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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노조의 사회적 책임은 노조 활동으로 영향 미치거나 영향 받는 개인·집단에 대한 책임
-‘투명하고 윤리적인 행동으로 사회와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과 활동에 대한 책임’
-레이건, 공공·교육개혁으로 노조의 사회적 책임 강화하는 정치·경제·사회 분위기 조성
2. 노조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 개혁의 관계
노조의 사회적 책임은 경제사회발전은 물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노조의 사회적 책임은 노조의 활동으로 영향을 미치거나 영향을 받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책임을 의미한다(Freeman, 1984). 구체적으로 보면 노조의 사회적 책임은 노조의 행동이 경제적 형평성, 사업장 민주주의, 사회정의, 이해관계 당사자(조합원, 소비자, 경영자, 주주 등)배려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Dawkins, 2016).
노조를 포함한 조직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노력이 글로블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가톨릭의 자본과 노동의 책임, EU(2001)의 지속발전전략, UN(2004)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UN 글로벌 협약(UN Global Compact), 국제표준화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ISO, 2010)의 ISO 26000가 있다.
ISO 26000은 영리와 비영리에 관계없이 모든 조직이 지켜야 할 사회적 책임을 ‘투명하고 윤리적인 행동을 통하여 사회와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직의 결정과 활동에 대한 책임’이라고 정의하고, 책무성, 투명성, 윤리적 행동, 이해관계자 존중, 법률 존중, 국제행동규범 존중, 인권 존중의 7가지를 제시한다.
노조의 사회적 책임은 정치경제사회 환경과 직결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성격은 물론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상황에 따라 강조되는 대목이 다르다. 또 노조의 사회적 책임의 실현 방식도 문화에 따라 차이가 난다.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Variety of Capitalism: VOC)에 따라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채제를 나누어보자.
미국과 영국의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y: LME)는 각 개별 주체의 이해관계 조정이 시장기능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개별 노조가 중심인 반면, 독일과 스웨덴 등 북부 유럽의 조율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y: CME)는 이해관계 집단의 대표들에 의한 자율조정을 중시하기 때문에 노동단체가 노조의 사회적 책임의 주체가 된다.
하지만 프랑스와 이태리 등 남부 유럽의 혼합시장경제(Mixed Market Economy: MME)는 이해관계 조정의 역할이 시장, 이해집단 대표, 정부로 혼재되고, 노조의 사회적 책임도 개별 노조와 노동 단체로 분산된다. 미국은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노동시장에 대한 지배력 행사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노조가 개별 근로자의 권리를 침해해서 안된다고 보고, 입법을 통해 확립한다. 독일은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이해집단의 도덕적 의무로 보고, 노동단체가 조직의 내부 규범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실현한다.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은 공공개혁과 교육개혁 등으로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정치경제사회 분위기를 만들었다.
LME는 노조의 조직이 산별이지만 단체교섭은 사업장 단위로 하기 때문에 노조의 사회적 책임은 단체교섭과 관계가 깊다. 정부는 단체교섭에서 지켜할 룰을 정하고, 룰은 노사의 힘의 균형을 중시하며, 공공의 이익에 대한 침해를 경계한다.
CME는 노조의 조직과 단체교섭이 모두 산별 중심이기 때문에 노조 조직율이 높고 힘도 세지만, 노조의 사회적 책임도 강하기 때문에 노사관계가 협력적이고 파업이 발생하기 어렵게 규율된다. 또 개방경제이기 때문에 나라 전체와 산업의 상황을 고려해 임금결정에서 생산성을 중시하고, 복지국가를 지향하기 때문에 임금격차를 줄이고자 한다.
MME는 CME와 달리 노조가 분열되어 있고 노사관계는 대립적이며 노동시장이 이중구조화 되어 있다.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많아 노조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식은 희박하고 반면, 정부의 역할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는 많다. ISO 26000의 조직의 사회적 책임도 MME국가의 노조는 LME와 CME와 달리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간주하고 이를 조합원 교육과 단체교섭에서 이용한다.
LME와 CME 국가에서 노조의 사회적 책임이 문화로서 자리잡고, 정치경제사회 환경변화에 따라 수정해 나가는데 진통이 따랐지만 양상은 달랐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파업이 급증했고 양상도 과격해 공산주의자들의 사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이에 따라 대공황의 수습과 미국의 공산화 위협에 맞서기 위해 만든 ‘전국노동관계법(와그너법, 1934)’은 ‘노사관계법(Taft Hartley Act 1947)’으로 개정되었다.
골자는 노조와 사용자의 힘의 균형을 맞추고 이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노조의 부당노동행위를 신설하고, 정치파업과 동조 파업 등을 금지하고,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맹세를 요구했다. 또 각 주(state)에는 개별 근로자가 노조 가입 여부를 결정하도록 ‘일할 권리 법(right-to-work)’을 도입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운수노조 등에서 조합 간부의 부패와 비리가 연이어 터지자 노사관계법은 다시 ‘노사 보고 및 공개법(Labor Management Reporting and Disclosure Act, 랜드럼그리핀법 1959)’으로 개정되었다. 핵심은 노조의 책무성뿐 아니라 투명성도 높이는 것이다. 노조 선거와 회계의 투명성 확보에 필요한 정보의 보고와 그 공개를 요구하고, 노동부가 확인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은 공공개혁과 교육개혁 등으로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정치경제사회 분위기를 만들었다. 1981년 ‘공공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존재 이유’라는 연설로 파업을 벌이는 13천명의 공공노조 소속의 항공관제사를 영구 대체(해고)했다. 노조 스스로 사회적 책임을 키우는 방향으로 노동운동의 철학이 재정립되면서 미국은 노동시장의 활력을 키우도록 복지개혁에도 성공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복지는 끝내자.”
1992년 출마 당시 무명인 미국 민주당 클린톤 대통령이 내건 공약이다(end welfare as we have come to know it). 공약은 의회와 줄다리기하면서 1996년에 복지개혁법, 즉 개인의 책무와 취업기회 조화법(The Personal Responsibility and Work Opportunity Reconciliation Act)으로 다수당인 공화당의 찬성 속에 통과되었다. 복지개혁법의 핵심은 정부의 지원에 의한 한시적 복지를 지속 가능한 일자리 복지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대공황 극복의 뉴딜 시대에 도입된 1935년 사회보장법을 50년 만에 전면 수정하고, 정부에 의존한 복지는 줄이고 일을 통한 복지를 강화한 것이었다. 기술혁신에 따라 복지에 대한 개인의 책무성을 강화하도록 노동시장과 교육의 연계성을 강화하고 취업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기본숙련훈련(Job Opportunities and Basic Skills Training)과 긴급지원(Emergency Aid)을 새로운 복지제도의 핵심축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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