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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경모
-교도관이 곤봉 휘두르는 장면 촬영에서 그 역할이 내면화된다는 인상 받아
-학교는 교도소와 건축적으로 똑같아. 간수와 학교 선생은 본질적으로 동일
-레이건이 정치 잘했던 이유도 다양한 연기로 사람들 삶을 경험해봤기 때문
(이날 교도소 씬을 찍으면서 신선한 경험을 했다. 여러분께 나눠 드리고 싶어서 글을 쓴다. 구속된 거 아니다. 한 18시간은 구속된 건가?ㅋㅋ)
나는 촬영이 끝나고 나서 전부터 보려 했던 <더 스탠포드 프리즌 엑스페리먼트>라는 영화를 봤다. 역시 내가 보고 느낀 그대로였다. 보조 출연자(엑스트라)들은 촬영장에서 최하위 계급이다. 왜냐하면 일일 아르바이트 수준이었기 때문에 서로 길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래도 다 계약하고 하는 것이고, 법적으로 인간적으로 존중하면서 촬영한다. 감독이든 엑스트라 담당자(반장)이든 사람들 보고 욕하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물론 그게 더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면도 있다).
나도 이제 보조 출연에서 완전 초짜는 아니라고 말할 정도는 되는데, 이날 교도소 촬영에서는 좀 놀랐다. 우리가 받은 소품은 이전에 재소자들이 입던 옷과 신발이었다. 내 번호는 8282였다. 재소자들 운동화에 태극 마크가 붙어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촬영을 하다 보면 엄청나게 많은 인원들이 같은 시간에 한 번에 모든 걸 끝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별로 신경쓰지 못한다. 특히 보조 출연자 같이 중요하지 않은데 숫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일일이 다 신경을 쓰겠나. 하지만 죄수복을 입고 경험한 제작진은 좀 다른 느낌이었다. 이전보다 사람들을 막 다루거나, 쉽게 소리치고, 더 상스러운 욕을 했다. 부연 설명이 필요한데, 이 제작진은 마초적이고 교도소에서 터프한 장면을 찍는 거라 다들 상황을 이해했지만, 나는 이게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함께 와서 같이 일을 하려고 모인 사람들이 단지 옷을 다르게 입었을 뿐인데, 교도관 옷을 입은 보조 출연자들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CRPT라고 일반 교도관과 달리 곤봉을 들고 유격 조교 같은 복장을 갖춘 이들도 있었는데, 정말 옷만 다르게 입었을 뿐인데 위협을 느꼈다. 촬영 장면 중에는 교도관들이 죄수들을 향해 곤봉을 휘두르며 좀 떨어지라는 장면도 있었는데 촬영을 거듭할수록 곤봉을 막 휘두르는 인상을 받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점점 그 역할이 내면화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참 신기하지. 보조 출연자들이 대체로 촬영에 굉장히 협조적이고 촬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데 그날 본 보조 출연자들은 다들 어떻게든 촬영을 쉽게 하려고 구석으로 도망가고 불러도 느릿느릿 걸어오는 행태를 촬영 내내 보였다. 제작진도 열 받아서 소리지르고 뭐라고 하는 수준이었는데, 돌아 보니 옷을 입은 정체성이 그들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었다. 사회생활 열심히 잘 하던 사람도 예비군 훈련 가면 괜히 어깃장 놓고 싶은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더 스탠포드 프리즌 엑스페리먼트>라는 영화를 봤다. 내가 교도소에서 봤던 풍경과 느꼈던 것, 그리고 학창 시절의 경험과 군에서의 경험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촬영하면서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새벽에 같이 온 얼굴만 알던 보조 출연자들과 ‘감방 동기’라면서 같이 밥도 먹고 많이 친해졌다. 아무리 촬영이 길어져도 정말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교도소 담장 위에는 총을 든 교도관들이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고, 철조망을 둘러싸고 교도관들이 전부 우리를 지켜 보고 있다. 시선이라는 권력을 느낄 수 있었다. 옷을 입은 것만으로도 의식이 계급화되고 무력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무의식적으로 갇혀 있기 때문에 뭔가 잘못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들 무리를 만들어갔다(물론 촬영하면서 얘기도 하고 재밌게 있었다).
또 하나 느꼈던 것은 교도소 안에 가장 많은 말들이 ‘행복, 질서, 바른생활, 교화’ 뭐 이런 것들인데… 교도소 안에서는 절대 없는 거거든. 생각해 보니 우리가 세상에 없는 것들을 자꾸 추구하다 보니 성을 만들고, 그 성이 감옥이 되는 것 같았다. 행복은 분명한 허구인데 사회가 그것을 추구하니 사람들은 감옥에 갇혀야 되는 거지. 천국을 지상에 만드려는 시도가 지옥을 만든다는 걸 가장 제대로 구현한 공간이 교도소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교도소 내부 공간을 살펴 보면서 알게 된 아주 불편한 진실이지만… 학교는 교도소와 건축적으로 똑같다. 건축적으로 같다는 뜻은 동일한 정체성이란 뜻이다. 교도소의 간수들과 학교의 선생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유와 인권을 사랑하는 제 페친인 교사나 교수들의 경우는 선한 간수들이다. 구조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는 게 정말 불편한 진실이다. 학생들(죄수) 입장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그래도 있기 때문에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군대에서 간부들이 간수들과 같다는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군대랑 교도소도 건축적으로 똑같다. 군대라는 게 사람들은 국가 체제 안으로 강제 편입시킨 시스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기 위해서 <더 스탠포드 프리즌 엑스페리먼트>라는 영화를 봤다. 내가 교도소에서 봤던 풍경과 느꼈던 것, 그리고 학창 시절의 경험과 군에서의 경험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닫힌 사회(국가)는 필연적으로 계급을 만들고 불평등한 권력을 분배해 투쟁을 만든다. 그리고 누구나 작은 권력이라도 가지면 그것을 사용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군에서도 일병들이 이등병 괴롭힐 때 제일 지X맞다(참고로 이 영화는 심리학에서 아주 중요한 실험을 최대한 가깝게 묘사한 영화다).
우리 옛말에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는 말이 이런 권력이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일종의 교훈이라는 생각도 든다. 작은 권력이라도 자신이 그 권력을 갖고 있을 때는 얼마나 미쳐 있는지 결코 모른다.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권력 그 자체를 항상 경계해야 한다. 사람들은 권력이 만드는 질서에 이미 너무나 익숙해져서 그 질서가 자신의 인간성을 버리게 한다는 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힘에 대한 욕망과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은 함께 갈 수 없다. 권력과 우정이 함께 할 수 없듯이.
어쩌면 레이건이 정치를 잘 했던 이유도 다양한 연기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삶과 환경을 경험해 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경험해 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거니까. 삶이 어떤 것인지 언어로 어떻게 다 말하겠나. 경험해 보면 눈만 봐도 아는 거지.
이날 촬영으로 감기도 걸리고 며칠 고생했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새벽의 해가 뜰 때, 그리고 해가 질 때 차갑게만 느껴지던 철판에 비치는 자주색 햇살이 얼마나 아름답고 다채로운지 느낄 수 있을 만큼 막막한 시간이었다. 일상의 소중함과 함께 있는 사람, 내 옆에 있는 강아지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준 시간이었다.
<더 스탠포드 엑스페리먼트>: 이 영화는 재밌지 않다. 하지만 한 번쯤 볼 만한 영화다. 인간의 심리와 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