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소설’과 ‘통일’을 소비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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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원

 

-한국인은 통일 소비하기 전 일본제국, 전후 정체성 파편을 먼저 인정해야

재일조선인 화가 조양규의 <시대의 응시_단절과 긴장> 전시회 참관 권장

-상실된 조국의 원형성에 대한 끊임없는 회귀-탈골 계속 보여지는 것 같아

 

 

한국 사람들은 후조선 유생들 최후의 도덕 판타지 환상소설 <통일>을 소비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자기 출생의 비밀, ‘근대’라는 아버지의 비밀(‘다이닛폰테이코쿠大日本帝国’) 즉 ‘대일본제국’을 인정하는 것이고 전후 과정에서 이주하고 흩뿌려지고 강제로 일그러진 자기 정체성의 파편과 디아스포라를 리얼리즘 소설로 먼저 붙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스럽고 가슴 아프고 난해하기까지 한 조선 후기와 구한말, 한일 병합기와 태평양전쟁, 대일본제국 패망과 해방 정국, 미군정기, 한국 건국과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건국 사이에 뿌리 뽑히고 흩뿌려지고 수탈당하고 생존해야 했고 때로는 자신 마저 부정해야 했던 그런 낯설고 생경한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포용하지 않겠다면 당신들이 꿈꾸는 환상소설 <통일>은 한순간에 재앙을 리얼리즘적으로 가져다 줄 것이다.

 

거기에는 자유 민주 공화국 <한국>의 존속과 번영이라는 전제가 사라져 있다. 다음 세대의 행복과 번영이 저당 잡히고 인질로 사로잡혀 있다. 쇄국과 고립은 어떤 특정한 시기의 정책과 의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살아오고 인지하고 세상을 살아감으로써 내어 놓는 습성에 대한 것이라 한순간에 뒤바꾸기 어려운 것이다.

 

자신의 분신을 포용하고 인정해 본 적도 없이 계속 자신의 분신을 타자화하고 부정해 온 자들이 안타깝게도 체제에 의해 기회주의와 노비 근성, 협잡과 기망에 찌들어 있는 북조선 인민을 수용하고 통일된 한국을 지향할 거라고?

 

먼 곳으로부터 온
어떤 국적
혹은 어떤 인척과 친족관계
어떤 혈연
어떤 피와 피의 연결
어떤 조상
어떤 인종 세대
어떤 가문 종친 부족 가계 부류
어떤 혈통 계통
어떤 종 분파 성별 종파 카스트
어떤 마구 튀어나와 잘못 놓여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3의 부류
Tombe des nues de naturalized(귀화한 나체들의 무덤)
어떤 버려져야 할 이식

-테레사 학경 차Theresa Hak Kyung Cha의 <딕테DICTEE>(1982) 중에서

 

조양규의 그림에서는 상실된 조국의 원형성에 대한 끊임없는 회귀와 탈골이 계속 보여지는 것 같다. 보기 드물고 매우 귀한 그래서 꼭 봐야 하는 전시라 방문을 권하고 싶다.

 

2018년 12월 20일 · 광주 ·
광주 하정웅미술관에서 <조양규, 시대의 응시_단절과 긴장> 전시가 열리고 있어 서울에서 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처음 조양규의 작업을 보고 느꼈던 충격이란! – 난 한국 근대 회화를 통틀어 이 정도까지 숨막히고 강렬하며 예술적 경지로 비명을 지르게 하는 작업이 없지 않았던가? – 정도였다.

 

1928년 진주에서 태어난 작가는 프롤레타리아 미술에 관심이 많았고 일제 패망 이후 해방 공간에서 남로당에 가입해 정치 활동에도 투신했다. 그는 한국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해 인공기를 게양하는 사건을 주도한 뒤 도피 중에 신변의 위협을 느껴 일본으로 밀항을 시도했고, 이에 성공해 에다가와죠(技川町) 조선인 부락에 정착했다.

 

일본에서 작가는 마지막으로 “허공에 매달리는 상태를 벗어나서 조국의 현실 속에서 격투하고 싶다”며 1960년 일본에서 북송선에 오르게 된 이후에는 다음의 짧은 기록만을 남기고 이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바로 그가 북조선에서 체코슬로바키아로의 1년 간의 짧은 유학에서 되돌아와 북조선의 이념 선전의 도구로 쓰이거나 위협받는 상태에서 경직된 모습으로 찍혀진 그의 마지막 사진 포트레이트이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아마도) 강압에 의해 변형되고 강요된 선전화풍의 작품 이미지에는 조금의 자유도 보이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많은 걸 알 수 있게 하는 가장 아픈 장면이 있다.

 

재일 조선인으로서 일본에서 느낀 억압과 서러움. 당시 조국에서의 전쟁과 대일본제국 경제의 부흥 아래 상반된 재일 조선인의 처참한 현실에 대해 조양규 작가는 믿을 수 없이 삭혀지고 절제된 사회주의 리얼리즘 또는 전후 일본 리얼리즘 양식의 작업을 보여 주고 있다.

 

그의 그림에서는 상실된 조국의 원형성에 대한 끊임없는 회귀와 탈골이 계속 보여지는 것 같다. 보기 드물고 매우 귀한 그래서 꼭 봐야 하는 전시라 방문을 권하고 싶다.

 

그를 부정적 의미의 디아스포라에서 긍정의 디아스포라로 초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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