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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주진
-요즘 세상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디있느냐고? 현실 제대로 직시 못한 ‘대단한 착오’
-보수 정당일수록 빈곤 타파 내걸어야. 기회의 평등 및 재정 효율론의 정당화 효과
-선진국일수록 빈곤 타파는 중요. 저개발 국가는 국가 체제의 정비 등이 우선순위
빈곤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사회적 문제다. ‘요즘 세상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디있느냐’라고 말한다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대단한 착오’다.
2020년 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결식 아동 숫자가 30만에 육박한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숫자까지 포함한다면 그 규모는 우리 예상을 초월한다. 여기에 극빈에 시달리는 독거노인 등을 합치면, 여전히 빈곤층은 우리 주변에 실재하는 이웃이며 같은 국민들이다.
절대적 빈곤만큼이나 상대적 빈곤이 미치는 정신적 폐해와 절망감도 분명히 빈곤 타파의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 스마트폰 사용이 불가능해 정상적인 통신과 교류가 불가능한 이가 있다면, 이들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밥을 굶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는 극빈층이다.

절대적 빈곤만큼이나 상대적 빈곤이 미치는 정신적 폐해와 절망감도 분명히 빈곤 타파의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
보수 정당일수록 빈곤 타파를 더 전면에 내걸어야 하는 것은, 그것이 보수가 생각하는 ‘기회의 평등’의 가치에 가장 부합하면서 국가 재정을 가장 필요한 곳부터 투입해야 한다는 효율론을 정당화해주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적인 보편적 복지가 빈곤 타파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점도 중요한 논제다. 표를 수집하기 위한 용도의 ‘퍼주기 복지’는 막대한 재정을 필요로 하는데, 그 과정에서 빈곤층에 집중돼 있던 복지 재정이 다른 곳으로 전용되고, 그 결과 빈곤층 복지가 위축되는 결과는 이미 여러 차례를 통해 입증됐다.
그런 의미에서 빈곤 타파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좌파적 포퓰리즘에 대항하는 중요한 정치적 해법이 될 수 있다. 극빈층부터 돕자는 구호보다 더 정의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선진국일수록 빈곤 타파는 중요한 의제다. 저개발 국가에서 빈곤은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며, 사실 이런 나라에서는 빈곤 타파보다도 먼저 국가 체제의 재정비와 정치와 시장의 정상화부터 필요하다.
정부와 시장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구조적 모순과 태생적 환경에 따라 절대 빈곤에 노출되는 이들을 구제하는 것이 엄밀한 의미의 빈곤 타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빈곤, 전혀 낯설지 않고 낯설어서도 안 될 주제다. 빈곤 타파는 여전히 유효한 우리의 시급한 국정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