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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영국 보수당, “친노조가 나라 망쳤다”며 ‘노조의 권리-의무 균형’을 제1강령 내걸어
-대처 수상 “프클랜드 전쟁보다 노조와의 전쟁이 영국을 더 괴롭히고 자유 위협한다”
-노동 개혁, 공공·교육·복지 개혁과 연계한 나라는 성공. ‘노동법 개혁’ 접근은 실패
“누가 영국을 지배하나?(Who governs Britain?)”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1970년대 초반 영국은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노조의 힘이 막강했다. 하지만 과도한 임금인상 때문에 인플레이션과 고실업에 직면한 영국 정부는 공공부문의 임금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임금인상 상한제를 도입했다. 그러자 탄광노조가 반발해 준법투쟁을 벌였고 전기 공급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산업체를 일주일에 3일만 가동하게 했다.
파업이 빈발하고 노동운동이 호전적인 이유가 노동당의 친노조 정책에 있다는 인식이 커졌다. 노동당의 비호를 받는 노조 때문에 노동시장이 경직적이고 고실업 문제가 발생했다는데 공감대가 쌓였다. 노조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1970년대 말 노동당은 총선에서 참패했다.
보수당은 친노조 정책이 나라를 망쳤다면서 제 1 강령으로 ‘노조의 권리와 의무의 균형’을 내걸었고, 이를 개혁의 첫 번째 과제로 삼았다. 또 선거에서 “노동이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Labor Is Not Working!)는 슬로건으로 노동계와 손잡고 있는 노동당을 공략했고, 결과는 ‘추운 겨울’이라고 말이 나올 정도로 보수당의 대승으로 끝났다.
대처 수상의 노동 개혁은 고실업과 저고용의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영국 경제를 마비시킨 1984-1985년 탄광노조 파업에 대해 “프클랜드에서 아르헨티나와의 전쟁보다 노조와의 전쟁이 영국을 더 괴롭히고 자유를 위협한다”고 맞섰다. 영국의 노동 개혁은 영국뿐 아니라 유럽의 정치경제 이념 지도까지 바꾸었다.
영국은 노조의 권리와 의무의 균형이라는 보수당 강령하에 1980년 고용법 개정에서 시작해 1993년 노조법과 고용법의 개정에 이르기까지 6차례 노동법을 개정했다. 법 개정의 내용은 미국의 노사관계법과 비슷해 노조의 파업권 남용을 막고, 노조 내부 민주주의를 확립하며, 노조가 공공의 이익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지속적인 노동 개혁 덕분에 영국의 노동당은 제3의 길로 전향했고, 1990년대 들어와 노사분규의 손실은 1970년대에 비해 5%로 어머어마하게 감소했으며, 노동시장이 유연해지면서 실업률도 대폭 감소했다.
“복지정책이 복지를 망친다.”
복지국가의 전형인 스웨덴은 1992년 복지와 노동개혁의 성공으로 주목을 받았다. 스웨덴은 산업화와 수출로 빈곤에서 탈출해 최선진국이 되었으나 전면적 무상복지로 성장이 후퇴했다. 공공부문의 고용 확대에도 불구하고 공식 실업률이 9%로 증가했고, 경제 침체를 막는다고 늘린 정부지출이 국민소득의 70%로 늘면서, 재정적자는 GDP의 12%로 치솟았다.

대처 수상은 1984-1985년 탄광노조 파업에 대해 “프클랜드 전쟁보다 노조와의 전쟁이 영국을 더 괴롭히고 자유를 위협한다”고 맞섰다.
이에 스웨덴은 공공개혁으로 정부를 성과 중심 조직으로 바꾸었고, 정부 중심 복지는 시장 중심 복지로 개혁했다. 복지 서비스 제공의 국가 독점을 깨뜨리고 복지에 민간 기업이 참여해 복지의 효율성을 높이고, 복지를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복지의 형평성을 높였다. 의료와 교육에 영리 목적의 기업이 참여하고, 퇴직 연금 운영 기업도 개인이 선택하도록 했다.
실업급여중심의 전통적인 노동정책도 직업교육·훈련 및 고용안정서비스 중심의 적극적 노동정책으로 바꾸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가운데에 있던 스웨덴이 사회주의 색채를 지우고 자본주의식 모형으로 바꾸는데 미국은 물론 유럽 전체가 놀랐다. 더구나 스웨덴의 이러한 혁명적 개혁이 정치적 갈등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기에 더했다. 스웨덴의 노조가 개혁에 적극 반대하지 않았고, 스웨덴을 오래 지배한 중도좌파 사회민주당과 중도우파 정당들은 합의를 통해 개혁을 추진했고, 구체적인 개혁안은 공무원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
“현대화할 것인가 죽을 것인가?”, “시대를 앞서가지 못하면 시대에 잡아먹힌다.”
동서독 통일로 실업률이 치솟은 독일은 2003년 슈뢰더 수상이 ‘어젠다 2010’ 사회개혁을 추진했다. 핵심은 복지와 노동의 패키지 개혁을 통해 일을 통한 복지(workfare)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세계화는 선택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라며, 사회민주당이 구축했던 독일식 복지와 노동 모형을 새롭게 만들지 못한다면 140년 전통의 사회민주당에도 미래가 없다고 밀어붙였다.
슈뢰더 수상은 소속 국회의원들을 모아놓고 ‘개혁에 나서지 않으면 당신들은 재선되어서 안 된다’고 경고했다. 노동 개혁과 복지 개혁이 인기가 없었고 노동계도 반대하지만, 독일 미래를 생각해 반드시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일을 통한 복지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분배하는 보편적 복지 대신에 노동시장 참여와 복지를 연계하는 선택적 복지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여기에다 독일은 노동시장 유연화 개혁으로 취약 계층의 일할 기회를 늘리고 동시에 노동생산성도 높여 성장 잠재력을 키웠고, 이를 통해 복지 지출은 줄이고 복지를 위한 재원은 확충해, 노동과 복지의 선순환구조를 만들었다. 덕분에 독일은 10% 넘는 실업률로 ‘유럽의 병자’로 취급받다가 3%대로 떨어지면서 ‘유럽의 슈퍼스타’로 대접받았다.
노동 개혁을 공공, 교육, 복지 등의 개혁과 연계한 나라는 성공했지만, 노동법 개혁으로 접근한 나라는 성공하지 못했다. 노동 개혁만 따로 떼놓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한 나라는 찾기 힘들다. 노조의 사회적 책임도 개혁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를 확보한 나라만 강화되었다. 스웨덴과 독일이 개혁에 성공하자 MME 국가도 노동개혁에 나섰다.
노동시장에 대한 통제가 강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각한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등 남부 유럽은 ‘혁명적인’ 노동 개혁으로 침몰하는 경제를 살리는데 나섰다. 하지만 노동 개혁으로실업률은 떨어졌지만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개선되지 못했다. 마크 롱 프랑스 대통령은 ‘해고는 쉽게, 고용은 더 쉽게’로 노동 개혁을 밀어붙였다.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 “노동법이 청년 일자리를 막고 정규직의 배만 불린다”면서, “기업을 키우지 않고 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착각, 부를 창출하지 않고 부를 재분배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깨어나라”고 요구했다.
이탈리아의 렌치 총리는 정규직 채용 후 3년간 해고 금지 조항의 적용을 배제하도록, 스페인의 라호이 총리는 매출이 감소하는 기업은 노동조합과 합의가 없어도 근로조건을 변경할 수 있도록 노동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이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제고하지는 못해, 인사이더의 기득권을 줄이기보다 아웃사이더의 근로조건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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