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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40%대 지지 대통령-집권당이 국정 운영 독점하는 다수 지배 체제는 갈등만 심화
-협의주의 이룬 시기에 더 많은 변화와 개혁 이뤄. 연합 정치는 현대 민주주의 상수
-교육받은 중산층이 다수 이루는 한국 사회에서는 이념적 극단에 대한 거부감 강해
6) 연합의 정치를 실천해야 한다
다수주의가 과연 한국 정치와 한국 사회에서 더 크고 넓은 개혁을 가져올까, 아니면 더 큰 분열과 적대를 가져올까? 답은 후자이다. 40%대 초반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과 집권 당이 국정 운영을 독점하고 국회를 일방적으로 이끄는 다수 지배 체제는 해결할 수 없는 갈등만 심화시킨다.
다수 지배 정치가 더 많은 개혁을 이뤄냈을까? 그것도 아니다. 협의주의 정치가 이루어진 시기에 더 많은 변화와 개혁이 이루어졌다. 민주화 이행기의 법-제도 개혁을 마무리한 13대 국회의 4당 체제나 대통령 탄핵을 안정적으로 이끈 20대 국회의 3.5당 체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오히려 과반수 1당이 다수주의를 밀어부친 18대와 21대 국회에서 정치는 물론 사회 분열은 더 심각했다.
연합 정치, 연합 정부는 현대 민주주의의 상수라 할 수 있다. 대통령제에서 연정은 안 맞다? 전혀 그렇지 않다. 대통령제에서도 연립 정부의 빈도는 단독 정부의 빈도보다 많다. 연정의 결과도 나쁘지 않다. 표현의 자유와 정부의 책임성, 정책의 효율성, 법의 지배 등에 있어서 연정의 사례는 단독 정부보다 통치 효과가 나은 것으로 나타난다.
1996년부터 2009년 사이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63개 민주주의 국가를 분석한 결과, 소수 여당의 출현 빈도는 442번이었고, 그 가운데 연립 정부 구성의 사례는 전체의 56.6%인 250번이나 있었다.
조사 대상의 사례에서 연정의 긍정적인 효과는 뚜렷하게 나타났다. 예컨대 표현의 자유와 책임성, 정부 효율성, 법의 지배 등에서 연정의 사례는 과반 여당의 단독 정부보다 통치 효과가 나은 것으로 나온다(홍제우, 김형철, 조성대, 2012, “대통령제와 연립 정부: 제도적 한계의 제도적 해결” <한국정치학회보>, 46집, 1호).

DJP 연합 하에서 6.15 남북 정상 회담을 하고 기초 생활 보장제를 포함해 사회 복지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중시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시도 또한 재평가되어야 한다.
최근의 연구 역시 대통령제 하에서 단일 정부보다 연립 정부가 ‘행정부 견제’ 기능과 ‘정부 위기’ 대응 능력이 더 우월한 것으로 조사되었다(안용흔, 2018, “대통령제에서의 다수정부, 소수정부 및 연립정부의 정치·경제적 수행력 연구,” 국회 운영위원회 정책연구 용역과제).
연정은 다원주의 정치를 좀더 적극적으로 제도화하는 길을 열어 준다. “정당 간 경쟁과 연합의 제도화”라는, 민주주의 본래의 정의에 가깝게 정부를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합을 야합으로 보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우리 현실에 맞는 한국형 연합 정치를 구현하는 것이 과제일 뿐, 연정을 유럽의 내각제에서나 가능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DJP 연합 하에서 6.15 남북 정상 회담을 하고 기초 생활 보장제를 포함해 사회 복지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중시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시도 또한 재평가되어야 한다. 이런 전통으로부터 벗어나, 박근혜, 문재인 행정부 하에서 적폐 청산 정책을 기점으로 퇴행적 정치 갈등이 재등장하고 대결적 정치 동원이 심화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7) 양극화 정치는 다수가 원하는 길이 아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특징은 민주적 한계선을 넘는 시도에 대해서는 불관용적이라는 데 있다. 크게 보면 양극화 정치 세력은 물론, 이를 지지하는 시민은 다수가 아니다. 한국 사회는 교육받은 중산층이 절대 다수를 이루는 사회이고, 이념적 극단에 대한 거부감도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다수 시민은 여야가 함께 정치를 운영하는 공동의 파트너십이 유지되는 정치를 바란다.
양극화 정치는 강렬한 열정을 동반하기에 대세인 것처럼 보일 뿐, 성공하기도 어렵다. 일당 중심의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오로지 복수 정당 사이에서 합의의 공간을 넓혀가는 정치만이 사회 통합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 지난 경험으로부터 이런 지혜를 얻지 못한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는 밝을 수 없다.
흔히 ‘협치(協治)’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이를 여야 관계에 맥락 없이 확대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협치는 중국어 사전에도 없고, 한국어 사전에도 없던 일본말에서 온 개념일 뿐이다. 2000년 1월 당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자문 그룹의 보고서(「21세기 일본의 구상」)에서 ‘거버넌스(governance)’의 일본어 번역어로 처음 등장했다.
게다가 그 뜻은 여야 간 협력을 의미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그동안 일본 사회의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국가와 공(公) 중심 체제를 개선하고 “진정한 개인의 확립”을 지향하는 사회 운영 원리로 제시된 것이었다. 여야 협력을 뜻하는 게 아니라, 국가와 국민 관계를 새롭게 하자는 의미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개념을 가져와 야당에 협치를 강박하는 것은 억지다. 한자 협(協)과 치(治)의 뜻 그대로 이해하고 여야 간 협력하는 정치를 하자는 것이라면, 의회 정치와 정당 정치 본래의 개념인 정당 연합, 정책 연합, 연립 정부 등 제대로 된 개념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연재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