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 정광제
-“인간은 결코 신들에 관한 확실한 지식 지닐 수가 없고 앞으로도 도저히 불가능”
–“오직 존재자만이 있을 뿐, 무(無)란 있을 수도 없으며 또한 생각할 수조차 없다”
-제논은 예민하고도 철저한 논증방법 구사. 그리스 철학 변증법의 창시자로 불려
엘레아는 이태리 서해안에 위치한 그리스 식민지로서, 피타고라스와 때를 같이하여 자기들 지역의 이름을 지닌 철학파가 발생하였다. 엘레아 학파다.
이 학파 중의 가장 저명한 대표자로 꼽을 수 있는 다음 세 사람은 모두가 자기들 이전의 철학자들이 지녔던 사상을 터전으로 삼고 있다.
1. 크세노파네스
기원전 580년경에 그리스인들이 정착하고 있던 소아시아의 서해안에서 출생, 수십년간을 방랑하는 시인이자 가수생활을 하면서 그리스를 떠돌아다니던 크세노파네스는 마침내 엘레아에 정착하면서 철학학파를 창설하였다.
크세노파네스는 철학적 입장에서 고대 그리스 종교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격했던 철학자였다. 그는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그리스의 신들에게 신적 칭호를 부여하는 것을 부당하게 생각했다. 특히 그는 사악한 것으로 여겨지는 절도, 사기 또는 간음 등의 행위를 신들의 소행으로 돌리려던 호메로스와 헤시오드를 비난했다.
그 일부분이 오늘날까지도 보존돼 오는 그의 詩 속에서, 인간화된(의인화된) 그리스 신들의 표상에 냉소를 보낸다.
“인간은, 신들이 자기들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인간의 형상을 지니게 될 뿐 아니라 또한 이리저리 옮겨다니거나 옷을 입기도 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만약에 소나 말 또는 사자에게도 손이 달려 있어서 이것들이 자기들같은 모습을 한 신들의 형상을 꾸며낼 수 있다고 한다면 여기서도 역시 마치 인간이 신들에게 인간적 형상을 부여 하듯이 소, 말 또는 사자의 형상을 지닌 자신의 신들을 꾸며낼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이렇게 본다면 흑인도 또한 자기들의 신들은 검은 피부색과 뭉툭한 코를 가졌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고, 트라키아 사람은 또 그들대로 푸른 눈과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신을 그려낼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신들에 관한 확실한 지식을 지닐 수가 없었을 뿐 아니라 또한 그것은 앞으로도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크세노파네스에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단연코 다수의 신들이 있을 수 없으며 또한 어떤 한 신이 다른 신을 지배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지고, 지선의 신은 오직 하나가 있을 뿐으로서, 이 유일신은 항존적(恒存的)이며 그 형체나 사상에 있어서 유한자(有限者)와 비길 수 없다.
그런데 바로 이 최고의 신이 크세노파데스에게 있어서는 우주 전체의 통합자와도 같은 것이어서, 결국 그의 이론은 범신론적(凡神論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한편으로 볼 때 냉철한 이론 철학자로서 전통종교와 일체의 미신 또는 기적은 물론, 더 나아가서 윤회 사상에도 반기를 들고 나선 최초의 희랍 철학자가 곧 크세노파네스라고도 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최고자(最高者)를 우주 전체의 통일성과 동일시했다는 점에 있어서도 그는 다양한 현상의 이면에 자리잡은 영구불변의 존재에 관한 이론을 처음으로 제창한 철학자이기도 했다.

엘레아 학파의 제논은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달리기 시합의 역설로 유명하다.
2. 파르메니데스 (매우 중요)
기원전 540년경에 엘레아에서 출생한 파르메니데스는 크세노파네스의 제자이며, 엘레아학파의 가장 저명한 철학자다. 고대 철학에서 가장 추앙받는 철학자 중의 하나였던 그는 크세노파네스가 제시한 어떤 불변의 존재(存在)에 관한 사상을 계승함으로써 이를 체계적 형태로 발전시켰다.
단편적으로 보존되어온 그의 저술에서 그는 진리와 지식을 하나로 여기며, 여기에 허상과 단순한 속견을 대립시키고 있다.
(진리, 지식 vs. 허상, 속견)
참다운 지식이란 순수한 이성적 인식에 의해서만 도달할 수 있으되, 그러면서도 이 이성적 인식이 가리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존재(存在)만이 있을 뿐, 무(無)는 있을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철학을 처음 접하시는 독자분께서는 지금부터 아래 문단들을 수없이 반복해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지경까지는 반드시 이해를 하시라. 이제 처음으로, 그동안 말로만 들어보셨던 철학의 매운 맛을 즐기시게 될 것이다.>
없음이란 없다, 있음만 있을 뿐이다.
“오직 존재자만이 있을 뿐, 무(無)란 있을 수도 없으며 또한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존재자를 공간 속에 충만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텅빈 공간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아예 배제해버린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어떠한 운동을 가정하려면 반드시 무(無)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어떤 물체가 일정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착할 곳에 어떤 텅빈 공간이 무(無)의 상태로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이 책상이 저 자리로 이동하려면, 저 곳엔 이 책상이 들어앉을 빈 공간이 있어야만 이동이 가능해진다.
발전이나 생성을 가정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생성’되어야만 하는 것은 도저히 사전부터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미 존재하는 것은 생성될 수 없다.
생성되려면 무에서 생성되어야 하는데, 무란 존재치 않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 뿐 새롭게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근거하여 파르메니데스는 그 어떤 생성이나 운동도 실제로는 있을 수 없고, 다만 가능한 것은 불변의 항구적 존재 뿐이라는 대담한 결론을 이끌어냈다.
또한 그는 모든 것이 존재자에 의하여 충만되어 있게 마련이므로 존재에 대치되는 사유란 결코 있을 수도 없으며, 따라서 사유와 존재는 일체를 이루는 것이라고 보았다.
파르메니데스는 우리에게 부단한 생성과 소멸, 그리고 지속적인 운동의 세계를 매개해 주는 현혹되기 쉬운 감관은 곧 모든 오류의 근원이 된다고 하였다.
3. 엘레아의 제논
일체의 변화를 부정하는 파르메니데스의 이론은 상당한 취약점을 지닌 듯이 보인다.
파르메니데스가 스승인 크세노파네스와 40년의 나이차가 있었듯이, 또한 파르메니데스와도 꼭 40년이란 나이차가 있던 제자 제논은 비판의 표적이 되어 있던 자기의 스승 파르메니데스를 이론적으로 옹호하는 것을 철학의 주요과제로 삼았다.
그런데 여기서 제논은 극히 예민하고도 철저한 논증방법을 구사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그리스 철학의 변증법(辨證法)의 창시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즉, 제논은 다원성(多元性)과 변화를 부인하는 파르메니데스 이론의 모순을 지적하는 비난에 대하여, 오히려 그와같은 존재자의 다원성과 운동의 실재성(實在性)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해결불가능한 모순을 낳을 뿐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이제 그의 논증방법을 잘 나타내 주는 예로서, 운동을 부정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논거(論據)를 살펴보자.
1)
아킬레스와 거북이가 서로 달리기 경주를 하는 경우에, 만약에 거북이가 조금이라도 아킬레스보다 먼저 출발한다면, 아킬레스는 결코 거북이를 따를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킬레스가 비록 바로 조금 전에 거북이가 차지하고 있던 일정한 지점 A까지는 뒤쫓아갔다 하더라도, 그 순간이면 이미 거북이도 또한 B라는 지점으로 더 앞서 가버린 뒤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만약에 아킬레스가 다시 이 B라는 지점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거북이도 또 그나름대로 B지점을 떠나서 그 다음의 C라는 지점으로 움직여간 뒤일 것이므로, 이와같은 숨바꼭질이 영구히 계속된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리하여 이 양자간의 거리는 비록 좁혀진다 하더라도 뒤늦게 출발한 쪽이 앞질러 출발한 쪽을 완전히 따라붙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
화살이 날아가는 순간마다를 하나하나 떼어서 관찰하면, 공간 내의 일정한 지점을 점유하고 있는 이 화살은 각 순간마다 정지해 있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만약 이와같이 날아가는 매순간에 있어서도 그 화살은 정지해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곧 화살 그 자체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날아가는 화살도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 되므로, 그 운동 자체마저도 불가능한 것이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논이 진심으로 아킬레스가 거북을 쫓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을 리는 없으며, 그가 이와같은 논증방식을 내세운 데는 또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즉, 그로서는 파르메니데스의 반대자들에게 그들 자신의 모순된 입장을 논증한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하간 우리는 아무리 제논이 날카로운 판단력을 구사했다고 할지라도 그의 논증방식에 담긴 약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물론 ‘만약에 내가 화살이 날아가는 시간의 매순간을 하나하나 떼어 놓음으로써, 그 매순간을 더 이상 분해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의 길이로 나누어 볼지라도, 그 짧은 시간의 매순간을 메꾸고 있는 화살은 마치 정지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시간이란 결코 일련의 시점들로 엮어진 복합적인 것은 아니고 오히려 각 시점마다를 관통하는 지속적인 흐름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개개의 매순간으로 분해한다는 것은 고유한 시간의 특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단순한 우리의 생각에서빚어진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엘레아학파의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그들이 그와같은 우여곡절을 겪어가야만 했다는 그 자체가 곧 그들의 약점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이 약점이란 생성을 부인하고 경화된 존재에만 집착하려는 편협성에 있다고 본다.
이와같은 관점은 그리스적인 본질과도 진정한 의미에서 일치한다고 보기는 힘든 것이다.
<연재 리스트>
1. 철학의 탄생 | 2. 밀레토스 학파와 피타고라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