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와 페미니즘#6. PC는 왜 틀렸는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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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현규

 

-현실은 경제적 능력 차이만 존재할 뿐, 누구나 동등한 권리 누리며 차별 안 받아

-사회는 복잡해서 자신이 약자라고 지원받으면 또다른 약자가 피해를 볼 수 있어

-지향하는 방향이 다른 두 그룹에 평등을 추구하려면 강제로 똑같게 만들 수밖에

 

 

5. PC주의는 왜 틀렸는가?(1)

현실은 자본주의에 입각한 경제적인 능력의 차이가 존재할 뿐, 모든 사람은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차별받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외국인이라고 청구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만 있어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굳이 차별이라고 한다면 군대에 가는 남자들 정도가 제도에 의한 차별을 받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대부분, 아니 모든 PC 추종자들은 가시적인 제도적인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 추상적인 부분, 즉 인식을 지적하고 본인들이 혜택받고 싶은 부분을 차별받고 있는 부분으로 교묘히 바꾸거나 성범죄 등 극히 특수한 사례를 일반화해서 소위 ‘해 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차별이라는 것도 애매합니다. 차별을 애초에 말할 것 같았으면 꼭 인종이나 성별이 아니더라도 외모로 인해 차별당하는 것, 경제적 수준으로 인해 차별당하는 것 등등 끝도 없습니다.

 

더구나 차별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해당 집단만 생각한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여성 인권만 생각하면 육아나 출산에서 여성이 피해 입는다고 호소하면 길러질 아이들이나 뱃속에 있는 태아의 인권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여성보다 힘이 더 약한 사람이 바로 아이들입니다.

 

인권은 가장 약한 자를 위해 생겨난 말이 아니라, 목소리 큰 무리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생겨난 말입니다. 정작 이렇게 가장 주시해야 될 최약자의 인권은 말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항상 침해당하지 않습니까? 평등을 원하는 사람들이 본인부터 평등을 지키고 있지 않으니 이 얼마나 모순되는 행동입니까? 이들은 평등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일 뿐입니다.

 

철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하자면 이타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내가 죽으면 나의 세계도 끝이기 때문에 자기희생적으로 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등을 논한다? 평등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을 매개로 이용해 단지 자기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평등을 함부로 논할 수 없다는 거죠. 더군다나 사회는 복잡해서 자기 자신이 약자라고 생각해서 지원을 받으면 또 다른 약자가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외모나 경제적 수준으로 차별당한 것을 논한다면 원래 세상은 평등하지 않은 법인데, 이를 정치적인 제도로 어떻게 바꾸고 어떻게 제재한단 말입니까? 사람들의 뇌 속으로 들어가 의식이라도 조종해서 인식을 바꾸겠다는 말입니까?

인간의 본성에는 선한 것도 있고 악한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본성 그 자체를 부정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공산주의적인 경제적인 평등을 넘어서 이젠 의식적인 평등까지 강제적으로 실행하겠다는 겁니까? 도대체 사람들의 어디까지 제한을 두고 규제를 할 생각인 겁니까?

 

예를 들어, 외모로 인한 차별을 금지시킨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제 더 이상 외모로 차별하지 못하니 외모가 좋은 모델들을 뽑지 못합니다. 아니, 하다 못해 알바생만 하더라도 외모가 좋은 알바생을 뽑으면 매출이 올라가니 외모 좋은 알바생을 뽑는 추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평등을 주장하니 회사 입장에서 더 많은 매출을 위한 선택의 자율성이 침해되는 것이고,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모를 가꾸지 않아도 되니 다이어트 보조제라든가 화장품 회사 등은 매출이 내려가고 심하면 파산하는 결과도 낳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소비 심리는 물론, 기업의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을 제한하여 경제를 위축시키고, 더 나아가 사람들의 호불호(외모라는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없앰으로써)까지 제한을 두는 것입니다. 이건 차별 금지라는 칼로 선량한 시민들을 찔러 죽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현실에 대한 몰지각성을 바탕으로 역차별이 발생되기 쉬운 구조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입니다. 인권이 극도로 발달되어 있는 21세기는 더 이상 차별의 시대가 아닌 역차별의 시대라는 것이 중론이고 제 생각도 그러합니다. 더 이상 페미니즘에 동조하지 않는 사회가 증거입니다.

 

애초에 완벽하게 평등한 세상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이상론에 불과합니다. 서로 지향하는 방향이 다른 두 그룹에 완벽하게 평등을 추구하려면 강제로 두 그룹을 같게 만들어야 속칭 완벽한 평등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를 잘 표현한 우화가 있습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 다음 아래로 보는 순서)

 

<연재 리스트>

출산율과 다문화, 페미니즘의 연관성#1

다문화와 페미니즘#2 외국인 유입 정책

다문화와 페미니즘#3 다문화 정책의 부작용(1)

다문화와 페미니즘#4 다문화 정책의 부작용(2)

PC주의와 다문화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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