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정신’과 북한과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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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희

 

-현 정부는 양반사회처럼 도덕적 혹은 정신적 가치의 실현을 물질적 문제 해결보다 더 중시

-유공자와 후손에 대한 명예훼손 금지법 통과되면 우리 사회는 북한 사회에 더 근접해질 것

-‘민주화유공자법’은 ‘셀프 특혜’ 여론에 부딪혀 철회됐지만 운동권의 특권의식을 잘 보여줘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독립 유공자와 참전 유공자 간의 불평등한 예우는 군자와 그 후손들을 특권 계층으로 만들었던 양반 의식의 연장선 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 정부는 조선의 양반 사회처럼 도덕적 혹은 정신적 가치의 실현을 물질적인 문제의 해결보다 더 중시하고 있다. 이는 국가의 정통성을 물적 기반을 갖추고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게 된 사건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정신’에서 찾고 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독립운동 정신은 김학철이 언급한 것처럼 도저히 이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항거하는 ‘불굴의 정신’이며, 바로 양반 사회의 선비 정신과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해방은 “자유와 독립의 열망을 지켜낸 독립운동의 결과”이지 저절로 외세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물리적 힘(연합군의 군사력)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력’이 일본의 패전을 가져왔다고 말하고 있다.

 

“광복은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름 석 자까지 모든 것을 뺏기고도 자유와 독립의 열망을 지켜낸 삼천만이 되찾은 것입니다. 광복은 항일 의병에서 광복군까지 애국 선열의 희생과 헌신이 흘린 피의 대가였습니다.”

 

대통령은 심지어 전후 대한민국의 경제적 번영까지 독립운동 정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위대한 독립운동의 정신은 민주화와 경제 발전으로 되살아나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은 문 정부가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대규모 희생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후 경제 발전이 독립운동 정신이 되살아난 결과라면, 6.25 당시 공산화를 막기 위해 목숨을 잃고 실종되고 장애인이 되었던 60만 국군의 희생과 헌신은 무화되고 만다.

 

더 나아가 대통령은 촛불시위가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선언한다.

 

“항일 운동의 이 모든 빛나는 장면들이 지난 겨울 전국 방방곡곡에서 그리고 우리 동포들이 있는 세계 곳곳에서 촛불로 살아났습니다. 우리 국민이 높이 든 촛불은 독립운동 정신의 계승입니다.”

 

‘독립운동 정신’이 만든 나라에서 촛불 시위가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문 정권에 막강한 도덕적 권위를 부여한다. 이 권위를 통해 현 정권은 정치 세력으로서 지배적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문 정부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항일 독립운동의 정신에서 찾고 독립 유공자와 그 후손에 ‘최고의 존경과 예우’를 약속하는 것은 종국적으로 자신의 도덕적 기반을 굳건히 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독립운동 정신의 성역화는 일제 시대에 대한 정부의 공식 서사에 반대되는 일체의 언설을 금지하는 ‘역사 왜곡 금지법’에 의해 완성된다. 이 법이 다시 발의되어 통과된다면 우리 사회는 거의 모든 사적 영역이 절멸된 북한 사회에 좀 더 근접해질 것이다.(사진은 김좌진 생가지)

 

문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독립운동 정신을 작금의 현실 정치로 소환하는 것은 북한 정권이 통치 권력의 세습화를 위해 만주 항일 빨치산의 무장 투쟁을 신성시하는 것과 놀랍게도 유사하다. 북한의 세습 정치에 대해 공동으로 연구한 문화 인류 학자 권헌익과 정병호(2013 참조)는 김정일의 권력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김일성 사망 전후에 북한의 현대사는 수정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만주 빨치산의 항일 무장 투쟁사가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성스러운 역사로 재탄생하였다고 지적한다.

 

새로이 수정된 역사는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의 무장 항쟁 덕분에 민족 해방이 이루어졌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사실은 만주 빨치산 항쟁에 참여한 빨치산 대원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나아가 빨치산 투쟁이 민족 해방을 가져온 것처럼, 빨치산 정신을 이어받은 선군 정치는 ‘고난의 행군’을 종식하게 될 것이라고 수정된 역사는 인민들을 세뇌한다(전게서 48). 문재인이 남한의 경제적 번영을 독립운동 정신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게 북한 정권 역시 해방 후의 역사를 빨치산 항쟁의 역사에 종속시키고 있다.

 

새롭게 가공된 영웅담에서 김일성은 식민지의 고통에서 민족을 구한 최고의 영웅으로, 그리고 빨치산 대원들에게 삶을 선사한 어버이로 받들어지며 건국의 시조로 숭배된다. 김일성에 대한 지고지순한 헌신을 김정일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으로 변환시키기 위해, 북한의 매체들은 인민들에게 유교적 충효 사상을 주입시켰다.

 

정치 지도자는 이제 인민 전체의 어버이가 되었고 국가는 어버이 수령의 확대된 가정이 되었으며 국가 경제는 어버이의 가정 경제가 되었다. 새로운 가족 국가에서 인민들이 겪는 굶주림의 고통은 ‘밥투정’에 불과했으며 항일 빨치산 정신을 이어받은 자랑스런 전사들이 영웅적으로 견디어 내야 하는 것이 되었다(전게서 55).

 

이 역사 수정 작업에 대규모 군중 집회와 영화, 뮤지컬, 가요 등의 공연 예술이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90년대 중반 무렵 대기근으로 최소 몇십만 명이 굶어죽어 갈 때, 북한 정권은 항일 빨치산 정신을 찬양하기 위해 역사 기념물 건립, 관련 토목 공사, 대중 공연 예술 등에 인민을 대규모로 동원하였다.

 

반면 한국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희생을 기리는 기념물이나 행사는 별로 없었다고 권헌익과 정병호는 지적한다(전게서160). 이런 정치적 과정을 통해 김일성을 승계한 김정일의 지배적 위치는 확고해졌고, 만주 빨치산의 많은 후손들은 북한의 최고 특권층이자 김정일의 가장 열렬한 지지 집단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물론 남한이 아직 북한과 같은 정도의 극장 국가는 아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도 항일 독립운동을 성역화하는 작업을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북한이 극소수가 참여했던 만주 항일 빨치산 투쟁을 신화로 만든 것처럼, 문 정부의 독립운동 서사에도 적지 않은 과장과 왜곡을 볼 수 있다. 봉오동 전투의 과장된 전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문 정권의 지지자들 역시 대중을 동원하는 영화 등의 공연 예술과 사회운동을 통해서 독립운동을 성스러운 역사로 미화하고 다듬어 나갔다. 집권 초기부터 친일 청산과 일본군 위안부 보상 문제, 징용 배상 문제 등을 다시 이슈화하여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을 선동하고 ‘죽창가’, ‘토착 왜구’ 등의 수사로 국민의 반일 감정을 극도로 고조시켰다.

 

마지막으로, 항일 독립운동을 성스러운 역사로 만드는 이러한 과정은 최종적으로 문 정권과 그 지지 세력의 도덕적 기반을 강화하는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항일 독립운동의 정신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의를 추구하는 선비 정신이었다.

 

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했다는 ‘촛불 세력’은 도덕성을 지배 계층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부각시키며 현대 한국 사회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온 사람들, ‘적폐 세력’ 혹은 ‘기득권층’으로 양분하였다.

 

이 이분법에 근거하여 사회 정의 구현에 이바지한다는 명분으로 민주화 운동가들과 그들의 유족과 가족에게 특혜를 부여하는 ‘민주화 유공자 법’을 만들어 민주화 운동가들을 특권 계층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지나친 ‘셀프 특혜’라는 반대 여론에 부딪혀 법안은 철회되었지만, 이러한 입법 제안은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군자’가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소인’을 지배하도록 한 양반 사회의 성리학적 논리를 그대로 이어받은 운동권의 특권 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관련 기사>

홍범도와 봉오동 전투의 숨겨진 진실#1

“정신의 투쟁”과 친일 청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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