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개인 통제와 문명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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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석

 

-희한하게도 코로나 같은 호흡기 전염병의 유행은 “천재지변이 아니라”고 생각

-인간 사회와 문명이 만든 전체주의 일면. 오히려 코로나보다 위험한 문명 질병

-정치인은 케인지언 해법 선호. ‘통제용’ 권력과 예산으로 사람들에 영향력 행사

 

 

1.
사람들은 천재지변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허리케인 폭풍이나 태풍이 불어 닥칠 때 이걸 통제하겠다는 정부는 없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코로나 같은 호흡기 전염병의 유행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생각한다.

 

정부가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고, 첨단 의료가 예방할 수 있다는 이상한 믿음을 갖는다. 이 재난은 인간이 전파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감기는 예방할 수 없다는 걸 또 받아들인다. 만일 코로나가 감기 정도의 치사율이었다면 “막을 방법이 없으니 치료에 집중하자”고 했을 것이다. ‘치사율이 높아서’ 막을 수 없는 것을 막겠다는 거 아닌가. 얼마나 부조리한 생각인가.

 

우리는 왜 인간도 자연적 존재라는 걸 무시할까? 인간이 퍼트리는 유행병이나 자연이 시행하는 허리케인이나 뭐가 다를까? 허리케인을 예방하기보다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답인 것처럼, 코로나도 중증 치료가 답이지 예방이 아닐 것이다.

 

활동 규제가 없는 가운데 백신을 맞고 어쨌든 코로나 걸리면 약 먹고 앓아눕는 것이고, 중증으로 가면 병원에 가는 것이 상식이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식은 잘 통하지 않는다. 개인은 통제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석유 사용과 화력 발전을 줄이면 지구 온난화를 예방해서 파멸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 ‘어머니 지구’, 신흥 ‘환경 종교인’들에게는 인간을 통제하면 코로나를 예방할 수 있다는 믿음은 더욱 견고할 것이다.

 

인간 사회와 문명이 만든 전체주의의 일면이다. 이게 오히려 코로나보다 위험한 문명의 질병인 것이다.

 

결과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잘 안 된다면 그건 국민이 통제에 따라 주지 않은 이유니까. 그럴 때는 ‘노래방 비밀 영업, 다수 확진자 속출’ 이런 기사 하나로 다 커버된다.

 

2.
코로나에 대한 해법도 설계주의 케인즈 경제학자와 자유주의 하이에키언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케인지언들은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도 불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이렇게 말한다.

 

“충분히 투입하지 않았다.”

 

이런 케인지언이 보는 코로나 확산도 역시 그럴 것이다.

 

“충분히 통제하지 않았다.”

 

하이에키언이라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개인들이 대처해서 자생적 질서로 집단 면역의 평형이 올 때까지 놔둬라. 단, 경제적 탈락자를 구제하는 것처럼 중증자 치료 안전망을 구축하라.”

 

자유주의 경제학자가 정책을 다룬다면 자원이 어디에 배분되어야 하는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코로나도 예방이 아니라 치료에 의료 자원이 집중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당연히 정치인들은 케인지언 해법을 선호하게 된다. 그래야 자신들이 ‘통제’를 위한 권력과 예산으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고,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다”고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잘 안 된다면 그건 국민이 통제에 따라 주지 않은 이유니까. 그럴 때는 ‘노래방 비밀 영업, 다수 확진자 속출’ 이런 기사 하나로 다 커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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