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세종대왕을 평가하는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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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Lee

 

-시대에 따른 정의와 도덕은 항상 변해 왔고, 어느 것도 절대적이지 않았을 따름

-박정희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그를 어느 시대에 편입시킬지 판단이 다르기 때문

-역사가 오늘날 유의미하려면 교훈으로 지금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결론 확실해야

 

 

1. 선녀와 나무꾼은 성폭행 동화인가

 

선녀와 나무꾼이 성폭행 동화라는 해석은 진작부터 내심 동의하고 있었다. 다만 시대에 따른 정의와 도덕은 항상 변해 왔고 어느 것도 절대적이지 않았을 따름이다.

 

헤로도토스 시절에도 피라미드는 이미 고대 유적이자 관광지였다. 고조선인이 통일 신라와 대한민국을 한데 묶어 근대라고 퉁치면 동의할 수 없듯이, 클레오파트라에게 의견을 묻는다면 쿠푸 왕보다 현대인들에게 시간적으로 더 가깝고 친근함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서 한국 근현대사와 현대 정치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이 일어나는 관점의 차이이자 가치관인 박정희를 해석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세종도 현대 기준으로는 독재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은 세종을 현대식 기준으로 평가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동의한다.

 

한편 박정희는 미개한 조선에서 선진 도상국 대한민국으로 넘어가는 바로 그 과도기에 위치한다. 아무리 좋은 정치를 펴더라도 2018년에 독재적 방식을 추구하는 정치가를 인정할 국민은 거의 없다. 그러나 박정희가 근대 국가의 마지막 다크나이트로서 독재 국가의 잠재력을 모두 사용한 마지막 왕이냐, 현대 민주 국가에서 단지 부수적인 프리퀄일 뿐인 악당 대통령이냐의 관점이 근본적 차이이지 않을까?

 

물론 객관적 관점에서 실질적으로는 원시적이지만 형식적으로는 온전한 민주 정권이 직전에 존재하기는 했으므로, 그 의미를 어디까지 두느냐의 해석차는 개인의 몫이다.

 

개인적으로 박정희의 공은 인정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한번 사용하면 다시 사용할 일이 없어서 사라져야 하는 RPG 게임의 열쇠가 저절로 소멸되지 않고 아직도 인벤토리 한 칸에서 맥거핀으로 남아 진행을 방해하는 느낌이긴 하다. 전자식 자물쇠 앞에서 터치를 해 볼 생각조차 막는 구식 열쇠 말이다.

 

 

존 코너를 살려낸 후 자신을 용광로에 녹여버린 터미네이터를 본받았으면 한다. 인류를 구한 T-800을 기린다며 전시관에 모신다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다.

 

2. 남한산성 공방전 – 진짜 우파 가리기

 

조선사에서 가장 흑역사 하나만을 고르라면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킨다고 청나라와 맞섰다가 임금이 직접 머리를 조아려야 했던 삼전도의 굴욕을 꼽겠다. 조선 왕조를 지키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던 노비도 이해가 안 가긴 매한가지다. 물론 현대 사회와 가치가 다른 수백 년 전 사건 당시의 선택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겠지만, 현대인들이 그것을 충(忠)이라며 귀감으로 삼을 필요가 있을까?

 

역사상 최고 성군이라는 세종대왕조차도 인권 측면에서는 노비에게 출산 휴가를 보장하는 완보에 그쳤다. 그것은 당시에 파격적인 진보 정책이었지만 오늘날 기준에서는 “노예를 너무 매질하지 말라”라는 정도로 신분제의 근본적인 틀을 깨지 못한 타협이기도 하다. 또한 세종대왕은 왕정 독재를 포기하지 않았다. 마치 오늘날 문재인 정권이 그러고 있듯, 백성을 상대로 여론 조사를 했던 대단한 사람이긴 하지만 결국 최종 결정은 자기 판단대로 한 독재자다. 그러나 오늘날 세종대왕을 그런 측면에서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세종대왕은 명실공히 근대 이전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는, 박정희를 어느 시대에 편입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박정희를 근대의 마지막 사람으로 설정하는 이는 박정희를 수단적 독재를 통해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지고 리타이어한 인물로 평가한다. 경제가 살아야 비로소 현대가 되는 법이다. 한반도를 역사상 가장 잘 살게 만든 이를 독재 따위로 평가 절하하는 것은 세종대왕을 독재자라며 폄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떻게 그렇게 ‘시대적 상황’을 모르나?

 

반면 박정희를 현대 첫 시기 인물이자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근대 방식으로 이끌어 가려고 했던 인물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에게는, 그는 문재인과 마찬가지의 독재자일 뿐이다. 처음 절차가 부당했는데 그후의 업적은 좋든 싫든 모두 무효다. 어떻게 그렇게 ‘요즘 시대’에 그럴 수 있나?

 

젓가락질 방법과 문신은 어떤 사람에 대해 상당히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리트머스지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기업에서 문신 여부를 최우선적으로 보거나 젓가락질 시험을 점수에 넣는다면 그만한 희극도 따로 없다. 마찬가지로 이승만이나 박정희 그리고 박근혜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의 정치관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리트머스지라고 본다. 그런데 이승만 국부론이나 박정희 개새끼론을 사상 검증하듯 하는 시도에 부작용을 감수할 만한 효용이 있을까?

 

나는 이미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흥하여 실질적으로 맞설 수 없는 현실 상황에서 명나라와의 의리를 따지는 일이 아주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명나라에 대한 충성을 지키려는 ‘이상’조차 한심한데, 그것을 현실로 가져 오려다가 조선 대통령이 원산 폭격을 했던 ‘방법론’은 더 구렸다. 그래서 명나라를 마음속으로라도 지키는 데 성공했냐는 말이다.

 

이승만 박정희 노무현의 공과가 어떠하든 그들은 이미 죽었다. 남은 것은 그들의 뜻을 계승한다고 ‘주장하는’ 적장자들과, 순장당하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노비들뿐이다. 박정희가 정말 대단한 인물이라는 말을 수용한다면, 그것을 현대 사회에 교훈으로 가져 와 문재인이 폭정을 할 경우 다시 한 번 ‘구국의 결단’을 일으키자는 논지인가?

 

반면에 박정희가 현대의 가장 뒤떨어진 인물이라고 결론을 낸다면, 이제 와서 그를 무덤에서 다시 파내어 심장(위치였던 것)에 은 탄환이라도 박아 넣자는 말인가? 대체 그들의 사당을 꾸미고 비석을 닦는 일이 오늘날 대체 얼마나 큰 이득이 있길래 성묘 문제로 싸워야 한단 말인가? 제사는 제발 이 씨 박 씨 노 씨 집안사람들끼리 알아서 하란 말이다. 피지배 계층들은 그들 제사 놀음에 휘둘리지 말길 바란다. 어차피 왕조가 변하지 않는다면 기왕에 성군을 세워야 한다는 실용론이 노비 혁명의 한계다.

 

광해군은 폐위된 후 위리안치되어 18년간이나 더 살았다. 그 시절이 현재형이었으면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 복위될 수도 있다고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광해군이 폐위된 후 역사에 남긴 흔적은 없다. 물론 그도 그 당시의 ‘재판’에 억울한 점은 있었겠지만 재판은 원인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든 폐위되는 과정에 불과했다. 왕으로서 정치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권력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그는 쫓겨난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억울함’을 논하는 재심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잎사귀에 꿀만 발라놓아도 수십 명의 목이 날아가는 시대였다.

 

박근혜가 고령의 우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안다. 노무현이 생물학적으로는 사망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우리 가슴속에 살아 계시듯, 박근혜는 법적으로는 폐위되었지만 정치적 그리고 심지어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는 교주기도 하다. 그리고 박근혜가 쫓겨나는 과정에서 합리적인 절차보다 의심이 근거가 되는 불합리한 절차들 역시 있었다.

 

그러니 종중 어르신들께서는 그녀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대통령은 재판으로 따먹는 왕좌가 아니다. 그녀는 정치 게임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졌다. 그 정도 위치에서는 권력 위에서 잠자는 것조차 목숨이 날아갈 정도의 죄가 된다.

 

이승만 박정희 노무현에 대한 태도가 정치 성향을 짐작하게 하듯, 박근혜를 모시는 태도가 충성심의 리트머스지가 된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다면 물려받을 게 있는 종갓집 장손 정도는 되어야 합당하다. 솔직히 그녀 말고도 재판에서 억울하게 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어르신들 역시 그런 사례에는 딱히 열을 내지 않잖은가. 죄인 광해군이 받았던 관심이 딱 그 정도였다.

 

정말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죽어서라도 지키고 싶다면 겉으론 조아리고 뒤로 군사를 모으든가. 누가 봐도 괘씸하도록 어깃장을 놓다가 결국 고개를 땅바닥에 박아 보고서야 ‘격차’를 인정하는 게 이상이라면 말리지 않겠다.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끌려간 여자들에게 단풍 아니 화냥기를 드러낸다며 탄압했던 것까지는 말려야겠다. 어찌 됐든 같은 배를 탔다는 원죄가 있으니.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가 있으려면, 그래서 그 교훈을 토대로 오늘날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결론이 확실해야 한다. 존 코너를 살려낸 후 스카이넷 칩이 들어가 있는 자신을 용광로에 스스로 녹여버린 터미네이터를 본받았으면 한다. 인류를 구한 T-800을 기린다며 전시관에 모신다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다. T-800을 신으로 모시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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