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과 호남(5) : 정체성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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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대환

 

-지난 70여 년 한국의 발전은 기적. 지금 엉뚱한 사람들이 숟가락 들고 잔치 벌여

-‘민주 공화국’이란 한국의 정체성을 기초한 곳이 인촌 사랑방. 그 은덕을 잊어서야  

-인촌과 함께 일제 압제 견뎌냈던 분들이 결정했던 국민장이 잘못된 것이었나요?

 

 

정체성의 위기

 

지난 70여 년 한국의 발전은 기적이었습니다. 세계 학자들이 그 원동력을 밝히느라 연구하고 토론한 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적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어서, 지금 엉뚱한 사람들이 숟가락을 들고 나타나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이 있겠지만, 먼저 저는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어떤 정체성을 가진 나라인지를 되돌아보고, 이 나라 건국의 아버지들의 꿈과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과 의논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대한민국은 자유와 평등의 나라이고, 모든 국민의 인권과 재산이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민주 공화국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대한민국 헌법이 바로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대한민국의 헌법이 만들어진 곳은 어디인가요? 다양한 의견을 절충하는 논의는 어디서 이루어졌습니까? 물론 나중에 공식적으로는 제헌 국회에서 다루어졌지만, 그것은 이미 초안이 다 만들어져서 형식적인 절차로 토론하고 거의 원안대로 통과시킨 것이고, 실제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진 곳은 인촌의 사랑방이었습니다.

 

내각제 요소가 가미된 대통령제라는 우리나라 특유의 권력 구조가 만들어진 곳도 인촌 사랑방이고, 농지 개혁의 근거가 된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확정된 곳도 인촌 사랑방이었습니다. 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박사가 바로 인촌이 키운 사람이고 보성전문, 지금의 고려대학교 교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헌법기초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과 전문위원들 절반이 인촌을 따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낭산(朗山) 김준연(1895~1971) 선생의 활약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남 영암 출신의 수재로 동경제대와 베를린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신 분이죠. 일제 시대에는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로 활동하기도 했고, 해방 후에는 전향하여 한민당 창당에 참여하고, 영암에서 제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헌법 기초위원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분이 인촌 사랑방에서 열린 한민당 회의에서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절충한 헌법 초안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에게는 국가원수의 명예만 갖고, 국무총리에게 실권을 주는 유진오 안을 거부하자,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의논하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낭산이 절충안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나중에 법무부 장관도 하시죠.

 

1955년 인촌 김성수 국민장 모습.

 

이런 건국사를 모르는 무식한 놈들이 어이가 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디. 이미 1962년에 한민당의 지도자 인촌 김성수 선생에게 추서된 건국훈장을 박탈하고, 고려대학교 앞길 이름을 ‘인촌로’에서 ‘고려대로’로 바꾼다고, 명패를 바꾸어 달고서는 만세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배은망덕한 놈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차라리 고려대학교를 없애지, 고작 거리 이름 명패를 바꾸어 달고서는 만세 부르다니, 가소롭고 웃기는 놈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다고 인촌의 흔적이 지워지겠습니까?

 

인촌 김성수 선생은 온갖 굴욕을 참고 인내하면서, 전국의 유지들을 찾아다니면서 설득하고 힘을 모아서 <동아일보>를 만들고, 고려대학교를 만들고, 경성방직을 세웠습니다. 모두 우리나라 사람의 힘으로 만든 최초의 제대로 된 언론사요, 규모 있는 대학교요, 본격적인 근대 산업이고, 제조업 주식회사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성방직 같은 큰 산업체를 수천, 수만 개 가진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적은 바로 경성방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회사에서 키운 기술자와 엔지니어와 경영자들이 해방으로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공장들을 돌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토론자로 오신 경제사학자 주익종 박사는 경성방직을 ‘대군의 척후’라고 부르는 책을 썼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의 은덕을 입고 그가 닦아놓은 기초 위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려운 시절에 남의 집 머슴살이라도 해서 먹이고 재워서 키워놓았더니 부모를 부끄러워하고, 무슨 일이든지 부모 탓을 하는 배은망덕하고 철없는 자식의 모습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이렇게 철없는 짓을 자꾸 하면 하늘이 벌을 내리지 않겠습니까? 집안이 망하고 나라가 망하여 우리 후손들이 거지가 되어 길거리에서 노숙하고 배고파서 울게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정말 걱정이 됩니다.

 

우리 조상들이 살아낸 그 시대를 우리는 잘 모릅니다.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특히 군국주의자들의 미친 광란에 속마음이야 어떻든 일단 겉으로는 박수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태평양 전쟁의 시대를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신문이 다 폐간되고 유일하게 발행되던 총독부 기관지를 보고서 섣불리 판단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나중에 북한에서 김씨조선이 무너지고 나서 <로동신문> 기사를 근거로 해서, 김일성 동상에 절한 사람, 충성 편지 쓴 사람 모두 세습 독재 부역자로 처벌하자면 몇 사람이라 해야 할까요? 북한 인구의 절반쯤 해야 할까요? 아마 그렇게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면 또 당장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70년이 지난 후에,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김씨조선 잔재의 청산이 아직 안 되었다고 외쳐야 할까요?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를 함께 살아낸 사람들이 더 잘 알고 더 올바른 기준을 세웠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민특위의 조사 대상에 오른 적이 없는 사람을 지금 우리가 친일파니 뭐니 하는 것은 실로 건방진 짓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거의 다 살아 있던 해방 정국에서 반민특위도 설치되었고, 조사도 하고 재판도 했습니다. 그랬지만 인촌은 조사 대상에 오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해방정국에서 선생님은 지도자로 활동했습니다. 만약 인촌이 진짜로 친일파였다면 누가 지도자로 모셨겠습니까? 인촌은 좌익 쪽에서 발표한 인민공화국에도 문교부 장관으로 추대되었습니다.

 

1955년 2월 18일 인촌이 돌아가시고, 2월 24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장례식은 국민장(國民葬)이었습니다. 그러면 당시에, 인촌과 함께 일제의 압제를 견뎌냈던 분들이 거의 살아있던 그때의 국민장이 잘못된 것인가요? 그 자리에 참석한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건가요? 정신 나간 사람들인가요?

 

<리스트>

대한민국 건국과 호남(1)

대한민국 건국과 호남(2)

건국의 아버지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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