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 북한군이 왔다는 게 사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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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동식

 

-5.18은 체계적 지휘 아래 전개되진 않아. 이념 좌파의 활동도 지나치게 과대 포장돼

-실제 투쟁은 도시빈민층이 주도. 그들 중 상당수는 “호적조차 없는 존재였다”는 설도

-북한군 투입설 입증되면 우파 기대와 정반대 결과, 북이 ‘한국 헌정사 주역’으로 등장

 

 

많은 우파들이 기대하시는 것처럼 5.18에 북한군 특수부대 5백~6백 명이 참여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게 밝혀지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일단은 충격과 공포일 것이다. 5.18의 정당성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아마 북한군들이 광주에서 활약했다는 구체적인 실상이 하나하나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현재 우파가 주장하는 북한군 투입설의 디테일이 거의 다 인정된다고 해 보자. 그러면 어떻게 될까?

 

결과적으로 5.18 당시 길거리에 쏟아져 나오고 목숨 걸고 투쟁했던 광주 시민들이 모두 북한의 첩자 또는 그들의 영향 아래서 조직화되고 선동됐다는 결과가 나올까?

 

북한군의 활약이 사실이었고, 그래서 그들이 국군을 습격했고, 교도소도 공격했고, 무기고도 털었고, 아시아자동차의 장갑차도 몰고 나왔다고 해 보자. 그러면 나머지 광주 시민들의 활동은 다 사라지거나 혹은 모두 북한의 지휘 하에 한 행동이라고 정리될까? 그건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우파들은 광주의 들불야학이나 녹두서점 출신들이 항쟁 초기 지도부에서 한 역할을 들어 그것이 좌파가 5.18을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기획한 증거인 것처럼 몰아간다.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들불야학 등 이른바 이념화된 좌파들이 실제 5.18에 끼친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점이다. 좌파들은 시민들의 투쟁이 폭발하자 거기에 얹혀서 참여했고, 비교적 이념적 조직적 훈련을 받은 인력들이었기에 지도부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뿐이다.

 

5.18 북한군 투입설이 입증되면 게임끝일 것 같은가? 오히려 북한 김씨조선이 대한민국 헌정사의 주역으로 공식 등장하는 사태가 도래할 것이다.

 

하지만, 5.18 전체가 하나의 체계적인 지휘 체계 아래 전개됐다고 보기는 어려웠고, 사실 이념 좌파의 활동은 지나치게 과대 포장됐다고 봐야 한다.

 

많은 연구가 지적한 것처럼, 대학생 등 유한 지식계층의 참여는 5.18 초기로 제한됐고, 이후에는 흔히 룸펜 프롤레타리아라고 불리는 도시 빈민층이 투쟁을 주도했다. 확실치는 않지만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예 호적조차 없는 존재였다는 얘기도 있다.

 

게다가 들불야학 등은 이후 NL이나 PD라는 운동권 노선에서 PD 쪽에 가깝다. 이것은 5.18의 상징적 인물인 윤상원과 PD계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학림사건의 수괴)과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결국 아무리 지금 우파가 주장하는 북한군 5.18 투입설이 팩트로 밝혀진다 해도 광주 시민 대다수의 자발적 참여라는 또 다른 팩트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된다.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될까? 5.18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라는 게 거부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5.18은 적어도 1980년대의 민주화 투쟁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었고 깃발이었다. 그 거대한 상징의 힘이 1987년 민주화 대투쟁의 한가운데 자리잡았고, 직선제 개헌의 쟁취, 나아가 6공화국 성립의 가장 거대한 지분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1987년의 민주화 대투쟁과 그 결과물인 6공화국을 부인할 수 있을까? 직선제 개헌은 통치자와 거버넌스 시스템을 자기 손으로 결정하겠다는 국민적 요구의 결과이다.

 

즉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은 근대화와 근대 국민국가의 성립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이걸 배제해 버리면 대한민국이 북한 김씨조선 체제에 대해 갖는 상대적 비교 우위라는 것도 극히 제한적인 성격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그 배후에 5.18의 상징성이 자리잡고 있다.

 

결국 아무리 북한군 투입설을 ‘팩트’로 입증해 낸다 해도, 5.18의 거대한 상징성은 일시적으로, 제한적인 상처를 입을 뿐, 그 헌정사적 의미는 퇴색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그러면, 북한군의 5.18의 투입이 팩트로 드러났음에도 5.18의 헌정사적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무서운 결과가 예고돼 있다.

 

김일성이 해방 직후부터 천명했던, 민주기지론이 실제로 대한민국 헌정의 성립과 완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결과가 된다. 즉, 북한 김씨조선 정권이 대한민국 민주화와 헌정적 완성의 수훈갑이 되는 것이다.

 

5.18 이전에도 대한민국의 좌파 민주화 운동에는 북한 민주기지론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인적, 물적, 이념적으로 그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규모 스파이 조직 차원의 영향력이었다. 5.18 같은 거대한 대중 투쟁과는 차원이 다르다.

 

북한이 왜 5.18열사릉을 조성하고, 지들의 교과서에서 자기들이 5.18을 주도했다고 가르칠까? 간단히 말해서 5.18이 가진 상징성에 자신들의 지분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북한이라면 치를 떠는 우파들이 또 이 대목에서만은 북한의 주장을 철석같이 믿고 따른다는 것도 아이러니한 현상이지만, 정상적인 반응은 아니다.

 

우리나라 우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착각하는 게 한두 가지일까마는). 그냥 상대가 좌파이고 북한이란 것만 검증하면 정치투쟁에서 자기들이 무작정 승리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묘한 근자감의 정반대 측면에서 진성 우파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가짜 우파 사냥… 니가 가짜 우파고 내가 진짜 우파면 나에게 역사적 정치적 정당성이 그냥 오토매틱 시스템으로 부여된다고 믿는, 어린아이같은 환상이다.

 

좌파와 우파 누가 옳은지는 이념과 사상, 정치 투쟁의 현장에서 하나씩 하나씩 실천을 통해 검증되는 것이지, 자동빵으로 우파 라이센스에 그런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반도와 대한민국처럼 근대 국민국가 성립의 정통성을 놓고 남북간 체제 경쟁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5.18도 마찬가지다. 북한군 투입설이 입증되면 게임끝일 것 같은가? 지겹도록 우파를 괴롭히던 5.18과 저 홍어들을 박살내고 대한민국 헌정사를 우파의 것으로 독점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죄송하지만, 정반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드디어, 북한 김씨조선이 대한민국 헌정사의 주역으로 공식 등장하는 사태가 그것이다.

 

나는 여전히 5.18 북한군 투입설에 대해 부정적이다. 지금까지 내 나름대로 조사하고 수집한 증거에 따라서 판단해 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여기에 목숨을 걸고 매달리는 우파의 현실이 안타깝다.

 

5.18 북한군 투입설이 있는 그대로 팩트로 드러난다고 해도 나는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일시적인 파장이 지난 뒤 두고두고 닥칠 후폭풍은 우파에게 그리 유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경고 정도는 남겨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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