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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아재
-교복 독점공급에 의한 불합리한 가격구조 입증했으나 학교측 압력으로 조사 중단. 전교조 교사들은 침묵
-두발자유화 선언 주도하고 직접 발표한 부회장이 직을 박탈당하고 정학. 전교조 네임드는 뭐하고 있었나
-교지 내용 두고 학교측 대폭 변경 요구. 편집위원 총사퇴 후 졸업식에서 <닫힌 교문을 열며> 연출했지만

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의 한 장면.
혁명에 대한 희망으로 시작했지만 고교 시절부터 군대 가기 전까지 대학 시절은 내가 주류 좌파에 실망해 완전히 결별하는 시기였다.
우리 학교는 앞서 말한 대로 소위 ‘민주적’ 분위기의 학교였던 만큼 몇 번의 ‘민주화’ 사건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다시 학교 계급론으로 회귀하며 모 교사로 대표되는 전교조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사건은 지난번에 언급한 교복가격 담합 조사 사건이었다. 당시 내가 직접 참가하지는 않았으나 친형제 중에 학생회 임원이 있어 이 사안을 옆에서 지켜봤다. 학생회 임원들은 적극적으로 시장조사를 해서 결국 독점 공급에 의한 불합리한 가격구조를 입증해냈으나, 조사는 돌연 중단됐다. 당연한 얘기지만, 학교의 압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그토록 민주적이고 학교에 저항해왔던 걸 자랑하던 전교조 교사들은 모두 침묵했다. 오히려 부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이후 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두발 자유화 선언’이었다. 당시 학생회장은 두발 완전 자유화도 아닌 자유 확대 공약을 했다. 당시 우리 학교는 스포츠가 규정이었다. 지침은 윗머리 1cm, 옆머리·뒷머리 바리깡. 공약은 이를 펌·염색 금지, 길이는 귀밑 3cm까지 풀겠다는 것이었다. 민주화와 인권 확대의 물결을 타고 공약은 큰 호응을 얻고 그 선배는 당선이 됐다.
문제는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으려면 규정 개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교 측에서는 당연히 받아주지 않았고, 이윽고 사건은 발생했다. 긴급 학생 대표자 회의가 열렸다. 아마도 학생회 임원만으로는 힘이 실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는지 각 동아리 회장까지 참여해서 구성된 회의였다. 회의에서는 공약 실현을 전격 강행하기로 결의했다.
그리고 학생회 핵심 간부들이 방송실을 점거하고, 두발 규정의 개정을 선포해버렸다. 적법한 절차? 당시 민주뽕을 맞은 우리 사회에 그딴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1987년 그 시절부터 민주화를 잘못 배웠다. 그렇게 다수가 결정해서 점거하고 강행하면 그게 민주적이라는 지금의 민중민주주의 혹은 인민민주주의, 광장민주주의로 부르는 오도된 민주주의는 그 시절 386의 성과를 보고 자란 297 세대에게 이미 자리잡혀 있었던 것이다.
물론, 불행하게도 당시는 지금과 같은 세상이 아니었다. 선언 후 설명을 이어가고 있는 데 “야 이 X끼야 나와”라는 고성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고. 결국 점거하고 있던 방송실 문을 부수고 학생부장이 들어가 학생회 간부들을 끌어냈다.
후속조치로 선언을 주도하고 직접 발표한 부회장이 직을 박탈당하고 정학이었던가를 당했다. 그리고 나머지 주도자 몇 명이 근신을 받았다. 두발 자유화는 없던 일이 되었다. 교장을 쫓아냈다고 자랑하던 교사, 전교조 네임드라고 자랑하던 교사, 학생인권을 말하던 교사… 그 누구도 학생 편이 되지 않았다. 그 중에는 당연히 부역자들까지 있었다.
‘아무리 의식 있는 척해도 역시 교사들은 결국에는 지배세력으로 군림한다’는 인식이 더 굳어지던 차에 또 한 번 사건이 일어났다.
해마다 스승의 날에 담임하는 학급에서 돈을 걷어 양복을 마련하던 교새((교사+X새)가 있었다. 유독 그 해 담임하던 학급의 학부모들 형편이 어려워 양복 상납이 늦어지자 교새가 애들을 닦달하기 시작했고 결국 참다못한 학생들 중 누군가 학교에 대자보를 붙여 사안을 폭로했다. 물론 또 당연한 얘기지만 쥐뿔 민주적 전교조 교사들이었다. 대자보는 뜯겼고 범인 색출을 위해 전교생이 교실에 갇혀 심문을 당했다. 다행히 학부모 문제 제기로 담임은 교체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니 정부와 같은 꼴이다. 입에 민주 달고 사는 것들이 결국 자기가 가진 권력과 이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딴 거 없다’ 하는 게 말이다. 아니, 오히려 다른 자들보다 더 비민주적 행위를 적극적으로 할 수도 있다. 달빛기사단들은 아직 못 깨닫지만.
아무튼, 대미는 졸업할 때 즈음이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졸업학년에 교지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교지 편집위원들이 최종편집을 마친 상태에서 인쇄 들어가기 직전에 학교 측에서 내용의 대폭적인 변경을 요구하면서 편집권 논쟁이 시작됐다. 결국 편집위원들은 전원사퇴를 하고 학교측에서 완전히 새로 편집한 교지가 나왔다.
편집위원들은 졸업식 날에 동급생들이 받아든 교지를 전량 회수해 교문 앞에 뿌렸다. 마침 그 날 비도 조금 왔다. 동세대들은 이게 무슨 장면인지 알 것이다. 당시 편집위원 다수가, 아니 소위 민주화뽕을 맞은 청소년들 다수가 본 영화가 있다. 바로 <닫힌 교문을 열며>라는 영화다. 전교조들이 열심히도 틀어댔고 언론에서도 띄웠으니까. 전교조가 주인공인 영화니까. 그 영화의 클라이막스 장면을 흉내낸 것이다.
물론 그 영화에서는 히어로가 되는 교사가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없었다. 사실 교사까지 있는 장면을 생각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나는 편집위원이 아니었지만 학교의 부당한 압제에 여러 번 대항해온 전력도 있고, 진보적 친구들과도 친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논의했다. 진보적 교사들의 도움을 받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전교조 영화가 모티프였으니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당연했다. 전교조의 영웅 모 교사에게 도움을 받는 방안은 그러나 현실성이 없는 방안이었다. 그는 우리를 철저히 외면했다. 사실 그동안에도 학생 민중의 억울함은 외면해왔다. 학교에서 자기 입지를 확보하는 투쟁만 한 것이었다.
결국, 이 마지막 사건은 급히 교사들이 뿌려진 교지를 수거하며 끝을 맺었다. 비는 영화처럼 장대비가 내리지 않고 곧 그쳤다. 그렇게 나의 교문은 닫혔다.
<이어서 읽기>
어느 고첩 이야기#1 주체적 의식화
어느 고첩 이야기#2 순수의 시대(1)
어느 고첩 이야기#4 의심의 씨앗
어느 고첩 이야기#5 실패한 혁명
어느 고첩 이야기#10 Mein kleiner Kampf
어느 고첩 이야기#17 진실은 침몰한다(2)
어느 고첩 이야기#18 진실은 침몰한다(3)
어느 고첩 이야기#19 진실은 침몰한다(4)
어느 고첩 이야기#20 그 해 8월(1)
어느 고첩 이야기#21 그 해 8월(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