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꽈당’에서 떠올린 박인환과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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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도형

 

-인민군에 징집되었다 포로가 된 김수영을 종군기자 박인환이 보증해 미군 통역 생활

-박인환은 김수영이 싸구려 모던 감성 타박하며 대놓고 모욕줘도 한사코 김수영 챙겨

-경주 이씨 종중서 절한 이재명 보고 윤석열도 파평 윤씨 시조 용연서 출사표 읊을까?

 

 

박인환은 다섯 살 연상 김수영이 늘 그 싸구려 모던 감성을 빈정거리며 타박하고, 대놓고 그것도 시(詩)냐고 모욕을 줘도 한사코 김수영을 챙기고 옹호했다.

 

김수영은 전쟁 초기 서울이 점령당하면서 인민군에 강제 징집되어 의용군이 되었다가 9.28 서울 수복 후에 쫓겨 가는 인민군 서슬 아래에서 같이 북행 후퇴길에 올랐다가 탈출하여 유엔군 포로가 되어 거제도 수용소에 입소했을 때, 종군 기자 박인환의 보증으로 인민군 수용 막사에서 벗어나 번역과 통역을 하며 미군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때 김수영은 참전 미군들 열람용으로 미국에서 보내온 <보그>, <엔카운터>, <다이제스트>, <내셔널지오그래피>, <타임> 같은 잡지들을 보면서 모더니즘에 대해 제대로 눈을 떴다. 그러니 강원도 인제 촌놈 박인환이 프렌치 모던을 흉내내며 <마리서사> 같은 책방을 차려놓고 시인, 지식인들을 호객하던 장면들이 얼마나 눈꼴이 시렸겠는가.

 

전쟁 후, 인제 시골서 보내오는 돈도 끊기고 기자 생활이라고 해 봐야 한 달치 월급을 김수영이며 명동백작 등등한테 대포 한 잔 선심쓰면 박인환은 늘 빈털터리였다.

 

그렇게 술을 얻어먹으면서도 김수영(사진 왼쪽)은 박인환(오른쪽)을 싫어했고, 박인환은 욕을 먹어 가면서도 김수영 몰래 김현경 여사한테 생활비를 보태주는 관계가 두 사람 사이였다.

 

그렇게 술을 얻어먹으면서도 김수영은 박인환을 싫어했고, 박인환은 욕을 먹어 가면서도 김수영 몰래 김현경 여사한테 생활비를 보태주는 관계가 두 사람 사이였다.

 

그런 박인환이 끔찍하게 싫어한 김수영의 시 두 편이 있다. 1945년 문예잡지 <예술부락>에 실린 <묘정의 노래>와 1949년 동인지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실린 <공자의 생활난>. 나름 포마드 기름으로 하이칼라 가르마 멋을 내고, 암시장으로 흘러나온 미군 장교들 정장 슈트와 나비 넥타이를 즐겨 입던 프렌치 모더니스트 박인환에게 김수영이 쓴 해방 무렵 두 편의 시는 너무나 끔찍했다.

 

특히 박인환이 주도하여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란 모던 동인 시집을 발행하는데, 김수영이 고루하고 남루한 이조 말의 퀘퀘한 분위기를 모던 시집에 넣자고 가져왔으니 박인환으로서는 한 소리 안 할 수 없었고, 김수영은 두고두고 그걸 고까워하며 박인환을 씹었던 것.

 

그런 김수영이 전쟁 포로가 되었다가 미군들 군속이 되어 당대 선진 매거진을 원문으로 보면서 문명 비판이란 모더니즘의 본령을 습득했으니…

 

그럼에도 김수영은 1956년 <달나라의 장난>, 1964년 <거대한 뿌리>, 1964년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같은 시들을 통해 전통에 목말라 하는 민족적 정서를 드러낸다. 1956년 생활난에 시달리다 병사한 박인환이 살아 있었더라도 김수영이 그런 시를 계속 썼을까 싶다. 사실 김수영은 ‘모던뽀이’ 박인환에게 콤플렉스 아닌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재명이 경주 이씨 종중 사당 표암제에 가서 격식도 글러먹은 의관 차림으로 절을 하는 걸 보면서, 윤석열 또한 파평 윤씨 시조의 탄강지 용연에 가서 대통령 출사를 읊겠지 하다가 문득 그래도 박인환이 김수영보다 시대를 앞서가지 않았나 생각이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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