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과연 믿을 수 있는 기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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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산(松山)

-조스케가 ‘육군 중위’라는 기록은 <백범일지>에서만 발견. 일본 기록엔 ‘약장수’

-문어체 자서전들과 달리, <백범일지>는 쉽고 간결한 문체로 출간되자 큰 반향

-<백범일지>가 전 국민의 교양서로 자리잡게 된 일등 공은 ‘윤문자’ 이광수의 몫

 

 

1. 스치다 조스케 살인 사건의 <김구 심문 조서>와 <백범일지> 비교

 

<백범일지>
단발을 하고 한복을 입은 한 명이 같이 앉은 나그네와 인사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성은 정이고 사는 곳은 장연이라 했다. 말투가 장연 말씨가 아닌 경성 말씨였는데도 시골 노인들은 그를 조선 사람으로 알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분명 왜놈이었다.

 

만약 저자가 보통 장사치라면 조선인 행세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그렇다면 혹시 미우라 고로(명성황후 시해범)가 아닐까? 공범일 수도 있다. 공범이 아니라도 칼을 차고 다니는 왜놈은 우리 민족의 독버섯이다.

 

나는 왜놈의 소지품을 뒤지게 하였다. 소지품을 조사해 보니 왜놈의 이름은 쓰치다 조로이고 직위는 육군 중위이고 엽전이 800냥 있었다.

 

<심문 조서>
이튿날 밝은 새벽에 조반을 마치고 길을 떠나려 하였는데, 점막(店幕)의 법도가 나그네에게 밥상을 줄 때 노소(老少)를 분별하여 그 차례를 마땅히 지켜야 하는데도 손님 중에 단발을 하고 칼을 찬 수상한 사람이 밥상을 먼저 요구하자 여점원이 그 사람에게 먼저 밥상을 주므로 마음으로 심히 분개하였다.

 

그래서 그 사람의 근본을 알아본 즉 일본인이므로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讎)라고 생각이 되자 가슴의 피가 뛰었다.

 

그러한 때 그 일본인이 한눈을 팔고 있는 틈을 타서 발길로 차 거꾸러뜨리고 손으로 패 죽여서 얼음이 언 강에 버렸다.

 

조스케가 육군 중위라는 기록은 현재까지 <백범일지>에서만 발견되었다. 일본 측 기록엔 약장수로 등록되어 있었다.

 

<백범일지>가 전 국민의 교양서로 자리잡게 된 일등 공은 윤문한 이광수의 몫으로 돌려야 할 듯 싶다(가운데 초판 표지, 오른쪽은 친필본).

 

2. <백범일지>와 춘원 이광수

일지(逸志)는 국어사전에 ①훌륭하고 높은 지조 ②세속을 벗어난 뜻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즉 <백범일지(白凡逸志)>의 사전적 풀이는 백범 자신의 훌륭하고 높은 지조를 쓴 기록물이란 뜻이다.

 

또한 <백범일지(白凡逸志)>에서 ‘일지’는 숨겨진 기록, 곧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라는 뜻의 일지(逸志)이다. 하지만 숨겨진 기록을 의미하고자 일지란 단어를 선택했다면 志대신 誌를 사용했어야 할 것이다. 즉 白凡逸誌 말이다. 그러나 백범은 <백범일지>(白凡逸志)란 용어를 선택했다. 백범이 정말 스스로 자신을 높이고자 했는지, 혹은 단어 사용의 미숙함으로 일지(逸誌)를 사용했는지 그 연유는 알 수 없다.

 

<도산일기>를 비롯한 자서전류는 대부분 한문식, 구식 표현을 사용한 문어체 문장이지만 <백범일지>는 달랐다. <백범일지>는 처음부터 유려한 문장, 쉽고 간결한 문체로 출발했다. <백범일지>는 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백범 개인의 일생도 흥미로웠지만,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독립지사들의 행적을 어느 정도나마 파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체는 보너스였다. 이 <백범일지>를 기본으로 수많은 <김구 자서전>과 <김구 평전>이 탄생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백범일지>의 진정한 작가는 누구인가? 김구 자신인가 ? 김구가 아니라면 누구일까? 백범은 <백범일지> 초간본에서 저자의 말을 남겼다. 글에서 백범은 “김지림 군과 삼종질 흥두가 편집과 번역, 철자법 수정 등 궂은일을 했다”고 서술했다. 이 문장 때문에 오랫동안 김지림이 <백범일지>의 윤문자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광수가 윤문(글을 다듬고 고침)의 주인공임을 알고 있으며 인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김구의 아들 김신이 이광수가 윤문자임을 고백했기 때문이다. 김신의 말을 들어 보자.

 

“춘원은 자신이 그 일을 하겠다고 했답니다. 아버님은 그의 친일 행실 때문에 망설였는데, 누군가가 글솜씨도 있는 사람이고, 속죄하는 기분으로 맡겠다니 시켜 보라고 했대요. 그가 윤문을 한 것은 사실이나, 아버님이 그걸(윤문) 알고 맡기셨는지 의문입니다.”

 

춘원이 스스로 <백범일지>의 윤문을 자청했는지, 김구가 이광수의 윤문을 알았는지 등에 관한 사항은 향후 좀더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광수가 <백범일지>의 산파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아무튼 <백범일지>가 전 국민의 교양서로 자리잡게 된 일등 공은 아무래도 이광수의 몫으로 돌려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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