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중립 선언과 이용익의 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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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중국 지푸(芝罘)에서 ‘국외중립 선언’. 러시아-일본 평화 결렬될 경우 엄정중립 천명

-일본군 들어오자 구중궁궐은 텅 비었으며 조정 대신들도 숨기 바빠. 나라 꼴이 엉망

-“열강으로부터 보장받지 못한 조약 쓸모없어. 개혁하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어”

 

 

•국외중립선언

1904년 1월 21일에 고종은 중국 지푸(芝罘)에서 기습적으로 ‘국외중립 선언’을 하였다. 그 내용은 러시아와 일본 간에 평화가 결렬될 경우 대한제국은 엄정중립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지푸 선언은 이용익이 극비리에 총지휘하고 현상건·강석호·이학균·이인영 등이 프랑스인 교사 마르텔 및 벨기에인 고문 델코안뉴 등의 협조를 받아 추진되었다. 영국 공사 조단은 ‘외무대신도 사전에 알지 못한 채 문서에 도장을 찍으라는 명령만 받았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더욱이 한국의 전신 업무는 실제로 일본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에 고종은 외부(外部) 번역관 이건춘을 지푸 주재 프랑스 부영사에게 밀사로 파견하여 불어로 된 선언문을 각국에 타전하였다.

 

그런데 일본과 러시아·미국은 이 선언에 대해 아무런 회답을 보내지 않았다.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는 접수했다는 회신만 했을 뿐 이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너무나 무능하고 안일한 고종

2월 6일 아침에 일본연합함대 제1전함대와 제2전함대가 중국 뤼순으로 출발했다. 제3전함대와 제7전함대는 이 날 저녁 무렵에 진해만을 점령했다. 이것이 일본의 대한제국 첫 침략이었다(와다 하루키 저 · 이경희 역, 러일전쟁과 대한제국, 2011, p 59-60).

 

이용익 초상(왼쪽)과 고려대학교에 있는 이용익의 흉상.

 

2월 8일 밤,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끄는 일본 해군은 중국 여순항에 있는 러시아 극동 함대를 기습공격했다. 일본 함대 14척도 2월8일에 제물포에 정박한 두 척의 러시아 전함에 대해서도 기습공격했다. 오후 4시경 러시아 카레예츠호가 자폭하였고, 6시경 바라크호가 침몰하였다.

 

2월 9일에 일본군 1천 명이 서울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도망치고 구중궁궐은 텅 비었으며 조정 대신들도 숨기에 바빴다. 나라를 지켜야 할 지도층이 흔들렸으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고종은 나라가 전쟁터가 되었는데도 ‘국외중립 선언’ 이상의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너무나 무능하고 안일했다.

 

•이용익의 오판

한편 일본 해군의 제물포 기습공격 이틀 전인 2월 6일경, 영국 데일리메일의 종군기자 프레더릭 매켄지는 고종의 최측근 이용익과 대담하였다. 매켄지는 1908년에 <대한제국의 비극>, 1920년에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 ; 한국의 독립운동>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책을 쓴 친한파이다. 그는 일제의 만행을 널리 알린 공로로 2014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

 

이 만남에서 이용익은 ‘한국이 러일전쟁에 결코 휘말려 들어갈 수 없다’는 굳은 확신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내가 겪은 개인적인 기억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나는 서울에 있는 동안 이용익과의 면담에 초대받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한국이 멸망하지 않으려면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말을 들은 이용익은 한국이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독립을 보장받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즉각 응답했다. 그와 나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갔다.

 

M (매켄지) : 열강으로부터 보장받지 못한 조약이란 쓸모없는 것이라는 점을 귀하는 모르십니까? 만약 조약이 준수되기를 바란다면 당신이 먼저 조약을 지켜야 합니다. 지금 한국은 개혁을 단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이용익) : 다른 나라가 어찌하든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중립적이라는 사실과 우리의 중립이 존중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발송했습니다.

 

M : 만약 귀국이 스스로 지키지 않는다면 그들이 왜 당신들을 지켜주겠습니까?

 

이 : 우리는 미국과 약속을 했지요. 무슨 일이 있어도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 되어 줄 겁니다.

 

이용익은 그러한 입장으로부터 자기의 결심을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이용익이 언급한 미국의 약속이란 1882년 5월 22일에 체결된 한미수호조약 제1조의 ‘거중조정(good offices)조

항’을 말한다.

 

“미합중국 대통령과 조선 국왕 및 각 그 정부의 공민과 신민간에 영구한 평화와 우호가 있을 것을 기약하고 만일 제3국이 체약국 간의 어느 한 정부에 대하여 부당하게 또는 억압적으로 행동할 때에는 체약국 중의 타방 정부는 그 사건의 통지를 받는대로 원만한 타결을 가져오도록 주선을 다함으로써 그 우의를 표시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 거중조정 조항은 1883년 11월 26일에 체결된 한영수호통상조약 제1조에도 명시되어 있다.

 

“제1조 (2) 체약국의 일방국과 제3국 간에 분쟁이 발생되는 경우에 청을 받은 타방은 이의 원만한 타결을 보기 위해 조정에 노력한다.”

 

이용익은 국가 간의 통상수호조약에서 보통 쓰는 이 조항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미국이 영토 보전까지 도와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는 이용익만의 생각이 아니라 고종과 그 측근도 같은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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