 역시 이 두번째 원리를 극히 일반적인 의미의 ‘물질’로 파악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더이상 자연에 관한 플라톤의 이론을 상술할 생각은 없으나, 적어도 이에 관한 그의 이론 속에는 어떤 내적균열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비록 이상의 ‘두 가지’ 원리가 존재한다고는 하더라도, 단순히 자체 내에서 정지해 있을 뿐인 원래 모습으로서의 이념이 물질을 통하여 스스로를 모조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떠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인지가 도무지 분명치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플라톤철학을 이원론적(二元論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은 두 가지 궁극적 원리 사이에 생겨난 균열이 끝내 메꾸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균열을 메꾸기 위해서는 결국 그 양자를 매개하거나 아니면 그 양자보다 초연한 위치에 있는 어떤 제3자를 필요로 하게 되는바, 실재로 플라톤의 만년의 저술을 보면 바로 이러한 방향으로 작용하는 신성(神性) 혹은 세계정신과 같은 것을 한층더 받아들이는 경향을 나타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사상(思想)은 결코 사상(事象) 그 자체의 철저한 논구라기보다는 오히려 신화와 같은 형식을 통해서 다루어지고 있는바, 이것은 실재로 엄밀하게 사상적으로 포착될 수 없는 부분은 플라톤에게 있어서는 그 모두가 신화에 의하여 대체 내지는 보충되고 있다는 사실과도 맞먹는다고 볼수있다.

 

<연재 리스트>

1. 철학의 탄생 2. 밀레토스 학파와 피타고라스
3. 엘레아 학파 4. 헤라클레이토스
5. 웅변학원 1타강사, 소피스트들 6.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소피스트 철학
7. 소크라테스의 생애 8.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주장
9. 플라톤, 그의 철학적 업적 10. 플라톤 : 방법론적 서언과 역사적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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