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에서 과부와 미망인 그리고 홀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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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동식

 

-옛날엔 남편 먼저 사망한 여인을 ‘과부’라 불러. ‘약하고 힘없는 여인’이란 뜻

-호칭으로 여성 신분을 특정할 상황 자체가 사라지면서 ‘어휘’도 점차 사라져 

-세상은 세월 속에서 유장하게 흘러간다. 때론 급하게 때론 한없이 지루하게

 

 

옛날엔 남편이 먼저 사망한 여인을 흔히 과부(寡婦)라 불렀다. 약하고 힘없는 여인이라는 의미이다. 이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어휘이고 특별히 그 여인을 존중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미망인(未亡人)이라고 불렀다. 어감이 뭔가 고급스럽고 점잖아 보이긴 하지만, 어휘의 뜻을 액면 그대로 풀이하자면 ‘아직 죽지 않은 자’라는 뜻이다.

 

과부를 높여 부를 때 저 어휘를 사용한 것은 실은 그 여인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죽은 사람에 대한 존중이라는 뉘앙스가 진하게 배여있다. 즉, 귀하신 분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부속물(?)인 아내는 당연히 따라죽어야 하지만 아직 차마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첩(妻妾)을 남편의 소유물로 여기던 시대의 흔적이다. 정실부인이라도 남편에게 자신을 지칭할 때 스스로 소첩(小妾)이라고 낮춰 일컬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고대의 지배 계층이 사망했을 때 행해지던 순장(殉葬)의 흔적이 어른거리는 어휘이기도 하다. 이런 미망인이란 단어가 스스럼없이, 아무 거부감도 없이 쓰이던 것이 불과 한 세대 전이다. 내가 청년 무렵이던 시절, 즉 1980년대까지도 저 단어가 그리 드물지 않게 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 어휘가 없어지게 된 것도 특별하게 무슨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던 것 같지 않다. 즉, 요즘의 페미니스트들처럼 누군가 발작적으로 이슈를 만들고 조직화한 결과물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냥 사회의 보편적인 양식 수준이 진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소멸된 결과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혹은 한자 실력이 추락하면서 저 어휘를 아예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이 언어 생활에서의 퇴장으로 이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본질적으로는 지금 시대에는 과부나 미망인 등 호칭으로 여성의 신분을 특정할 상황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즉, 남편이 죽었건 말았건, 결혼을 하건 말았건 여성의 신분이나 처지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하는 시대상의 반영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과부나 미망인처럼 점잔을 빼는 한자 어휘가 아닌, 순 우리말로 남편을 먼저 여읜 여인을 부르던 호칭도 있긴 했다. 바로 ‘홀어미’ 또는 ‘홀엄씨’가 그것이다.

 

그냥 심심풀이 삼아 해 보는 객담(客談)이다. 그냥 잊혀지고 사라져 간 옛날 어휘들이 불러오는 그 시대의 잔상이 떠올라서다. 일종의 증언이기도 하고. 참, 객담(客談)도 요즘은 거의 쓰이지 않은 사어(死語)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객쩍게 하는 말하는 것 또는 그런 말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요즘 세대 가운데 ‘객쩍다’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세상은 세월 속에서 이렇게 유장(悠長)하게 흘러간다. 때론 급하게 때론 한없이 지루하게.

 

덧) 이 글에 대해 [‘미망인’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소멸된 것은 아닙니다. 미망인이라는 용어를 쓰지 말자고 90년대 후반 경북대학교 한문학과에서 대대적으로 캠페인을 하고 학술대회를 열어 사회에 알리고 언론기관에 협조를 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후 급속하게 사라진 용어라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반박도 제기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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