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은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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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경모

 

-내가 상대를 전인격적으로 존중하면, 상대도 나를 부족하고 흠있는 인간 그 자체로 존중

-다른 사람들의 집을 방문할 때도 밖에서 옷이나 신발의 먼지를 털고 들어가는 것이 예의

-소중한 존재들을 소중하게 여기시길… 다른 사람들에게 소중한 것들도 함께 존중하구요

 

 

1.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에게는 개는 사람과 분명히 다른 짐승입니다. 하지만 개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에게 그 개는 자신의 관심과 사랑을 담은 어떤 의미를 가진 ‘이름’입니다. 꽃이라는 시에서도 잘 표현되고, 어린왕자에서도 장미꽃 이야기를 통해 잘 설명합니다. 타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그 사람에게는 소중한 것들이 있습니다. 상대와 소통하려면 당연히 상대에게 의미있는 것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난을 사랑하고 애지중지하는 사람에게 그가 기르는 난을 끊으면 안 되겠죠. 돈이 아니에요. 거기에는 그 사람의 관심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이틀 만나 깊은 밤을 보낸 인연과 지지고 볶고 싸우더라도 평생을 살아 온 부부가 겪는 상실감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눈높이란 이런 것입니다. 어린이를 만난다면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야 합니다. 실제로 눈의 높이를 맞춰야 하고, 어린이의 언어로 소통해야 합니다. 어린이가 갖고 노는 인형이나 장난감은 몇만 원짜리 플라스틱이 아니라, 그의 다른 자아를 표현하는 친구 혹은 꿈 혹은 그 자신입니다. 소통의 전제는 존중입니다.

 

그래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집에 가면 자신이 보는 대로 짐승으로 볼 게 아니라 그를 키우는 사람의 시선으로 봐야 합니다. 대체로는 가족이겠죠. 이는 병상에 있는 환자나 장애를 가진 가족의 집을 방문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황스럽고 익숙하지 못하니까 혐오스러운 감정이나 두려움을 선뜻 내비칠 수 있지만, 그러면 상대방은 알면서도 상처받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은 본인에게는 자기 자신이나 다름 없는 존재인데 존중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존중이 부재하면 소통은 요원합니다.

 

미스커뮤니케이션이 부지기수로 일어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조차 하지 못하죠. 너무나 당연한 기본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돌아가는 길에 넥타이 색깔, 패션, 농담이나 대화를 잘못했나 복기하죠. 아니에요. 상대를 존중하지 못했기 때문에 상대로부터 존중받지 못한 겁니다. 내가 상대를 전인격적으로 존중하면 상대도 나를 부족하고 흠이 있는 인간 그 자체로 존중합니다.

 

개를 식용으로 반대하는 논지도 이런 거에요. 식용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닌 개가 인간 사회에서 애완용으로써 인간에게 의미를 갖기 때문에 개를 먹는 것에 반대하는 겁니다. 개나 소, 돼지는 생물적 분류가 다른 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부여한 의미가 다르다는 거에요.

 

다른 사람에게 소중한 것도 함께 존중하길… 낙엽조차 어떤 이에게는 마지막 잎새가 되어 희망과 절망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사소한 것은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2.

차를 타거나 내릴 때, 특히 택시를 탈 때 다 같이 내리고 문은 살살 닫으세요. 차를 소유한 사람들은 당해 보기 때문에 당하면서 고쳐 나가는데 아직 차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보통 목적지에 도착하면 동승자들이 다 투다다닥 내리면서 각각 문을 닫고 운전자가 제일 마지막에 내리게 되는데, 그러면 문 닫히는 충격을 운전자가 계속 받아요. 그게 뭐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차를 탈 때마다 그런다고 생각해 보세요. 특히 택시 기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큰 스트레스의 원인이 됩니다.

 

문 세게 안 닫아도 잘 닫히거든요. 가까이 가서 살짝만 세게 밀어 주면 되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잘 닫히면서 충격은 별로 없습니다. 배려죠, 그야말로 배려죠.

 

1번과 마찬가지인데, 특히 차를 끔찍히 아끼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차를 탈 때 신발을 툭툭 털고 차를 타면 좋습니다. 이건 다른 사람들 집을 방문할 때도 밖에서 먼지를 좀 털고 들어가는 게 예의에요. 옷이나 신발 등에서 말이죠.

 

3.

식당에서 팁을 쓰세요.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은 처음에 나올 때 정해진 것에 가격이 고정돼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정서상 뭐 음식을 모자라서 조금 더 받거나 할 때가 있죠? 뭐 아주 조금이야 이해하겠지만 여러 차례 서빙을 받고 음식을 더 준다면 당연히 손님도 식당을 배려해야 하는거에요. 아무리 작은 식당이고 저렴한 음식이라도 잘 먹었다는 뜻의 감사로 천 원이라도 더 놓고 오면 그 가게는 방문한 손님을 기억합니다. 음식을 줄 때 이미 배려해서 더 담아 줄 거에요.

 

서로에게 의미를 갖다는 건 이런 거에요. 내가 보낸 선의에 상대방이 선의로 반응하는 거죠. 그러면서 조금씩 신뢰가 싹트는 거에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는 건 참 중요한 거에요. 니체가 말을 붙잡고 울었던 것도 그런 거에요. 우리 각자가 다른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것뿐인데 너무 극명하게 다른 결과를 얻고 있는 거죠. 이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어진 것을 성취로 착각해 타인을 비참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녀야 해요.

 

생명에 대한 존중도 그런 것의 연장입니다. 여러분이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나도 여러분에게 가서 꽃이 된 겁니다. 이 글이 바람을 타고 가서 꽃을 피운 거에요. 사람은 의미를 잃어 가면서 서서히 죽어 갑니다. 인생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은 내가 의미를 부여한 것들에 의해서입니다. 소중한 존재들을 소중하게 여기세요. 다른 사람들에게 소중한 것들도 함께 존중하구요.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조차 어떤 이에게는 마지막 잎새가 되어 희망과 절망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사소한 것은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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