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gen, 거기에서 대답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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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미

 

-덴마크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오른 주인공을 설정으로 그린 정치 드라마 <Borgen>

-힐러리와 달리, 여주인공은 대학 교수인 남편 외조를 받으며 정치 일선에서 활약 

-가정 희생에도 좋아서 정치판에서 못 나오는 주인공에게서 진짜 정치인 모습 봐

 

 

10년 전 덴마크에서 어마무시 인기몰이를 한 드라마 <Borgen>을 페친 추천으로 찾아서 봤다.

 

중도 진보 정도의 스탠스를 가진 정당의 당수로서 덴마크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오른 주인공을 설정으로 한 정치 드라마다. 여기서 보르젠(성, castle)은 덴마크 입법 사법 행정부가 밀집해 있는 크리스티안보르를 지칭한다.

 

여주인공 비르기테는 북유럽판 힐러리라고나 할까. 초절정 엘리트 부부를 이루어 살고 있는 둘의 정치적 입지는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성격과 토양이 다른 사람을 빚었다.

 

먼저 그녀가 놀던 정치판은 미국과 전혀 다르다. 양당 체제인 미국의 승자 독식의 치열함은 다당제 연립 정부 권력 분점제 하에서 독기가 한물 빠졌다. 그래서 힐러리와는 달리 비르기테에게는 일인자가 될 기회가 빠르게 왔다. 북유럽은 여성의 사회 정치적 지위와 남녀평등적 분위기가 미국보다 월등하게 높은 곳이다.

 

힐러리는 클린턴보다 더 정치적 능력과 야심이 뛰어났음에도 먼저 남편을 위한 선거 운동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비르기테는 대학 교수인 남편의 외조를 받으며 정치 일선에서 활약한다.

 

파벨 타타르니코프가 그린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삽화. 기사의 운명을 타고났지만 투구를 벗은 그의 얼굴은 수도사나 음유 시인의 얼굴이다.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은 전쟁이다.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다.”ㅡ드라마에 인용된 모택동 어록)

그리고 적어도 초반에 보이는 비르기테는 딱딱하게 굳은 힐러리와 달리 유연하고 포용적이고 소탈하다.

 

힐러리도 아마 대학 시절에는 그렇게 정형화된 권력의 화신 이미지는 아니었을 게다. 정치판에서 뜻하지 않게 주연이 아닌 클린턴의 배우자역을 맡기 전까지는 덜 그랬을 게다. 남편이 권력에 중독되어 성 추문을 달고 살아도 권력을 위해 입을 다물고 오히려 옹호해야만 하는 세월이 없었다면 힐러리는 브리기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총리로 사는 세월이 일 년, 이 년 쌓여 갈수록 비르기테 얼굴에서 점점 힐러리가 득세한 것처럼.

 

비르기테의 남편 필리퍼는 그야말로 모든 여자들이 꿈꾸는 남편감의 정화라고나 할까. 굉장히 가정적이고 온화한 사람인데, 깊은 내면 세계에다 유머 감각까지 장착했다. 경제학 교수로서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나온 식견으로 아내의 정치적 문제에 통찰력 있는 조언을 해 주곤 한다.

 

십대의 딸과 여덟 살짜리 아이 둘을 키우는데, 아빠로서 알뜰살뜰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런 남편도 서서히 지쳐 간다. 아내는 집안에서도 서서히 총리가 되어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퇴근 시간이 늦더니 그 다음에는 국정을 잠자리까지 가져오고 가정사의 모든 문제는 들여다 볼 시간이 없다. 급박한 국정에 비해 가정사는 소소한 것이 분명하지만, 그 소소한 가정사에는 막내아들의 오줌싸개 증상, 딸의 일탈이 숨어 자라고 있다.

 

남편은 사태를 돌이키려 애간장을 태우지만, 이제 대화는 불가능하다. 총리인 아내는 이제 가정 문제도 각료회의처럼 주재하고, 서둘러 결론을 내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는 곁에 있는 아내를 그리워하지만 아내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여기까지였다. 더 이상은 드라마를 못 보겠더라.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가진 의문은 이것이었다. 비르기테는 왜 정치를 하는가? 왜 이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정치를 해야만 하는가? 왜 사랑하는 아이들을 망치고 남편을 극한의 외로움에 밀어넣으면서도 계속 총리직을 거머쥐고 있어야만 하는가?

 

대개 드라마의 설정 구도가 파악되는 2,3회분을 지나면 급격히 재미가 없어져 텔레비전을 끄게 된다. 주인공의 삶에 밀착 동화되거나 따뜻한 감성을 유지하거나 화두를 제시해 줄 때 계속 보게 되는데, 이번에는 바로 이 의문이 계속 드라마를 보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10회가 다 되어가도록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답을 주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이누이트족과의 민족 갈등, 미국과의 외교 문제, 이라크전 참전 문제 등 덴마크 나름의 문제가 제기되고, 총리는 해법에 골몰하지만 꼭 비르기트 총리가 해야만 할 이유는 없었다. 덴마크인들에게는 새로운 정치가 열리는 신선함을 줄 수도 있었겠지만, 문재인 정부를 겪은 내 눈에는 그닥 새롭지도 썩 바람직하지도 않았다.

 

비르기테는 왜 정치를 하는가?

드라마 세상을 빠져나온 이제야 내 의문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치에 뛰어들어야만 하는 급박한 대의명분을 찾는다면 그런 건 없다. 독립운동 지사와 같은 거역하지 못할 부름을 찾는다면 그런 건 없다.

그냥 좋아서 하는 것이다. 비르기테는 그 모든 희생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좋아서 정치판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권력이 자기 삶에 의미를 주기 때문에 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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