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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환규
-우리나라 최초의 성공적인 개심술은 경북대 병원 이성행 교수의 8세 여아 심장수술
-“흉부외과 선구자들이 일군 역사 묻혀서는 안 된다”는 역설에 따라 인터뷰했던 기억
-“대한민국의 의학 발전에 초석을 놓았던 모든 분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심장 수술은 1956년 세브란스 병원의 홍필훈 교수에 의해 이뤄진 ‘개심 승모판 연결부 절개술’(open mitral commissurotomy, 좌심방 안으로 겸자를 넣어 좁아진 승모판막을 넓혀 주는 수술)이었다. 그러나 이 수술은 심장을 멈추지 않고 하는 수술이어서 진정한 의미의 개심술의 범주에 포함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다.
3년 후인 1959년 서울대 병원의 이영균 교수가 심방 중격 결손(atrial septal defect)을 수술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개심술을 시행하였으나 안타깝게 환자가 사망하여 수술은 실패로 돌아갔다.
우리나라 최초로 진정한 의미의 개심술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것은 1961년 9월 13일 경북대 병원의 이성행 교수에 의해 8세 여아에게 시행된 선천성 심방 중격 결손증 수술이었다. 이때는 심장을 멈추는 심 마비 용액이 개발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체온을 뚝 떨어뜨린 후 ‘후다닥’ 심장 수술을 마친 후 영양 공급이 끊겨 허혈 상태에 놓여 있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수술이어서 지금과 달리 난이도가 높은 수술이었다.
이성행 교수는 3.1운동이 일어난 해인 1919년에 경남 창원군에서 출생하여 대구 계성 고등학교를 거쳐 1942년에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49년에 대구 의과대학(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 조교로 부임한 이후 1985년 정년 퇴임까지 36년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외과학 및 흉부외과학 교수로 봉직하셨다.

“대한민국 흉부외과의 선구자들이 일구어놓은 역사가 묻혀서는 안 된다”며 기록을 남겨 놓아야 한다는 역설에 따라 이성행 교수님(사진 왼쪽)을 모시고 인터뷰하였다.
흉부외과의 역사를 보면 신경외과와 성형외과가 그랬듯이 외과(일반외과)에서 분리되는 역사를 거쳤는데, 이성행 교수는 1954년 미국에 유학하여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흉부외과를 전공한 후, 1957년에 귀국하여 곧바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흉부외과 분야를 일반외과로부터 분리하는 작업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그는 1968년 대한흉부외과학회의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하셨다.
2010년 6월, 조범구 세브란스 명예교수님이 “대한민국 흉부외과의 선구자들이 일구어놓은 역사가 묻혀서는 안 된다”며 기록을 남겨 놓아야 한다고 역설하셔서 이성행 교수님을 모셔서 인터뷰하는 자리를 갖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은 이후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 한국 전쟁이 터진 그날의 순간부터 전후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어떻게 심장외과 의사로서의 사명과 의무를 다해 왔는지를 생생히 들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국내 최초로 개심술을 성공시킨 이성행 교수님은 인터뷰를 가진 후 2년 뒤 작고하셨는데, 사진 속의 자리가 마련되지 않았더라면 그 세세한 역사들이 모두 묻힐 뻔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다가 이 보석과 같은 자료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오늘 찾게 되어 이성행 교수님의 손녀인 안과 의사 선생님께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건축은 초석이 있기에 가능하고, 그 초석은 누군가 만든 것이다.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감사의 대상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심장 수술 – 홍필훈 교수
•대한민국 최초의 개심술 시도 – 이영균 교수
•대한민국 최초의 성공적인 개심술 – 이성행 교수
어찌 심장 수술뿐이랴. 의학의 모든 분야에서 선구자들의 피땀어린 노력들이 있었기에 발전이 가능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의학 발전의 초석을 놓았던 모든 분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