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과 호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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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대환 (조봉암기념사업회 부회장)

 

-우리나라 사람들 일제 식민 지배 콤플렉스 심해. 이제는 그 열등감에서 벗어날 때

-기적적 발전 이룬 근본 원인인 국민 모두 열심히 일하고 공부한 이유는 농지 개혁

-이승만과 김성수와 조봉암의 고뇌, 주고받은 토론, 견제와 협력은 한 편의 드라마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세계에서 결코 늦은 편이 아닙니다. 모든 국민에게 평등한 권리가 주어지는 가장 진보적인 민주주의 나라로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대단하지 않게 생각하는 일본에게 식민 지배를 당한 데 대하여,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 열등감, 그리고 우리 힘으로 일제를 몰아내고 건국하지 못했다는 콤플렉스가 심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열등감에서 벗어날 때도 되었습니다.

 

보다 넒은 시야로 바라보면, 근대 문명과 산업 혁명에 뒤처진 나라와 민족이 식민 지배를 겪어야 했던 것은 우리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부끄러워할 일도 아닙니다. 또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제국주의의 시대가 끝나면서 비로소 세계의 많은 나라와 민족들이 독립을 했습니다.

 

다만 우리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나치즘, 이탈리아 파시즘, 일본 군국주의와의 싸움에서 목숨을 바치고 피를 흘린 전 세계 수백만 청년들에게 감사해야 할 줄로 압니다. 그들의 희생 덕에 우리는 해방되었습니다.

 

역사는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남 탓보다는 자기 탓을 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성숙한 세계 시민, 선진국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농지 개혁에 성공한 나라

 

우리나라가 기적적으로 발전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가들의 리더십입니다. 남덕우, 김재익 같은 경제 관료들의 공이 큽니다. 정주영과 이병철 같은 기업가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국민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국민 모두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바로 농지 개혁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아르헨티나가 한때 부국이었고, 브라질은 천혜의 자원을 가진 나라이고, 필리핀도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라들의 대농장, 라티푼디움 농장주의 자식은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농장에서 일하는 농업 노동자의 자식은 열심히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새 나라 대한민국의 주인으로서 자영농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여기 생생한 증언(證言)을 보십시오. 자녀들이 세운 어느 평범한 부부의 묘비입니다. 전남 장흥군 관산읍 성산리 길가에 있는 작은 무덤에서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

 

 

이 비문에 따르면 1921년생 주학동은 1923년생 윤우례와 결혼하여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습니다. 이 부부는 “손금이 다 닳도록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서 5남을 모두 대학 교육을 시켰습니다.” 9남매가 본 부모의 모습은 “당당하고 정직하고 근면 성실하게 자식을 위해서라면 뼈가 부서지고 살가죽이 갈라져도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망설임 없이 모든 것을 바치는” 그런 부모였습니다. 저는 바로 이 부모와 이 자녀들이 대한민국 기적의 주역이라고 생각합니다.

 

2009년에 소를 주인공으로 한 <워낭소리>라는 독립 영화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관객이 30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 영화에 나오는 소의 주인 최원균(1929년생) 옹도 바로 농지 개혁으로 자영농이 되어 조그만 땅뙈기에서 농사지어 9남매를 키워낸 사람인데, 경북 봉화 사람입니다. 전국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여기 제가 그래프를 하나 복사해 왔습니다.

 

 

세계은행에서 학자들에게 조사를 의뢰했습니다. 학자들이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의 26개 나라에 대하여 1960년 시점의 토지 분배의 상태와 그후 40년 동안의 평균 경제 성장률의 관계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그림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한국은 1960년 시점에 토지 분배가 가장 고루 되어 있는 나라였고, 그후 40년 동안의 경제 성장률이 두 번째로 높은 나라였습니다.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같은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들이 좌하단 구석에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농지 개혁을 이루는 데는 물론 여러 세력과 사람들이 힘을 모았습니다. 중국 대륙의 공산화, 북한과 북베트남의 공산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절박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미국 국무부가 판단을 했습니다. 일본과 타이완과 남한에서 농지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아시아가 다 공산당의 손에 넘어간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농지 개혁이 그렇게 빨리 순조롭게 이루어진 데는 우리 지도자들의 결단과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말할 것 없고, 조봉암 초대 농림부 장관, 그리고 미군정의 집권 여당이자, 제헌 국회의 제1 당이라 할 한민당의 당수 김성수 선생의 결단이 있었습니다.

 

이승만과 김성수와 조봉암의 고뇌와 주고받은 토론과 견제와 협력이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를 잘 써 놓으면 얼마나 재미있고, 그리고 실제 우리의 생활과 직결되며, 교훈적이기도 한 역사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이야기들은 다 잊혀졌습니다. 도대체 왜 학생들에게 이런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북한에서 토지 개혁은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잘 이루어졌는데, 남한에서 농지 개혁은 유상몰수 유상분배로 실패했고, 그래서 지주 소작 관계가 남아 있고, 남한은 여전히 식민지 반봉건 사회다”라는 허황된 생각이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실패한 농지 개혁이니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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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국과 호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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