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하는 ‘공짜는 없다’는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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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동식

 

-예수님 구원이 공짜라니 하나님이 공짜 용납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 많아

-‘공짜는 없다’는 철의 원칙을 삶의 역정을 통해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이 야곱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의 계산 밖에 있지만 가장 정확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워

 

 

1.

예수님의 구원이 공짜라니까 하나님이 마치 공짜를 좋아하시고 용납하시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알게 모르게 그런 사고방식에 젖어가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성품 가운데 하나가 ‘계산이 철저하신 것’이라고 본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야말로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결코 공짜는 없다는 것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 주는 샘플이다. 인간의 죄악을 그냥 용서해 주실 수 없기 때문에, 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다른 누구도 그 죄악을 대신 갚아 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오직 유일하게 죄 없으신 예수님만이 그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죄를 갚아 주실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스스로를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라고 표현하신 것에도 비슷하면서도 심오한 원리가 숨어 있다. 예수님이 그냥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본체로서 인간의 죄를 짊어지시면 그건 또다시 공짜 구원이 된다. 그래서 굳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인간의 신분을 입으신 것이다. 인간의 신분으로, 인간의 몸으로, 인간과 똑같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으셔야 그 구원에 지불하는 고통이 공짜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최후의 순간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주여, 나의 주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하신 것도 바로 인간의 몸, 사람의 아들로서 죄악을 짊어져야 하는 완전한 절망과 어둠을 있는 그대로 감당하셨음을 보여 주는 에피소드이다.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예수님은 성모 마리아의 완벽한 유전적 복제이다. 남성의 정자가 예수님의 탄생에 개입한 것이 없기 때문에 오직 마리아의 유전자에만 의존하여 성별만 바꾸어 남자로 태어나신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하와가 아담의 완벽한 유전적 복제인 것의 데칼코마니이다. 하나님은 아담의 갈비뼈를 빼내 그걸로 하와를 만드셨다. 이런 점에서 유전적으로 아담과 하와는 동일하다.

 

그리고, 아담(남자)의 완벽한 유전적 복제인 하와(여자)의 범죄에 의해 인간에게 원죄가 덧입혀진 것의 미러링이 바로 예수님이다. 성모 마리아(여자)의 완벽한 유전적 복제인 예수님(남자)의 십자가 희생에 의해 인간의 원죄가 벗겨지는 어마어마한 우주사적 드라마가 전개된다. 이런 드라마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직 창조주의 우주적 관점에서만 가능한 얘기이다.

 

‘공짜는 없다’는 하나님의 철의 원칙을 삶의 역정을 통해 가장 잘 보여 주는 인물은 하나님의 축복, 장자권을 얻기 위해 형 에서와 아버지 이삭마저 속인 야곱이다.

 

2.

‘공짜는 없다’는 하나님의 철의 원칙을 그 삶의 역정을 통해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람이 누구일까? 나는 창세기의 야곱이라고 본다. 하나님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까지 받으며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아버지가 된 야곱. 그는 하나님의 축복, 장자권을 얻기 위해 형인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인 이삭마저 속인다. 그 수법은 솔직히 말해서 야비하고 비열하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속적 캐릭터의 전형이다.

 

그렇다면 야곱은 그런 수법을 동원해서 과연 하나님의 축복을 얻었을까? 바로 이 문제에 답하는 대목에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결정된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 장자권을 가졌으면서도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의 삶은 오직 고통으로 점철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들 둘을 한꺼번에 잃을 수 없다는 어머니 리브가의 배려에 따라 그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이 있는 곳으로 도망간다. 그곳에서 그는 외사촌 누이 라헬을 사랑하게 된다. 라헬을 얻기 위해 그는 7년이나 삼촌을 위해 대가도 없이 고된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7년이 지나 외삼촌 라반이 신혼방에 넣은 여인은 라헬이 아닌, 사랑하지도 않는 레아 즉 라헬의 언니였다. 그리고 불평하는 야곱에게 라반은 “언니보다 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법은 없다”며 자기를 위해 7년을 더 일해야 라헬을 야곱의 아내로 주겠다고 한다. 야곱은 어쩔 수 없이 7년을 더 일해 라헬과 결혼한다. 하지만, 사랑하지도 않는 레아가 아들들을 쑥쑥 낳는 반면, 정작 사랑하는 아내 라헬은 아들을 잘 낳지 못했다. 그러다 간신히 얻은 아들이 요셉이었다.

 

외삼촌 라반의 적대와 질시를 피해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도 고난은 계속된다. 사랑하는 딸 디나가 그 지역 주민에게 강간당한 데다 아들들은 잔인한 복수를 해서 야곱과 일가의 처지를 어렵게 만든다. 게다가 맏아들인 르우벤은 야곱의 소실인 빌하와 간통하는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막내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죽고, 또 그의 소생이던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사서 이집트로 팔려간 것이었다.

 

요셉은 그래도 형 유다의 배려로 죽지 않고 이집트로 팔려 갔지만, 야곱은 그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요셉은 살아 있었지만 야곱에게는 사실상 죽은 아들이었고,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에 따른 고통을 일평생 안고 살아야 했다.

 

또, 이집트 총리가 된 요셉이 식량을 구하러 온 자기 형들에게 “니들 동생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하고, 그의 형들이 아버지인 야곱에게 이 말을 전했을 때 야곱이 보인 반응에 주목해야 한다. 야곱은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 행하는 길에서 재난이 그 몸에 미치면 너희가 나의 흰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라고 말한다. 

 

여기서 야곱이 요셉을 제외한 그의 아들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사실은 요셉이 그의 형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리라는 의심을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아왔으리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이 형들에게 살해당했을 거라는 심증을 품고 있었으니, 평생 동안 그 마음의 고통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마치, 몸은 고급 침실에 누워 있으면서도 정신이 헤매는 꿈에서는 지독한 악몽에 시달리는 것과 같달까? 

 

결국 야곱은 요셉이 살아 있다는 것, 요셉이 이집트로 가서 온갖 고생을 한 것도 결국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야곱이 꿈꾸었을 세속적인 욕망의 실현은 철저하게 거부당했다. 일평생 고생하고, 배신당하고, 가장 사랑하는 아내가 먼저 죽고, 사랑하는 아들은 사실상 죽은 상태였고, 말년에는 먹을 것조차 찾기 어려워 고통을 겪는다. 즉, 하나님은 야곱이 장자권 축복을 통해 기대한 것을 단 하나도 주지 않으셨다.

 

하지만, 하나님은 야곱이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거대한 축복, 장자권 축복이 진짜 의미하는 축복을 내려 주셨다. 야곱은 평생을 고통에 시달렸지만, 그 말년에는 그 고통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완벽한 반전을 통해 보여 주신다. 하나님은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하다.

 

“야곱아, 장자권에서 무엇을 기대했느냐? 너의 욕망을 위해서 비겁한 방법으로 장자권을 도둑질했지만, 네가 기대했던 그 축복은 하나도 얻지 못했다. 그 대신 나는 네가 기대하고 원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진실한 축복을 너에게 주었다.”

 

그 축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집트에 도착한 야곱이 파라오 앞에 가서 말하는 장면이다.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연세가 얼마뇨.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창세기 47장 8~10절)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이 한 마디 말처럼 야곱의 생애를 압축해 묘사하는 표현이 또 있을까? 이 표현이 창세기에 등장하는 가장 진솔한 신앙 고백 아닐까? 인간이 기대하는 하나님의 축복의 양면성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하지만, 그렇게 험악한 세월을 보낸 야곱이 파라오를 축복한다. 이집트 파라오는 당시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권력이 있는 자였다. 그런 자에게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전해 주는 것이다. 이 부분은 <신약성경> 고린도후서의 다음 부분과 대칭을 이루는 것 아닌가 싶다.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린도후서 6장 8~10절)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의 계산 밖에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산은 가장 정확하고 공정하며 정의롭다. 그 대원칙은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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