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사 여행 5. 웅변학원 1타강사, 소피스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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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대한 후세인들 해석은 다양. 본원적 의미는 추측할뿐

-철저한 상대주의자들로 ‘객관적 인식이란 도대체 불가능하다’는 입장. 화술을 중시

웅변술도 설복 수단일 뿐. 윤리적으로 객관적인 법 존재 않고, 강자의 권리만 인정

 

 

극히 독창적인 두뇌를 가진 여러 사상가들에 의하여, 각각 다른 그리스 생활권에서 거의 동시에 갖가지 철학사상이 나타났다. 이것이 철학적 세계관으로 굳혀질 수 있었던 BC 6~5 세기는 일찌기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정신사적 절정기였다. 서양에 있어서의 모든 철학적 방향도 바로 이것을 심원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남긴 단편록에 대한 후세인들의 해석은 다양할 수밖에 없음은 물론이고, 여기에 담긴 본원적인 의미는 오직 추측으로 밖에는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또 다른 면으로 본다면 그들의 상이한 체계와 그를 서로간에 존재하는 모순이야말로 거의 불가항력적으로 더 높은 단계를 향한 철학적 발전을 유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도 있었다. 다시 말해서 갖가지 학설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면 할수록, 그만큼 또 새로운 해결 가능성도 풍부해지게 마련이며, 동시에 검증하고 비교하며 또한 모순점들을 추적해 가고자 하는 필연적 요구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와 함께 우리가 인식 수단으로서의 감각성질(이하 감성으로 표기함)의 작용을 과연 어느만치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많은 철학자들은 불신을 품고 있었다.

 

이것은 인간의 인식능력 그 자체에 대한 회의로까지 연결되어, 이것을 기화로 하여 ‘소피스트’의 활동도 개시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소피스트들과 그들의 업적을 올바르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철학이 그 당시에 처해 있던 상황 이외에도 또한 이 시기를 전후하여 그리스의 정치적 내지 사회적 생활영역에서 일어난 거대한 변혁을 필히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페르샤전쟁(BC 500-449년)을 통하여 자유를 위한 그리스인의 투쟁이 승리로 끝나자 그리스의 문화적, 정치적 중심지로 도약한 아테네는 풍요한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이제는 고도의 교양을 쌓고자 하는 욕망도 또한 팽배해지기에 이르렀다.

 

나라의 민주적 헌법은 웅변술의 가치를 높혀줌으로써 국민회의나 인민재판소에서 이제는 자기의 논지를 가장 적확하게 그리고 누구에게도 못지 않은 유창한 형식으로 공표할 수 있는 사람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출세를 꿈꾸는 시민이면 누구나, 정치가며 동시에 웅변가로서의 철저한 훈련을 쌓아야만 했다.

 

소피스트들은 방랑자처럼 이 도시, 저 도시로 떠돌아다니며 보수를 받고 갖가지의 기술이나 능력을 가르쳐 주었는데, 특히 화술을 중요하게 취급하였다.

 

바로 이와같은 시민들의 욕구에 부응할 수 있었던 것이 소피스트들이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소피스트들은 웅변학원 1타강사들이었다. ‘지혜의 스승’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의 ‘소피스타이, Sophistai’라는 말에서 소피스트라는 말이 나왔다.

 

소피스트들은 마치 방랑자와도 같이 이 도시, 저 도시로 떠돌아다니며 일정한 보수를 받고 갖가지의 기술이나 능력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화술을 중요하게 취급하였다. 이와 같이 그들은 본래의 의미에서는 철학자가 아닌 실천가였던 까닭에, 그 밖의 모든 실천가들이 그러하듯이 이들도 역시 이론적 인식에 대해서는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들 소피스트은 철저한 상대주의자들이어서, ‘객관적 인식이란 도대체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교양수준이 점증함에 따라서, 타민족과 그들의 관습 및 종교에 접할 수 있는 기회들이 주어짐으로써 그때까지만 해도 획고부동한 상태를 유지하던 선입견마저도 동요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만약 실제로 어떤 특정한 문제에 있어서 과연 어느 편이 옳은가 하는 것을 결정지을 수 있는 하등의 객관적 기준도 없다고 한다면 이제 남는 문제란 다만 어느편이 옳다고 ‘자처하는가’이다. 다시 말해서 어느 편이 더욱 재치있게 자기의 입장을 관철시킬 줄 아는가 하는 것만이 문제가 될 뿐이다.

 

그런데 일단은 이와같이 이론적 회의에 불과했던 것이 어느덧 도덕적 영역에까지 비화하면서, 이제 그들은 이론적 대결에 있어서 만이 아니라 종국에 가서는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도 역시 어느 편이 좀 더 큰 성과를 올리는가 하는 데에 모든 문제의 관건이 달려 있다고 주창하고 나섰다.

 

그리하여 소피스트적 입장에서 볼 때는 웅변술이란 것도 역시 설득이라기 보다는 한낱 설복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윤리적 측면에 있어서도 또한 그들은 일체를 규제하는 객관적인 법이란 존재하지도 않고 다만 강자의 권리만이 인정될 뿐이라고 하였다.

 

소피스트에게서 직접 전해져 오는 논증자료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므로, 부득불 우리는 앞질러, 플라톤의 대화록 속에는 수사학에 관한 다음과 같은 소피스트의 견해가 수록되어 있다;

 

“만약 우리들이 법정에서는 재판관을, 시의회에서는 시의원을, 그리고 국민의회에서는 민중을 말로 설득할 수만 있다면…

(중략)

왜냐하면 네가 그와 같은 능력을 갖고 있다면 의사도 너의 노예가 될 것이고, 체조교사도 너의 노예가 될 것이며 또한 은행가마저도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벌이를 하고 있으되, 그것도 다름아닌 화술에 능하고 군중을 설득할 줄 아는 바로 너를 위해서 행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법률과 권리에 관해서도 바로 그 동일한 소피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언제나 한 군중들이 법률이나 관습을 제정하게 마련이다. 이와같이 하여 그들은 자기들보다 더 많은 이익을 올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한 자들을 움츠러들게 하고자 하며 더 나아가서 이들 강자가 결코 그와같은 행동을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오직 자신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진다는 것은 추악하고도 의롭지 못한 행동이라고 타이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 생각으로는 평등이 보장되어야만 그들이 충분히 만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약자들이야말로 열등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바로는 열등한 자보다는 존귀한 사람이 더 많은 이익을 취하며 또한 더욱 유능한 자일수록 무능한 자보다는 더 많은 이익을 취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자연의 이치와도 합치된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실제로 우리는 인간을 비롯한 그 밖의 생명체나 혹은 모든 국가와 인종에 있어서까지도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이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 경우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예컨대 크세륵세스가 그리스를 공략할 때, 과연 그는 어떤 정당한 이유를 내세웠던가 하는 것은 이제 자명한 일이 되어 버렸다. 실로 우리는 이와같은 예를 무수히 열거할 수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바로 이와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정의의 본성에 따라서 그리고 – 아니 맹세코 – 자연의 법칙을 따라서 행동하였음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법칙이란 결코 우리가 조작해 낸 것, 즉 우리들 중의 가장 유능하고 힘이 센 사람들을 어려서 부터 손아귀에 넣고 마치 사자 길들이기라도 하듯이 이들로 하여금 평등이란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며 또한 그것만이 선하고 옳은 것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 하거나 암시해 주기 위하여 짜여진 법률은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만약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만한 힘을 지닌 사람이 출현하기만 한다면, 그는 모름지기 모든 구차스러운 것을 뿌리쳐 버리고 자기를 구속하고 있는 일체의 것을 갈기갈기 찢어던질 것이다.

 

또한 우리의 문자가 이룩해 놓은 성과나 우리를 최면상태로 몰아넣는 것 또는 암시적인 것, 그리고 이밖에도 순리에 어긋나는 일체의 법률이나 관습 등을 짓밟고 일어설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까지만 해도 우리의 노예의 위치에 있던 자가 갑자기 우리들 앞에서 고개를 들고 나서면서, 어느덧 우리의 주인이 될 것인바, 이제 그의 광채 속에서는 자연의 순리가 제대로의 구실을 하고야 말 것이다!”

 

그런데 진리와 정의에 대한 객관적 가치기준을 부인했다는 사실 이외에도 또한 이들 소피스트들은 자기들이 제공하는 학습의 대가로서 적지않은 보수를 받아왔다는 점, (그리스에서는 원래 수입을 올리기 위한 노력 제공은 옳지 못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까닭에) 그리고 다시 플라톤이 주도했던 그들에 대한 투쟁의 결과로서 이들은 결국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어딘지 탐탁치 못한 뒷맛을 남기는 ‘소피스트’라는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연재 리스트>

1. 철학의 탄생 2. 밀레토스 학파와 피타고라스
3. 엘레아 학파 4. 헤라클레이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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